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방’밖에 못 만들어서 미안하다!!!

2014.07.07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끝난 지 오래지만, 우리는 후보 중 한 명이었던 고승덕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배구장, 콘서트장, 또는 슈퍼마리오를 사은품으로 주던 맥도날드 카운터에서도 고승덕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선거 당시 그의 딸 고캔디 씨가 페이스북에 그의 과거 행적을 문제 삼아 그가 교육감이 될 수 없다는 글을 남겼고, 결국 고승덕이 선거 유세 중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라는 발언을 한 장면이 SNS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미안하다!”는 급기야 KBS <개그콘서트> ‘연애능력평가’ 코너에 패러디로까지 등장했고, 인터넷에서 ‘짤방’에서 합성에 필요한 ‘필수요소’가 됐다. 이른바 ‘정치짤방 만들기’라고 할 만한 새로운 놀이가 생긴 것이다. 

정치와 관련된 이미지를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풍자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안하다!”는 월드컵 대표팀의 귀국길에 엿을 던지는 상황에 합성되고, 영화 <엑스맨>의 캐릭터와 합성되기도 한다. 정치인에 대한 조롱과 풍자로 시작된 ‘정치짤방’이, 어느새 정치적 맥락은 사라진 채 고승덕이 손을 하늘로 뻗는 순간의 우스움만 남았다.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후보였던 정몽준이 아들의 세월호 관련 발언을 사과하면서 눈물을 흘린 모습 역시 ‘정몽즙’이라는 이름으로 합성 요소가 됐고, 결국 총리 후보에서 사퇴한 문창극의 사진도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등 그의 사진에 재미있는 제목을 붙이는 놀이로 유행했다. 처음에는 풍자를 통한 일종의 정치 참여 소재가 됐던 정치인 이미지가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의 소재로 소비됐다.

인터넷에서는 어떤 이미지든 재미만 있다면 합성 요소로 소비되기 마련이다. 다만 이 ‘정치짤방’을 만드는 대부분은 SNS를 주로 이용하는 20~30대다. 그중에서 특히 20대는 SNS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가장 무력한 세대이기도 하다. 2014년 현재 20대의 인구수는 약 660만 명으로, 투표권을 가진 어떤 세대보다도 적다. 또 18대 대통령 선거를 기준으로 50대 투표율이 82%인데 반해 20대는 68.5%, 30대는 70%다. 숫도 적은데 투표율도 이전 세대보다 높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40대 이하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자를, 50대 이상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다. (<리서치뷰>와 <오마이뉴스> 조사. 19세 이상 휴대전화 가입자 24,100명을 대상)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20~30대와 50대 이상은 확연히 지지자 및 지지 정당이 달랐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처럼 40대가 20~30대와 비슷한 투표 성향을 보여주지 않는 한, 그들은 정치적 패배를 벗어나기 힘들다.


투표만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20~30대는 인터넷 여론으로부터 시작되었던 ‘촛불집회’로 광장에 나갔고, 최근에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안녕들 하십니까’를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촛불집회’ 이후 폐쇄나 다름없을 만큼 광장을 사용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대규모 집회가 ‘승리’라고 할 만큼 무엇을 바꾸지는 못했다. 페이스북의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는 하루 만에 9만 5천 건의 ‘좋아요’를 기록할 만큼 지지를 받았지만 지상파 뉴스에서는 거의 다뤄지지도 않았고, <조선일보> 같은 신문은 ‘대학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루머도 덩달아 확산’과 같은 부정적 반응을 내놓았다. 광장이라는 물리적 공론장은 사라졌고, 그들의 대자보는 SNS 바깥으로 쉽게 퍼져나가지 했다. 높은 대학 등록금, 취업난, 비정규직 등 젊은 세대의 문제는 어느 때보다 산적하지만, 그들은 정치적으로 이길 방법도, 그들의 말을 퍼뜨릴 방법도 딱히 없다.

“말이 그저 말일 뿐이라는 게 간파된 것이다. 지금의 냉소와 절망은 아무것도 이행되지 않는 사회가 됨으로써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결과.” 엄기호는 책 <단속사회>에서 젊은 세대가 느끼는 절망의 근원을 이렇게 짚어낸다. 패배는 허무함으로 이어지고, 허무함이 커질수록 정치와 관련된 ‘드립’이나 ‘짤방’이 정치에 대한 담론을 대신한다. 정치적 언어는 사라지고, 정치를 조롱하는 이미지만 남았다. 뭘 해도 안되거나, 무엇도 할 수 없는 세대는 ‘정치짤방’으로 정치에 대해 표현한다. 딱 거기까지만.

그래서 ‘정치짤방’은 단순한 유희일 수도 있지만, SNS의 20~30대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정치적 언어를 잃어버린 세대는 ‘정치짤방’을 통한 웃음과 조롱을 통해 하나로 묶인다. 그것은 유머 코드이든 정치적 성향이든 SNS의 내 팔로워들이 나와 비슷한 무엇을 갖고 있다는 느슨한 연결이다. 이를테면, 책 <속물과 잉여>는 이른바 ‘병맛 코드’가 담긴 웹툰에 대해 “낄낄대는 웃음이 어느 한순간 씁쓸한 냉소와 교차되는 곳, 이 세계의 병맛스러움이 우리 존재의 잉여성에 대한 확인과 만나게 되는 장소”라고 규정하며, “세대의 여러 주체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공통언어를 구성해 가는 일”이라 긍정했다. 이 분석은 ‘정치짤방’에 그대로 적용되어도 무리 없을 것이다. 옳든 그르든, 긍정하든 부정하든 ‘정치짤방’은 지금 SNS의 누군가를 묶는 언어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공통의 언어가 무엇에 쓸모가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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