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도의 잃어버린 신작의 비밀

2014.07.07

‘마법의 가을(일생에 단 한번 기적과 같은 일을 이루게 하는 시기)’은 오지 않았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발표한 ‘미리 보는 2014 장르소설’에 신작 소식이 게재되지 않았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2002년 월드컵 폐막 후 <눈물을 마시는 새>의 연재 시작을 떠올리며 2014년 월드컵이 끝난 뒤 신작을 기대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축구를 좋아하는 소설가 이영도는 지난 6월, 1년 동안 집필한 <눈물을 마시는 새>의 수탐자(<눈물을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파티) 3인과 항구 도시에 얽힌 장편 판타지 소설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서 가을에 나올 신작 소식은 언제 나올지 불투명한 상황이 되었다. 지난 10년간 신작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그의 부모님의 과수원이 잘 돼서라며 “감나무 밭에 농약을 쳐야겠다” 같은 농담을 하던 팬들에게는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이영도 작가의 담당 편집자이자 출판사 황금가지의 김준혁 편집장은 그의 신작에 대한 질문에 “현재 어떠한 것도 얘기할 상황이 아니”라고 답했다. 다만 “계속 꾸준히 글을 쓰고 글을 놓은 적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그가 10년 동안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 이유는 “작가 스스로가 만족하는 작품이 없기 때문”이 가장 크지만 외부적인 요인도 있다. 그는 과거에는 PC통신 하이텔을 통해 꾸준히 작품을 냈지만 현재는 “작가님에 맞는 연재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영도는 2004년까지 PC통신 하이텔에 소설을 연재했고, 하이텔이 사라진 뒤 마땅한 연재처를 찾지 못했다. 1990년대보다 접속자가 줄은 상태였지만 이영도는 하이텔에 계속 소설을 올렸고,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이트에 옮겨진 글을 읽었다. “포털이나 홈페이지에 본인의 이름을 걸고 연재하는 게 작가의 취향의 잘 맞지 않는 모양”이라는 것이 김준혁 편집장의 설명이다. PC통신으로 데뷔한 작가는 지금도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PC통신에서 스마트 폰의 시절로 넘어오기까지 왜 그의 신작이 한국 판타지 소설의 가장 중요한 기대작이 되느냐는 점이다. SF&판타지 도서관의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심완선 운영위원은 “그동안 작품이 나올 때마다 기대를 충족시켜줬기 때문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종범 웹툰 작가는 이영도에 대해 “이 정도로 세계관에 해상도가 높은 작가는 보기 힘들다. 아마 북미권에 태어났으면 J.R.R. 톨킨이나 조앤 K. 롤링 같은 작가가 되었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이영도의 초기작 <드래곤 라자>는 <반지의 제왕>과 유사한 인간, 엘프, 오크, 드래곤 등 중간계 같은 세계관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창조했고, 세계관에 필요한 종족, 그들의 생태, 역사를 만들어낸 것은 물론 작품 속 각각의 사건이 마치 바둑판의 돌처럼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이영도는 한국에서 판타지 소설이 부흥한 1990년대부터 활동했고, 그 후 문자 그대로 독보적인 존재가 됐으며, 지금도 여전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이종범 작가는 이영도의 의의에 대해 “원래 순수문학보다 대중문학이 못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드래곤 라자>를 보며 재미도 있는데, 의미도 있어서 생각이 완벽히 바뀌었다. 지금 웹툰이라는 대중만화를 그리게 된 것도 그의 영향”이라 말했다.

10년째 나오지 않는 신작이 인터넷 서점의 기대작이 될 만큼 이영도의 작가적 역량은 점점 독보적인 수준으로 올랐다. 반면 한국 판타지 소설 시장은 점점 쇠락했다. 대여점이 등장하면서 출판 업계는 대여점에 빠르게 판매할 수 있는 흥미 위주의 작품들, 인기작과 유사한 작품들을 쏟아냈다. 결국 고정 독자들은 떠나기 시했고, 좋은 작가들은 점점 나오기 어려워졌다. 신규 독자들은 유입되지 않는다. 판타지 소설가 중에는 라이트 노벨로 장르를 바꾼 경우도 있고, 네이버 웹소설에 연재되는 판타지 소설은 가벼운 내용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이영도가 하이텔에서 연재할 당시에는 작가 고유의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캐릭터에 집중하는 작품들이 많다.

그래서 1990년대에 판타지 소설을 읽던 이들, 또는 이영도의 팬들은 여전히 그의 신작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지금도 판타지 소설은 1990년대 판타지 소설을 읽었던 3~40대를 향해 있고, 이 때문에 <아사랴>처럼 주인공이 직장인인 소설도 자주 등장한다. 이 독자들에게 이영도는 판타지 소설에 대한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시대는 변했고, 한국 판타지 소설 시장은 <해리포터> 같은 메가 히트작을 탄생시키지도 못한 채 위축되고 있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영도의 신작뿐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이영도의 신작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아니면 잃어버린 마법의 가을을 기다리는 것처럼 판타지 소설의 부흥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그 날은 다시 올 수 있을까. 원래 마법의 가을은 일생에 단 한번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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