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봇>│① 또봇, 너를 갖고 싶다

2014.05.20

모두가 또봇을 좋아해
① 또봇, 너를 갖고 싶다
② “우리는 <또봇>을 생활밀착형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른다”
③ 이 중에 네 취향 하나쯤은 있겠지
④ 또봇이 필요한 당신에게

 

모두가 또봇을 좋아한다. 당연한 일이다. 변신도 하고 말도 하고 시민의 안전을 위해 불평불만 없이 악당을 위해 싸우면서도 위트까지 잃지 않는 변신 로봇들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변신자동차 또봇>(이하 <또봇>)에서 또봇은 대도시 시민들에게 영웅이자 친숙한 이웃이다. 그리고 작품 바깥의 이곳에서도 <또봇>은 마찬가지로 사랑받는 존재다. 지난 연말 레고의 아성을 깨고 완구 판매량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타깃 시청층인 어린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을 넘어, 제법 많은 성인들도 스스로를 ‘또덕’이라 자처하며 마치 왕년의 유승호나 최근의 여진구에게 그러하듯 하나, 두리, 세모 등 주인공 소년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또봇 Y가 마운드에 올라 프로야구 시구를 하기까지 했다. 과연 무엇 때문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또봇>에게 마음을 뺏기는 걸까. <아이즈>는 이번 스페셜에서 변신 로봇만이 줄 수 있는 로망을 채워주는 존재로서의 <또봇>에 대해 고찰하는 동시에 각기 다른 매력으로 취향을 저격하는 캐릭터들의 개성과 어른도 즐길 수 있는 또봇 완구의 활용법을 제시한다. 여기에 <또봇>을 연출하는 감독들과의 대화를 통해 작품 속의 다양한 즐거움이 어디서부터 출발하는지 확인해본다. 우리도 <또봇>을 좋아한다.



어릴 적, 세상에는 두 가지 영화가 존재했다. 로봇이 나오는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 알 파치노와 말론 브란도의 열연에는 눈을 돌리지 않아도 그랑죠의 변신 장면만큼은 감읍하며 보았고, 가뭄에 콩 나듯 받은 귀한 용돈을 모아 건담 프라모델을 살 만큼 로봇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최근 아이들에게 <변신자동차 또봇>(이하 <또봇>) 역시 그런 절대적 지지의 대상이 아닐까. 지난 2010년 처음으로 1기를 방영해 현재 14기까지 방영한 이 국산 애니메이션은 지난해 연말 완구 시장에서 레고를 제치고 판매량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승승장구 중이다.

<또봇>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완구 회사인 영실업과 함께 기아 자동차로 변신하는 로봇 완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각 또봇의 변신과 X, Y가 합체하는 타이탄, X, Y, Z가 합체하는 트라이탄 등의 변신 및 합체 메커니즘이 여타의 변신 로봇 애니메이션과 달리 철저히 로봇 완구의 그것에 맞춰져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당장 TV 방영만으로는 제작비의 반도 건지기 어려운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완구 시장과의 연계는 생존을 위해 필연적인 선택이다. 재밌는 건, 이처럼 시장 수익을 위한 선택이 결과적으로 변신 로봇물의 장르적 문법, 더 정확히는 역시 완구 시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던 90년대 일본의 변신 로봇 시리즈의 문법과 정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90년대 등장한 <용자 경찰 제이데커>(한국 방영 제목 <로봇수사대 K캅스>), <전설의 용자 다간>(한국 방영 제목 <전설의 용사 다간>) 등 용자 시리즈와 <절대무적 라이징오> 같은 엘드란 시리즈는 이러한 로망을 자극하는 서사를 보여줬다. 지구를 지키는 거대한 임무도 비장하기보다는 설레는 모험으로 그려진 이들 작품에서 주인공은 십대 초반의 소년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와 로봇의 관계는 파일럿과 기체의 감정 없는 관계가 아닌 우정으로 이어진다. 요컨대, 지구 멸망을 노리는 악당과의 싸움 중에도 다간이나 라이징오는 경외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거대하고 사랑스러운 장난감이다. <또봇>이 수호자이자 장난감으로서의 변신 로봇이라는 코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건 이 지점이다. 아예 극 중 또봇 자체가 현실의 완구와 동일한 <또봇>의 세계는 자연스럽게 수호자이자 장난감으로서의 변신 로봇이라는 코드를 가져온다. 평범한 초등학생인 하나와 두리, 세모 등이 인공지능인 또봇과 마음을 나누고 이들만이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또봇>의 설정과 완구로서의 인기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변신 로봇이 궁극적으로는 내 사랑스러운 장난감이 되는 세계에서 로봇 완구를 구매하는 건 그 자체로 텍스트를 즐기는 마지막 퍼즐이다. 평범한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할수록 실재하지 못하는 변신 로봇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현실에서 채울 수 없는 이 소유욕은 그나마 애니메이션의 그것과 거의 동일한 형태로 내 손에 쥐어질 때 비로소 상상적으로나마 채울 수 있다. 비록 <또봇>이 화려한 셀 애니메이션이자 고전인 용자 시리즈보다 잘 만든 작품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애니메이션과 완구의 간극이 제로에 가깝기에 완구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은 더더욱 크다.


과거의 변신 로봇물에 비하면 소박하게까지 느껴지는 <또봇>의 스토리가 오히려 애니메이션과 현실의 간극을 줄여 몰입을 높일 수 있는 것 역시 비슷한 이유다. 갈수록 스케일이 커지기보다는 꾸준히 일상과 밀접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는 제작진의 설명처럼, 부룽모터스, 아크니, 훤빈 등 끊임없이 새로운 적이 등장하지만 또봇의 활약 반경은 극 중 배경인 대도시를 넘어가지 않는다. 사실 변신 로봇 장르는 스토리의 실팍한 지점마다 좀 더 업그레이드된 합체 시스템으로 더 강한 적을 이겨내는 전형적인 에스컬레이션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다간이 이길 수 없는 적이 나온다면 다간 X가, 다간 X가 이길 수 없는 적이 나온다면 그레이트 다간 GX가 되면 된다. 합체가 완성형이 될수록 최종 보스와 최종 미션에 가까워지는 건 물론이다. 하지만 <또봇>의 아이들은 강해지는 적들과 싸우며 또봇 X, Y, Z가 합체한 트라이탄을 완성시킨 뒤에도, 차에 치일 뻔한 맹인 아저씨를 구하고, 지붕 위로 셔틀콕을 날려서 우는 남매를 위해 셔틀콕을 찾아준다. 대도시 범죄의 흑막인 아크니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앞의 이웃이 겪는 곤란함을 해결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용자나 엘드란 시리즈의 경우 어느 순간 평범했던 소년들에게 영웅적인 결단과 비장한 사명감을 요구하지만, <또봇>의 세계는 이러한 영웅 서사로부터 자유롭다. 그저 소소한 선의를 모아 정의로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낙관적인 믿음이 요구될 뿐이다. 착한 아이라면, 누구나 또봇과 함께 하나와 두리 같은 활약을 펼칠 수 있다.

가장 최근 시즌의 제목이기도 한 ‘또봇의 마음’이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또봇의 핵심 기술인 마인드코어는 말 그대로 로봇에게 부여된 마음이다. 마인드코어를 통해 또봇은 주인의 마음에 공명할 수 있으며 그 공명을 통해 물리적 한계 이상의 힘을 낸다. 모든 면에서 또봇보다 앞서는 로봇 아크타이런트가 아이들이 마음을 모아 만든 또봇의 실드에 무너질 때 아크니가 말한 것처럼 “이런 건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거”다. 하지만 극장판 <트랜스포머>부터 용자 시리즈까지, 언제나 변신 로봇 애니메이션의 핵심은 과학적 설명이 아닌 로망의 충족이었다. 나와 마음을 나누는 나만의 로봇을 통해 내 힘으로 나와 친구와 세상을 지킬 수 있다는 마인드코어 개념은 이 로망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또봇>의 성공은 국산 애니메이션의 승리, 레트로봇과 영실업 공동제작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변신 로봇물의 승리다. 이 영리한 작품은 한정된 제작비 안에서 이야기와 스케일의 외연을 넓히기보다는 변신 로봇만이 충족시켜줄 수 있는 쾌감에 집중한다. 자동차의 모습으로 변신해 대도시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건(1기 ‘변신자동차’), 나의 요청으로 그들을 지킬 수 있는 건(10기 ‘정의의 또봇’),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건(12기 ‘내 친구! 또봇’), 오직 변신 로봇뿐이다. 이 영리한 애니메이션을 보고 드는 아쉬움은 그래서 단 하나, 지금 내게 또봇이 없다는 것뿐이다. 그러니 더더욱 갖고 싶을 수밖에.

교정. 이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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