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 <유도소년>의 서툰 남자 민욱

2014.05.29
아시안게임 복싱 국가대표에 성실한 데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신념도 있다. 거기에 훤칠하고 잘생겼고 자상하다. 하지만 좋아하는 친구 동생과는 레슨을 핑계로 만나 운동만 하고, 어설피 스친 손길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연극 <유도소년>의 열아홉 민욱을 보고 있자면 답답함에 속이 터진다. 그런데 이 서툰 남자는 풋풋해서 더 정이 간다. 짝사랑 특유의 정서가 첫사랑과 만나 설렘을 만들고, ‘뿌요뿌요’와 ‘인형의 기사’를 타고 관객을 열아홉의 나로 되돌려놓기 때문이다. <들장미 소녀 캔디>로 따지자면 안소니, <꽃보다 남자>로 따지자면 지후 선배쯤 되겠다. 첫사랑의 얼굴, 박성훈을 만났다.

1. 연극배우입니까?
Yes.
2010년 연극 <옥탑방 고양이>로 시작해 <히스토리 보이즈>, <모범생들>, <올모스트 메인>을 했고 지금은 <유도소년>에 출연 중이다.

2. 유도소년입니까?
No.
고교 복싱선수 민욱이라고, 유도소년 경찬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인물이다. 캐릭터가 아시안게임 복싱 국가대표로 설정되어 있지만, 원래 운동에 소질이 없는 편이라 추정화 선배님이 “대학로에서 몸 제일 못 쓰는 놈이 무슨 운동하는 공연을 하냐”고 하실 정도였다. (웃음)

3. 습득력이 좋습니까?
No.
모든 운동이 그렇듯 기본자세가 가장 중요한데 시간이 많지 않아서 3주차 과정을 3일 만에 배웠다. 그러다 보니까 중심이 잘 안 잡힌 상태로 움직여서 자꾸 비틀거리고 허우적거린다. 왜 줄넘기만 세 달 하는지 알겠더라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말을 참 많이 했다.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싸움 신을 만들 때도 내가 눈은 보고 있는데 정신은 나간 상태여서 (웃음) 내 수준에 맞춰준 게 좀 있다. 힘들었지만 부지런해지고 오래간만에 땀 흘리는 게 좋아서 공연 올리고도 계속 복싱장 다녀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안 갔다. 하하하.

4. 억울한 점이 있습니까?
Yes.
연출님은 민욱이 복싱선수니까 무조건 노출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더블인 (차)용학이 형은 배우는 것도 금방이고 자세도 잘 나오고 트레이너 자격증까지 있어서 로보캅 몸인데… 나는 오전에 복싱 연습, 오후에 공연 연습, 저녁에 웨이트까지 해도 복싱 자체가 워낙 유산소운동이라 살이 찌기는커녕 더 빠져버렸다. 겨우 샌드백 치는 장면에서 상의 탈의를 하는데 난 거기서 등연기만 하고 있다고. (웃음)

5. 부담이 많았습니까?
Yes.
작품을 많이 한 건 아니지만 완벽하게 창작 초연이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걱정이 정말 많았었다. 거기다 막내인데 (홍)우진이 형, (박)훈이 형, 정연이 누나보다 나이도 많게 설정되어 있고. (웃음) 다행히 용학이 형이 먼저 잡아준 부분도 많았고, 박경찬 작가님의 실화가 바탕이라 그 지점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6. 캐릭터와 닮은 점은 있습니까?
Yes.
민욱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너무 소극적이라 답답하고 재미없고 죽겠고 그런데 (웃음) 나도 중학교 때 3년간 짝사랑을 했던 적이 있다. 박성훈이 누구 좋아한다는 걸 전교생이 다 알 정도였는데 끝까지 고백을 못 했다. 만난 지 얼만 안 된 관계라면 나도 충분히 호감을 표현할 수 있지만, 친구나 아는 동생, 누나로 알고 지낸 기간이 길었다면 고백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소중한 인연을 잃어버릴까 봐 겁이 난다.

7. 소극적인 편입니까?
Yes.
싸울 일이 있으면 주먹보다 말이 먼저 나가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웃음) 지금도 남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한다거나 주목받는 걸 꺼려한다.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도 상대방에게 “콜라 하나 마실까?”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그 사람이 시켜주는 식이다. 아무래도 누나 둘 있는 집 막내라 그런 것 같다. 일곱 살 터울의 큰누나 따라서 윤상, 윤종신, 신승훈을 좋아했고, 작은누나랑은 새벽까지 얘기하다 잠들고 매일 친구처럼 붙어 다녔다. 한번은 작은누나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유치원 간 동생 집에 바래다주고 오면 안 되냐고 수업 중에 손들고 얘기한 적도 있다고 하더라. (웃음) 동성보다는 이성이 편하고, 그래서 형들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다행히 <유도소년>은 운동을 같이 해서인지 전우애 같은 게 있다.

ⓒ 스토리P

8. 적극적일 때가 있습니까?
Yes.
사실 연기는 진로 때문에 막연하게 시작한 거였다. 그러다 <택시 드리벌> 워크숍 공연으로 맛을 알아버렸다. 학교에서도 소극적인 아이로 인식되어 있었는데 그 공연으로 친구나 선배들이 나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연극에 대한 정신이 전혀 없던 애가 무대에서 그런 희열을 느끼니까 생동감 있는 연극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관객들이 기대감을 안고 수군거리는 소리들을 듣고 있으면 너무 설레는 거다. 그래서 더 배우기 위해 졸업 후 극단생활도 하고 여러 기획사에도 있었다.

9. 꿈이 좌절된 순간이 있었습니까?
Yes.
극단에 8~9개월 있었는데, 무대 작업이 즐겁기도 했지만 너무 막연하고 답답했다. 돈을 못 버니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하고 극장에서 자고, 선생님과 선배님들이 계시니 당장은 역할을 할 수도 없고. 솔직하게 구질구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극단을 나와서 2008년에 영화 <쌍화점>을 찍고 기획사에도 있었지만 1년 반 동안 오디션을 세 번밖에 못 봤다. 잘 안 풀리고 있었는데 <밍크고래는 소화불량이다>라는 공연을 하면서 잊고 있던 처음 공연했던 때의 희열이 되살아나더라.

10. 인복이 있습니까?
Yes.
공연을 계속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후부터는 아르바이트를 공연장에서 했다. 2009년 <펌프보이즈>에서는 설레임 팔면서 안내 멘트를 했고, <헤드윅>으로 넘어가서 MD를 팔았고, 윤도현밴드 콘서트 때도 알바를 했다. (웃음) 공연장에서 일하니까 선배님들 공연도 어깨너머로 보고 우연치 않게 명함 주시고 가는 분들도 있어서 미팅도 많이 했었다. 당시 쇼노트에 있던 팀장님 소개로 장인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갈 수도 있었고. 작품을 많이 하진 않았지만 사람 운이 있다.

11. 상황에 대한 대처가 빠른 편입니까?
Yes.
예전에 성동일 선배님이 본인은 돈 받는 대로만 연기하지 예술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얘기하시는 걸 본 적이 있다. 연기도 잘하시지만 그 솔직함이 굉장히 멋있었다.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주변의 시선이나 돈 같은 것들과는 상관없이 꿋꿋이 하고 싶어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누군가가 알아줘야 예술가가 되는 것도 맞고. 그 줄다리기가 어려운데 그럴 바에는 내가 처한 상황과 현실을 인정하자는 주의다.

12. 계기가 있었습니까?
Yes.
나도 극단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연기에 대한 자존심이나 자부심 같은 게 있었고 예술이라는 건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영향을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옥탑방 고양이>를 오디션 때문에 봐야 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선입견이 있었다. 근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재밌고 신선하고 오히려 연극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했다. 일반 관객들이 부담 없이 편하게 와서 건강하게 보고 가는 것들을 보면서, 대중은 관심이 없고 평론가만 인정하는 걸 과연 진정한 예술이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다.

13. 강박적인 것을 꺼려합니까?
Yes.
간다 작품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유도소년>은 <올모스트 메인> 이후 두 번째 작업인데, 여기는 기본적으로 유쾌함과 자유로움이 깔려 있다. 선배, 후배, 연출 할 것 없이 모두가 친구처럼 서로를 대하고 이끌어주니까 위축되지 않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좀 더 좋은 것들이 생산되는 것 같다.

14. 꿈꾸는 미래가 있습니까?
Yes.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은연중에 영화 하는 사람은 배우고 드라마 하는 사람은 아니지? 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물론 드라마는 시간에 치여서 좋은 결과물을 내놓기 어려운 환경이긴 하지만 그게 다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침드라마에 나오면 그냥 탤런트고 연극 하면 또 배우라고 하고. 나는 다 똑같은데 왜? 난 그냥 박성훈이야. (웃음)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난 내가 배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혹시나 나중에 누군가가 그렇게 봐주면 정말 감사한 거고, 언젠가 그렇게 불릴 날을 꿈꾸면서 닥치는 거 최대한 열심히 하는 게 좋은 거다.

15. 마지막으로, 당신은 누구십니까?
박성훈.
빠른 1985년생. 유연하게 과정의 힘을 믿는 사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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