<트랜스포머 4>│① <트랜스포머 4>를 까며 우리는 하나가 된다

2014.07.08

지금까지는 모두 잊어라!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이하 <트랜스포머 4>) 포스터에 새겨진 이 문구는 관객을 향한 정말 중요한 조언이다. 1편부터 3편까지 차분히 악화일로를 걸어왔던 이 시리즈의 과거를 잊고 보는 것이야말로 <트랜스포머 4>를 최대한 분노하지 않고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일반 관객과 평론가들의 일관된 분노에는,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스케일만 키우고 서사는 헐거워지는 과정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있다. 하지만 모두들 지금까지의 실망을 모두 기억하되,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 또다시 <트랜스포머 4>를 보러 극장에 간다. <트랜스포머 4> 자체는 흥미롭지 않을지언정, 선관람 후분노로 이어지는 패턴만큼은 기묘하고 흥미롭다. 하여 모두들 <트랜스포머 4>를 비난하는 지금, <아이즈>는 그 비난에 한 줄을 보태기보다는 신기할 정도로 반복되는 비난과 관람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스페셜을 준비했다. 어쩌다 우리는 스스로 ‘호갱님’이 되어 관람료를 지불하고 이 계속되는 고통에 뛰어들게 된 것일까.
 


2014년 여름, 세상의 화합을 이룬 건 월드컵이 아닌 <트랜스포머 4>로 기억되지 않을까. 배경이 되는 모든 걸 다 때려 부숴야 직성이 풀리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성향과 야망이 집대성된 이 블록버스터는 작품의 신선도를 평가하는 로튼 토마토 사이트에서 미국 관객들에 의해 신선도 17퍼센트를 기록 중이며, 한국에서는 전문 평론가와 일반 관객, 너나 할 것 없이 분노와 허탈함을 담은 혹평을 쏟아내고 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참 잡스럽게 느껴지는 영화”라며 최남선의 시를 인용해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는 정서에 대해 비판했고, 칼럼니스트 듀나는 “금속성 물체 충돌 폭발성애자들에게도 이 영화가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을 이야기했다. 수많은 일반 관객들 역시 SNS를 통해 작품을 비꼬거나 돈과 시간을 들여 작품을 봤다는 것에 대한 후회 혹은 참회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트랜스포머 4>를 조리돌림 하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는 모두 하나다.

하지만 이토록 일관된 혹평만큼, 여전히 지난 시리즈들의 뒤를 이어 일관된 흥행을 기록 중이라는 것 역시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봉 첫 주말 전 세계적으로 3억 1백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고, 이토록 관객들의 혹평이 줄을 잇는 한국에서도 개봉 12일 만에 누적 관객 수 400만 명을 돌파했다. 대체 이 괴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과거 <디 워>처럼 흥행과 혹평이 부딪히는 경우, 작품의 흥행을 이끈 관객들은 자신의 관람 행위가 조롱당하는 것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애초에 <배틀쉽>처럼 논쟁할 거리도 없이 돈과 CG로만 잔뜩 치장한 블록버스터 졸작이라면 흥행에서도 비평에서도 참패한다.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하지만 <트랜스포머 4>에 대해선 딱히 논쟁이랄 것도 없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밟고 또 밟으면서도, 티켓을 산 본인을 자조할지언정 작품의 흥행에 대해 분노하거나 부정하진 않는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흥미로운 건 이 부분이다. 요컨대 흥행을 이끄는 관객과 작품을 욕하는 관객이 분리되지 않는다. 보는 건 보는 거고, 까는 건 까는 거다.

<트랜스포머 4>에 대한 수많은 부정적 반응 중 분노와 조롱, 지탄은 있되 실망은 거의 없다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실망은 기대에 대한 반작용이다. 평론가의 리뷰에도, 대중의 SNS 멘션에도 기대나 기대에 대한 실망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딱 예상했던 그만큼 혹은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게 평가의 주를 이룬다. 수많은 이들의 증언처럼 <트랜스포머 4>는 마이클 베이의 작품 중에서 가장 멀리 나간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부수고 폭파하자는 하나의 명제를 위해 옵티머스 프라임 일행은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린다. 엄청난 물량 공세를 이용한 시각적 자극이 165분 동안 쉬지 않고 계속될 때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하는지에 대한 임상실험으로 기록될 만한 이 관람은,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물량과 폭발만을 배로 늘려나갔던 지난 시리즈를 경험했던 관객들에게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너드 소년 샘이 변신 로봇인 자신의 차와 함께 지구를 지켜내는 이야기로 관객들의 어린 시절 로망을 실현해줬던 1편의 영광을 더는 기대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그 영광의 순간을 아주 잠시나마 재현할 수 있는 건 결국 <트랜스포머> 시리즈뿐이라는 것이다. 거대한 금속 물체의 움직임과 폭발이 주는 스펙터클에 대한 마이클 베이의 페티시에 가까운 집착이 없었다면 <트랜스포머> 1편이 등장할 수는 없었다. 시리즈를 망치고 있는 것도 베이지만, 시리즈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만들었던 것도 베이다. 로봇 애니메이션의 핵심을 훨씬 잘 이해한 <퍼시픽 림> 같은 작품도 있지만 백주대낮에 우리가 사는 도시를 배경으로 로봇들이 날렵한 움직임으로 육탄전을 벌일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선 <트랜스포머 4>뿐이다. 본편보다 훨씬 재밌다는 점에서 제발 마이클 베이가 연출에 참고하면 좋을 것 같은 예고편에서, 핀치에 몰린 옵티머스 프라임이 다이노봇을 타고 등장해 대검으로 상대편 로봇들을 압살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실망할 걸 뻔히 알면서도 극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영화 <신세계>의 다음 대사처럼. “이거 쥐약이다. 먹으면 아마 다 뒈질 거야. 근데 씨발 나로선 안 먹을 수가 없네?”

요컨대, <트랜스포머 4>는 이 시대 할리우드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길티 플레저다. 보면 화가 날 걸 알면서도 볼 수밖에 없고, 보고 난 뒤에는 자신이 마이클 베이에게 다시금 흥행을 안겨줬다는 깨달음에 더 큰 화와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길티 플레저. 하지만 모든 길티 플레저가 그러하듯, 무언가 잘못된 일에 공모하는 기분 때문에 더더욱 빠져들게 되는 길티 플레저. 다양한 패러디와 ‘드립’이 난무하는 <트랜스포머 4>에 대한 조리돌림이 개개인의 분노보다는 오히려 같은 경험을 한 이들끼리의 유희처럼 진행되는 건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이것은 그저 졸작에 대한 반작용보다는 그 졸작에 그럼에도 동참한 것에 대한 자책과 부끄러움, 분노, 머쓱함 등을 한데 어울려 씻어내는 유쾌한 살풀이에 가깝다. 앞서 말했듯,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된다.

그래서 <트랜스포머 4>를 둘러싼 작금의 반응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공세에 자유로울 수 없는 시장 안에서 관객들이 만들어낸 가장 건강한 방식의 대응일지 모르겠다. 아무리 로튼 토마토의 신선도 지수가 떨어져도 마이클 베이가 속편의 연출을 맡는 걸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제 대중들은 무기력함에 자책하거나 박스오피스 순위를 올려주는 다른 관객들에게 분노하기보다는 영화를 본 경험에 대한 농담으로 영화보다 재밌는 유희를 즐기고 있다. 정색한 비평보다는 함께 웃을 수 있는 ‘드립’이, 나 홀로 뛰어난 감식안의 과시보다는 망한 관람의 경험에 대한 공유가 환영받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지뢰를 피하듯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문화 소비를 할 것인가, 망한 경험에 대해서도 함께 웃고 떠드는 것으로 즐거움을 찾을 것인가. 무엇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후자가 덜 찡그리고 더 웃을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물론 <트랜스포머 5>가 나온다면 좀 더 찡그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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