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시대│② 프라임 연성어 엣센스 큰사전

2014.06.10

강철의 연성술사
① 연성, 지금 가장 재밌는 유희
② 프라임 연성어 엣센스 큰사전
③ 지금 바로 여기, 연성을 말하다 展
④ <말레피센트>를 연성해보자

 

특정 콘텐츠를 재해석해 다양한 2차 창작물을 만드는 연성은 문화를 소비하는 흥미로운 방식이 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의 학여울역 SETEC에서 열린 종합 동인 행사 <제4회 케이크 스퀘어>의 참가 부스 수는 전 회보다 2배 이상 늘었고 영화 <겨울왕국>,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KBS <정도전> 등 올해의 화제작들에는 팬들의 연성도 활발했다. 연성을 둘러싼 활동이 오프라인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동시에, 대하사극처럼 연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장르까지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즈>는 이 뜨거운 세계가 궁금하지만 아직은 낯설 이들을 위해 연성시대를 탐구할 때 알아두면 좋을 용어를 정리해 사전으로 편찬했다. 충실히 공부해둔다면 ‘연성해주세요’, ‘통판 예약은 끝났나요?’와 같이 SNS에서 떠도는 대화를 접해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 세계의 용어가 언제든 변하거나 확장될 수 있으니 필요할 때 수정 또는 증보판이 가능한, 열린 사전을 지향한다는 것을 전하는 바이다.



금손 金손 [금ː손]
[명사]
[파생어] 금손님이시다
1. 금과 같은 손 혹은 금손을 가진 이.

금처럼 가치가 높은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손을 이르는 말로, 보통 이런 손을 가진 이를 높여 부르는 데 쓰인다. 글이든 그림이든 범인과는 다른 수준의 연성물을 만들어내는 창조주이기에 의존명사 ‘님’과 쓰이며 선어말어미 ‘-(으)시’, 높임형 단어(드리다, 계시다)와 만나 이중 높임 되기도 한다. 아스라이 먼 곳에 존재하는 캐릭터와 그런 캐릭터를 현실에서 모시는 이들을 연결해주는 능력자로, ‘금손’을 찾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혼자 하는 연성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답답함, 고퀄리티의 연성물을 보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최근 ‘금손’이 흔하게 쓰이고 있지만 자신의 취향을 신통방통하게 현실화해주는 진정한 ‘금손’님을 찾기란 더욱 어려워졌으니, 그 가치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할 수 있다.

용례[用例]
* 금손님이시여, 저 둘을 연성해주옵소서.
* 잘 찾은 금손님 한 분, 열 지인 안 부럽다.
* 저런 금손을 가졌다니, 전생에 나라를 구한 분이신가 봐.


낙서 落書 [낙써]
[명사]
1. 연성 전, 스케치 정도의 창작물을 일컬음. 보통 자신의 연성물을 스스로 낮출 때 쓰임.
2. 낙서라 쓰고 (속으로) 연성이라 읽는다.

연성을 하기에는 실력이 모자라고, 연성을 안 하기에는 이미 멋대로 움직이는 손을 제어하지 못하는 창작자들이 그 결과물을 올릴 때 쓰는 말. 별다른 반응이 없어도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간혹 이런 낙서들 중 그저 습작으로 치부할 수 없는 연성물이 올라오는데, 이는 ‘이게 낙서라니요’ 식의 반응과 ‘아닙니다. 이게 연성이라니요. 낙서일 뿐이죠’라는 대화가 ‘미안, 내가 더 미안, 미안하게 해서 내가 진짜 미안’과 같이 이어지는지를 보고 판가름할 수 있다.


덕통사고 덕通事故 [덕통-사고]
[명사]
[파생어] 마블덕통사고, 또봇덕통사고
1. 무엇과 강하게 충돌해 그것의 ‘덕후(서브컬처에 몰두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오타쿠’의 줄임말)’가 되어버리는 일.
2.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울고 있어도 웃음이 난다.

덕통사고를 당하면 마음과 시간, 돈 모두를 빼앗기게 되며 그 위험도는 교통사고 못지않다. 하지만 사고를 당한 이가 상대방을 원망하지 않고 후유증에 시달릴수록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교통사고와의 가장 큰 차이다. 또한 덕통사고를 당한 이(P)는 후유증의 결과로 연성을 (원)하는 자(Q)가 되고, 연성을 (원)하는 자라면 모두 덕통사고를 당했을 확률이 높다. 즉, P와 Q는 필요충분조건이므로 ‘P⟺Q이면 P=Q’라는 공식에 근거해 덕통사고를 당한 이와 연성을 (원)하는 자는 동일인이라 할 수 있다.


리버스 금지 revers 禁止 [리버쓰 금ː지]
[관용구]
1. 캐릭터를 엮을 때 순서의 ‘역(逆)’을 금지한다는 관용구.
2. A x B = Olleh! / B x A = Awful!

똑같이 A와 B를 엮어 연성을 해도 순서가 바뀌면 안 된다는 룰. 연성물에서는 보통 앞에 있는 캐릭터가 뒤에 있는 캐릭터보다 좀 더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이로 구체화된다. 예를 들어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를 연성할 때, ‘엘사 x 안나’라면 연성물 안에서 엘사가 안나에 비해 남성적으로, ‘안나 x 엘사’라면 그 반대가 되는 식이다. 즉 A와 B 중 누가 앞에 있느냐에 따라 연성물 안에서 A, B의 역할·성격·그에 따른 작품의 전개가 아예 달라지므로 연성을 하는 이들에게는 연성의 순서가 예민한 문제다. 연성을 하거나 연성을 요청한 사람이 ‘리버스 금지’를 내세우면 이를 존중해주는 게 좋은 이유다.

용례[用例]
* 리버스 금지입니다. 취존 해주시죠.


망상 妄想 [망ː상]
[명사]
1.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
2. 내 머리 속의 연성.

특정 콘텐츠와 캐릭터에 대해 끝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으로, 그 자체가 연성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망상은 텍스트의 세계관이나 캐릭터의 원 모습 위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시작은 상상이다. 하지만 대부분 상상을 하는 주체가 만족하도록 아무 관계 없었던 캐릭터들끼리 엮고 전혀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는 캐릭터들을 만나게 하는 등 파격적인 변형을 가하므로 상상의 주체 역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망상이라 결론짓는다. 하지만 원 텍스트를 풍부하게, 창의적으로 소비하게 한다는 가치가 있으며 금손이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인 연성이라 할 수 있다.


백 연성 100 延性 [백-연성]
[명사구]
[파생어] 칠칠 연성
[관련 어휘] 보상
1. 연성을 100번 하는 일.
2. 강제적으로라도 연성이 하고 싶어.

도전 연성의 한 종류. 연성은 하고 싶지만 혼자 하면 중도에 포기할 것 같다고 느끼는 이들이 백 연성을 천명한다. 다이어트를 결심할 때 자체 포기를 막기 위해 지인들에게 알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보통 가로 10칸, 세로 10칸이 있는 표를 만들고 연성을 1개 만들어 인증할 때마다 동그라미를 그린다. 다룰 작품과 연성의 형식(글, 그림 등)을 정해 도전 과제를 명시하고 모두 성공했을 때의 보상까지 적는다. 보상은 대부분 원하는 사람에게 연성물을 받는 것으로 이뤄지니 백 연성은 연성이 연성을 낳고, 또 연성을 낳는 기제이며 서로서로 연성을 독려하고 힘이 들 때 위로해주는 따뜻한 문화를 반영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참고로, 백 연성은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해 49번으로 끝낼 수 있는 칠칠 연성도 있다.

용례[用例]
* 님도 백 연성 시작하세요. 도와드릴게요. 오늘부터 1일 1연성 하시는 겁니다!


사약 死藥 [사ː약]
[명사]
1. 마시면 식음을 전폐하더라도 해당 분야를 계속 탐닉하게 되는 약.
2. 놀리는 그 손길로 온 너. 본능은 너를 갈구해 좀 더.

금손님이 만든 고퀄리티 연성을 경험하는 것을 치명적인 사약을 마신다고 표현한다. 사약을 마신 사람들은 해당 콘텐츠의 연성만 찾아 헤매거나 사약이 될 만한 수준의 연성물에 집착하는 게 보통의 행동 패턴이다. 마이너한 콘텐츠의 사약일수록 연성물이 부족해 이 순환 속도는 빨라지는데, 사약을 들이킨 사람이 다시 사약을 찾는다는 점에서 이건 Overdose.

용례[用例]
* 사약 한 사발 하실래예-
* 역시 사약은 사약으로 정화하는 게 진리.

소비러 消費-러 [소비ː러]
[명사]
[반의어] 연성러
1. 연성을 하지 않고 소비를 하는 사람.
2. 연성 더 해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주로 연성을 소비만 하는 사람. 종종 연성을 즐기지 않는 이로 코스프레 할 때 내세우는 말이기도 하다. 그 외에는 같은 소비러라 해도, 연성할 능력이 있지만 스스로 소비러를 택한 사람과 반대로 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나뉜다. 후자는 전자를 조심스럽게 질책하며 어서 능력을 펼치라 애원하고, 전자는 겸손 혹은 귀찮음을 핑계 삼아 거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용례[用例]
* 전 연성 같은 거 몰라요. 소비러일 뿐이죠.
* 신은 내게 연성욕을 주시고 금손은 앗아갔으니, 소비러가 될 운명일지어다.


앤솔로지, 앤쏠 anthology [앤-쏠로지]
[명사]
[관련 어휘] 총대님
1. 여러 작가가 같은 소재를 가지고 만든 시, 소설, 그림 등을 모은 책.
2. 네 연성, 내 연성이 만나면 무서울 것 없도다. 모여라, 세상의 온갖 연성물들이여!

한 작품을 두고 여러 연성러들이 만든 작품을 모아둔 책이기에 소비러는 원 텍스트를 다양한 시각으로 즐길 수 있다. 만드는 이들 또한 앤솔로지를 만들며 비슷한 취향을 공유할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니 누이 좋고 매부도 좋다. 최대한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멤버를 구성하고, 앤솔로지의 콘셉트를 정하며, 마감을 한 후 출판을 하기까지가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되므로 앤솔로지를 주최한 이를 총대님으로 부르며 노고를 인정해주는 문화도 있다.

용례[用例]
* 금손님들과 앤쏠에 참여하다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자급자족 自給自足 [자급짜족]
[사자성어]
1. 극도로 마이너한 콘텐츠, 캐릭터, 커플을 좋아하는 바람에 혼자 연성을 하는 이들이 스스로의 상황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
2. (동지를 찾으며) 어서 나타나. 나 지금 흔들려. 나를 잡아줘. 나를 붙잡아줘. 어서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는 날 일으켜 줘…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공급한다는 이 말이 원시시대에서나 통했던 것처럼, 현대 연성 시장에서 자급자족은 빈곤하고 고통스러운 길을 걷는 것과 같은 말이다. 누구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고, 금손님을 찾을 시간에 스스로의 연성력을 키우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될지 몰라도, 서로서로 연성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는 시스템의 효과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스스로 만족한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탈출한다 해도 말리지 않을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용례[用例]
* 저희 커플 안 챙겨주셔도 괜찮아요. 자급자족하고 있거든요. 아, 잠깐 눈물 좀 닦고…
* 분명 파시는 분들은 많은데 수요에 비해 공급이… 누가 좀 연성을, 아니다. 그냥 자급자족할게요.


최애캐 最愛캐 [최ː애캐, 췌ː애캐]
[명사]
[파생어] 차애캐, 삼애캐
1.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캐릭터.
2. 내 거 중에 최고. 내 삶의 모든 것 중에 최고.

연성 대상으로 최우선시되는 캐릭터. 사랑에 빠지면 내 눈엔 너밖에 안 보이고, 내 귀엔 너밖에 안 들리고, 내 맘엔 너밖에 안 살기 때문에 최애캐를 가장 좋은 짝과 맺어주고 싶은 인지상정의 마음을 갖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애캐가 하나가 아닌 경우에는 여러 명의 최애캐끼리 연성을 하고 그게 아닐 경우 최애캐와 차애캐(두 번째로 사랑하는 캐릭터), 삼애캐(세 번째로 좋아하는 캐릭터)를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니, 연성물을 보면 그 사람의 최애캐부터 삼애캐까지 모두를 알 수 있다.


커미션 commission [커미ː쎤]
[명사]
1. 개인과 개인이 연성물을 주고받을 때 오가는 돈. 아무런 규제 방법이 없기에 액수는 천차만별임.

‘국가나 공공 단체 또는 그 기관이 공적인 일을 하고 보상으로 받는 요금. 수수료로 순화’라는 원뜻이 연성물을 주고받을 때 발생하는 금액이란 뜻으로 쓰인다. 이때 ‘내 돈 주고 원하는 연성을 금손님께 의뢰하는 것이다’와 ‘무분별한 커미션 금액이 전체 연성 시장을 흔들 수 있다’처럼 커미션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자율적으로 정한다는 의식이 강해, 커미션을 두고 벌어지는 공방에 하나의 룰을 적용시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용례[用例]
* 금손님, 커미션 넣었습니다. 연성해주세요.
* 투표 인증하시는 걸로 커미션 대체하겠습니다.

키워드 key-word [키ː워드]
[명사]
1. 차기 연성을 설명해줄 핵심 단어.
2. 연성 곧 나올 것 같죠? 안 나와요.

연성러가 연성에 들어가기 전 예고식으로 던지는 연성의 핵심. 연성을 요청하는 이들이 직접 작품과 키워드를 정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이 말은 곧 연성이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일 뿐 언제 완성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잔인하지만 소비러의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게 특징이다. 즉 연성을 기대하게 하는 효과인 동시에 소비러들을 희망고문 할 수도 있는 용어인 셈.

용례[用例]
* 키워드는 오열이야. 자, 외로운 느낌으로 연성해, 연성.
* 키워드는 파국입니다. 지난번 작품보다 더 비극적으로 연성될 것 같아요.


통판 通販 [통판]
[명사]
[관련 어휘] 수요조사
1. 통신판매.
2. 예약 기간 놓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끝.

연성물을 실물로 내 손에 쥘 수 있는 기회. 연성물은 보통 창작자 혹은 앤솔로지 멤버들이 자체제작 하는 것이기에 인쇄, 출판의 양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게릴라처럼 수요조사를 하고 판매에 들어가는 작품의 통판 소식에 늘 귀 기울인 후 재빨리 예약해야 한다. 혹시 예약이 끝난 후에도 문의를 하면 추가 주문을 받기도 하니 당황하지 말고 행동하는 것이 좋다.


파주세요 파-주세요 [파주세요]
[동사]
[유의어] 리퀘
1. ‘파다’의 요청형 활용형태. 누군가 대신 연성하거나 탐닉한 것을 보고 싶을 만큼 당장 이게 좋다는 우회적인 표현.
2. 하지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곧 내가 파게 되겠지.

직접적으로는 불특정 다수의 금손님에게 특정 캐릭터와 작품을 파고들어 계속 연성물을 만들어 달라는 뜻이지만 내가 지금 어떤 캐릭터에 빠졌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나오는 표현이기도 하다. 캐릭터와 연성 방향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리퀘(스트)하는 것보다 넓은 의미의 단어이며 중의적으로 쓰인다. 그래서 혼자만의 외침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결국 요청한 본인이 파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회지 會誌 [회ː지, 훼ː지]
[명사]
[관련 어휘] 썰
1. 모임에서 펴내는 잡지.
2. 공짜로 받을 생각 말고 연성부터 해야 하느니.

개개인들이 모여 자신들의 연성물을 섞어 내는 잡지. 여러 명의 연성물이 합쳐진다는 점에서 앤솔로지와 비슷하지만 회지는 특정 작품이 아닌 다양한 작품의 연성물을 모은 것이다. 친목의 성향이 짙어, 서로 믿을 만한 사람들과 만들어도 꼭 연성이 많은 회지만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생긴다. 그래서 회지를 내고 싶다거나 갖고 싶다면 일단 연성을 하라고 모임 안에서 서로를 독촉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때 ‘연성이 안 되면 일단 기본 아이디어를 ‘썰’로라도 풀라’는 답답함이 동반되는 것이 보통이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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