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재 “축구에 관해서는 완벽하게 하고 싶다”

2014.06.02
뉴스와 스포츠 중계를 한다. 이름을 검색하면 ‘드립’이 뜨고 김구라에게 예능 파트너로 추천받기도 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부터 차범근 해설위원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SBS 배성재 아나운서 이야기다. 전문성은 물론 경기의 핵심을 재미있게 표현하는 멘트로 인기를 얻은 그는 최근 SBS <정글의 법칙 in 브라질>(이하 <정법>), <매직아이> 등 예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배성재 아나운서는 “예능을 안 하기 위해 프리(랜서)를 해야겠다”고까지 말한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스포츠 캐스터라는 일에 집중하고 싶은 것일까. 그리고, 축구란 어떤 의미일까.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배성재 아나운서에게 물었다.

<정법>에서 벌레 때문에 긴장하고 비를 맞으며 집도 짓더라. 방송으로 보니 어떻던가.
배성재
: 군대 CCTV 보는 것처럼 재미있게 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땐 진짜 힘들었다. 첫 주에는 특히 더.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끝내고 휴식을 거의 취하지 못한 상태로 비행기를 오래 탔고 도착한 첫날 잠을 못 잤다. 몸을 제대로 못 가누면 다칠 수 있고 위험한 벌레가 다른 사람들보다 날 더 많이 무니까 심각하게 몸 걱정이 되더라. ‘통계적으로 요즘 젊은 사람들의 과로사 비율이…’ 이런 생각도 들고. 일주일만 있다가 (이)민우랑 온유가 나갈 때 같이 가려고 했는데 차범근 위원이 격려차 오신다고 하셔서 그러지도 못했다. 그리고 같이 가는 연예인들을 알긴 알았지만 그들의 캐릭터나 방송에서의 콘셉트를 잘 모르니까 혹시 실수할까 긴장이 더 되더라.

방송으로 보면 금세 친해진 것 같았다.
배성재
: 다행히 민우나 온유, (오)종혁이도 다 연예인 타이틀을 떼고 나왔다. 일단 형 대접을 확실히 해주니까 편했다. 일하다가 조금 힘들면 동생들이 좀 해주고 음식을 먹을 때도 순서대로 먹으니까. 잘 챙겨줘서 고마웠지. 종혁이는 몸 좋은 남자로 받아들여져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봉)태규는 그냥 생긴 대로 사는 애라서 (웃음) 재미있고 서로 장난도 많이 쳤다. 그리고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공감대가 있었다. 또 확실히 정글에서는 피지컬이 중요하니까, 키는 얼마나 되고 힘은 얼마나 세고 칼은 어느 정도 쓰는지 하는 것들 빼고는 다른 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처음부터 캐릭터를 직장인으로 잡아서 다른 출연진들과 차별화되고 프로그램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김병만을 ‘차장님’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배성재
: 원래 자연 다큐, 특히 디스커버리 채널의 방송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정법>도 그런 모습을 예능에 가깝게 구현한 거라. 힘은 들어도 카메라 앞에서 뭘 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난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카메라는 그런 날 관찰하는 거니까.

토크쇼에 가까웠던 <매직아이>는 어떤 경험이었나. 김구라가 파트너 MC로 적극 추천했었다.
배성재
: 아무래도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에서 ‘드립’을 자주 치니까 예능 욕심도 있다고 오해하신 것 같다. 소치 때 <힐링캠프>에 나간 걸로 예능국에 소문이 좀 난 것 같기도 하고. <힐링캠프> 때는 김제동 씨 대신 출연해달라고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해보니 생각보다 좋았다. 성유리 씨도 보고. (웃음) 아무래도 또 스피드 스케이팅이 소치 때 내 중계 담당이라 공부를 많이 해둬서 이규혁, 이상화 선수를 대하기 수월했고 결과도 잘 나왔다. 그 이후 <힐링캠프> CP님 밑에 있던 PD님들이 나에 대해 조사도 하셨는지 <매직아이> 출연을 제안한 거다. 근데 사실 라디오나 스포츠는 몰라도 예능은 성격에 맞지 않는다. 어디든 화면에 내가 나오는 게 낯설지만 예능은 좀 더 그런 것 같다.

“예능을 안 하기 위해 프리(랜서)를 해야겠다”고 직접적으로 말한 이유도 그 때문인가.
배성재
: 언론사 직원으로서 내 생각과 다르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능은 내가 쉽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꼭 필요하지 않은 거라면 스포츠와 뉴스에 매진하고 싶다는 거였다. 방송에서 ‘드립’을 치거나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건 여기가 내 무대라는 생각이 들고 나랑 익숙한 사람들이 있을 때 되더라. 그땐 예능이라기보다 재미를 찾는다는 기분이 든다.


곧 있을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집중하고 싶었을 것 같기도 하다.
배성재
: 몇 년 동안 중계를 꾸준히 하면서 트레이닝을 했고 차범근 위원은 브라질 리그까지 챙겨보면서 그때그때 정리를 해두셔서 둘 다 엄청난 준비는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중계를 많이 하고 싶은 거다. <정법> 촬영으로 3주 동안 중계를 못 했는데 그게 난 심심하고 섭섭하다. 선수로 치면 3주 부상당한 느낌? 선수는 매일 뛰어야 하지 않나. 그사이 생긴 소식을 팔로잉하는 건 둘째치고 중계진들끼리 이야기도 많이 해야 하고 월드컵을 앞둔 멘탈을 끌어올려야 하는 게 있거든.

멘탈을 끌어올리는 건 공부를 하거나 중계진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배성재
: 축구 영상을 하루에도 몇 시간씩 보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있다. 보통 중계가 잡히면 전전날부터 준비를 시작하는데, 어떤 선수에 대해 막 공부하는 게 아니라 그 선수나 팀의 영상을 계속 찾아보는 거다. 보다 보면 여유도 생기고 불현듯 궁금한 것도 많이 생긴다. 평소에는 못 했던 생각인 거다. 예를 들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 야누자이는 여러 국적을 갖고 있는데 단순히 그 정도만 아는 게 아니라 그 핏줄이 어떻게 섞여 있고 그의 국적 중 ‘벨기에나 알바니아의 역사는 어떨까’처럼 생각이 삼천포로 빠진다. 그런 걸 찾다 보면 그 선수에 대한 입체감이 더 높아진다. 그냥 공을 잡은 선수의 이름이 뭔지 아는 게 아니라 그 선수의 미세한 움직임 같은 게 눈에 들어오는 거다.

그런 게 쌓이면 아무래도 중계에도 영향을 미치겠다.
배성재
: 물론이다. 콜네임의 느낌부터 미세하게 달라진다. 이 상황에서 이 선수가 이 위치에서 공을 잡았을 때 약간의 설렘이라든가 기대감이 이입되는 게 있다. 그건 그 선수의 영상을 계속 봐야만 생기더라.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잉여 상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난 잉여일 때 스포츠를 봐온 거거든. 할 일 없을 때 새벽에 가만히 보는 식이었다.

일을 여러 개 벌이기보다 하나를 제대로 하자는 주의 같다.
배성재
: 일하고 남는 시간은 그냥 커피 마시거나 강아지와 놀고 싶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 월급값은 했다 생각하는데 (웃음) 축구에 관해서는 완벽하게 하고 싶은 거다. 내가 오래 진행하고 있는 <풋볼매거진 골!>도 이것저것 다 합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재미있는 것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제작진에게 하이라이트 그냥 틀지 말자고, 진짜 재미있게 하든지 아주 멋지게 하든지 뭔가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냥 하이라이트를 틀면 1초 만에 바로 안다. 그런 걸로 시청자들이 빠져나가지 않게, 경기처럼 우리 방송을 보고 싶게 하려면 어떡해야 할지 늘 고민한다.

좋아하는 일 하나에 계속 집중하고 파고드는 스타일인가.
배성재
: 말하자면 그런데, 또 팠다고 하기에는 프로페셔널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개라, 개랑은 하루 종일 놀 수 있다. 개뿐만 아니라 동물은 다 좋아하니까,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 뭔가 벌이도 좋을 거 같고 멋도 있을 거 같고 여생을 아프리카에서 보낼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하지만 사명감을 갖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책도 어떤 게 하나가 재미있으면 그 저자의 다른 책을 싹 다 보고, 그러다 보면 일주일이 날아가지만 나름 중독을 털어내고 일상생활로 돌아가기도 하는, 그런 날들을 보낸 거다.

그중 스포츠는 어떻게 업으로 삼게 됐나.
배성재
: 사실 스포츠에 대해 나만의 세계를 만든 건 아니고, 좋아하니까 놓친 것 없이 다 본 것뿐이다. 아나운서를 꿈꾼 적은 없지만 괜찮겠다고 생각한 게, 대학교 때 시험 준비하며 해외 축구 중계를 보던 시절이었다. 축구 보면서 숙제하고 날이 새면 학교를 가야 하지 않나. 근데 중계하는 사람은 아침에 잘 수 있고 저걸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러워지더라.

막상 아나운서가 되고 나니 어떻던가. SBS 입사 후 <한밤의 TV 연예>, <모닝와이드> 등에서 패널을 하다 스포츠 분야에 빨리 집중한 케이스다.
배성재
: 워낙 스포츠를 좋아해서 초보일 때부터 스포츠 PD들과는 쉽게 대화도 하고 올림픽 한 번 다녀오면 여러 종목 해설자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내가 뭔가를 원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건 잘 못 하는데 해설자와 캐스터의 관계는 그게 아니니까. 차범근 위원도 SBS에서 무서워하는 분들이 많지만 난 너무 편한 게, 축구 이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하루 종일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때는 말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다른 분야에서나, 마음에 드는 여자한테 먼저 말을 거는 건 거의 못하지만 스포츠에 관해서는 겁이 없다.

자유롭고 편한 관계가 SBS 축구팀 내에서 유지되는 것 같다. 얼마 전 선글라스를 쓰고 EPL 경기를 중계했던 영상이 공개됐을 때, 트위터로 SBS 팀 모토가 ‘팀킬’이라고도 했다.
배성재
: 아마 PD 누님이 중계석을 궁금해하는 시청자가 꽤 있다는 판단을 해서 그런 거겠지만, 이젠 이런 짓까지 하는구나 싶었다. (웃음) 서로를 ‘디스’한다 해도 문제가 생긴 적은 없다. 내가 인신공격을 하는 건 (박)문성이 형밖에 없으니까. (웃음) 사실 SBS 축구팀 안에서의 난, 되게 마음에 든다. 마음들이 맞으니까 축구와 연관돼 내가 하고 싶은 다양한 것들도 할 수 있다. 근데 요즘에는 제작진들에게 ‘꼰대질 하나?’ 싶은 생각도 들긴 한다.

왜 그럴까.
배성재
: 이것저것 하자고 자극을 많이 주는 스타일이다. 난 잘해보자고 한 건데 잔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데 어쨌든 후배들도 들어왔고 SBS 축구팀 내에서 내 할 일도 더 많아져서 축구에 관해서는 책임감을 가져야겠더라. 선수 이름도 제대로 불러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로베라는 선수 이름의 철자가 ‘LOVE’다. 스페인어 식으로 번역하면 로베가 되지만 자세히 보면 영어 식으로 그냥 ‘러브’라는 것도 금세 알게 된다. 이런 걸 알아보다 보면 하루 종일 걸릴 때도 있는데, 그래도 즐겁다.

오랫동안 그렇게 좋아해도 질리지 않을 만한 축구의 매력은 뭘까.
배성재
: 나에게 축구는 예능 못지않게 재미있고 드라마틱하고 에너지틱하고 부족함이 없는 스포츠다. EPL은 주말 예능이라고 많이 할 정도로 웃긴 장면이 많이 나오고. 그리고 스포츠는 전쟁을 대체한다 생각하는데, 그중에서도 축구가 그렇다. 룰 안에서 페어플레이를 해야 하는 것처럼 내셔널리즘 말고도 살려야 할 정신이 많다.

캐스터로서도, 팬으로서도 이번 월드컵에서 기대하는 게 많을 것 같다.
배성재
: 일단 시청률은 무조건 1등 하고, 월드컵이 끝난 다음에도 사람들이 축구를 평소에 즐기는 문화로 생각할 수 있도록 뭔가 남으면 좋겠다. 2002년부터 사람들이 월드컵을 겪을 때마다 축구를 생각하는 게 조금씩 달라졌는데 요즘에는 분데스리가의 성장, 지금 스페인에서 뛰고 있는 한국 유망주들에 대한 관심처럼 정보가 훨씬 많아졌다. 이제 무조건 “골 넣었다, 이겼다. 우와!”이거나, 지면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는 일단 쿨하게 즐기면 좋겠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프로야구가 유의미하게 성장했다고 보는데, 축구도 한 번 터졌으면 좋겠다. 야구에는 여자들이 야구장에서 ‘셀카’를 찍는 것처럼 팬덤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지 않나. 그런 게 중요하다. 축구는 전 지구적인 스포츠라 한 번 터지면 대박일 거다.

장기적으로는 어떤 아나운서, 어떤 캐스터가 되고 싶나.
배성재
: 이제 제작진 중에서도 후배들이 좀 생겼다. 진짜 스포츠가 좋아서 들어온 애들인데 생각보다 그들이 나랑 같이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웃음) 옆에 앉아 있을 때 ‘내가 ‘배거슨’(배성재가 퍼거슨 감독을 따라 하며 생긴 별명)과 함께…?’ 이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신입 PD가 나를 보고 싶었다 하면 되게 기분이 좋더라. 아, 내가 대학생 ‘축빠’에게 뭔가를 줬구나 싶어서. (웃음) 물론 나뿐만 아니라 박문성 위원이나 화려한 해설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앞으로도 그런 걸 계속 주고 싶다.

월드컵이 끝나고 여유가 조금 생긴다면 개인적으로는 뭘 가장 하고 싶나.
배성재
: 개랑 여자친구가 필요하다. 요즘에는 강아지를 키우는 여자친구를 사귀면 어떨까 싶다.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죽은 지 올해로 10년이 넘어서 다시 키우고 싶은데 가족들이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강아지를 키우는 여자를 만나면 가끔 내가 강아지와 놀아주고, 그럼 그 사람도 부담되지 않고 나도 좋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을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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