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김보성, 으리의 선물인가?

2014.05.19

‘의리’라 쓰고 ‘으리’라 읽는다. 한 획의 차이는 장르도 바꾼다. 느와르에서 코미디로. 하지만 <영웅본색>을 사랑하고 백 번 넘게 봤으며 볼 때마다 운다는 김보성에게 둘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쌍절곤을 휘두르다 이마가 찢어져 스무 바늘 넘게 꿰매야 할 때도 ‘반성’의 의미로 마취를 하지 않고 태연히 견뎠다고 자랑하는 이 사나이의 배짱은 독화살을 맞고도 맨정신으로 바둑을 두며 수술 받았다는 <삼국지>의 관우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의 어린 아들은 해맑게 증언한다. “아빠가 매운 냉면 먹고 집에 와서 배 잡고 뒹굴면서 살려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의리’와 ‘으리’ 사이 김보성의 이상은 전자에, 현실은 후자에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시작은 물론 ‘의리’였다. 아직 ‘허석’이라는 본명을 사용하던 신인 시절,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그는 우등생 은주(이미연)를 우직하게 짝사랑하는 남학생 봉구 역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타냈다. 선 굵은 외모에 다부진 체격과 복싱으로 다진 액션 실력은 청춘스타의 자리로 향하는 티켓이었지만 매니저도 없이 열정과 ‘의리’로만 작품을 결정하던 그에게 남은 커리어는 “주로 정의감 넘치는 의리의 사나이”(<동아일보>)였다. 하지만 <인간시장>의 주인공 장총찬처럼 되고 싶었고 매일 위기에 처한 누군가를 구하는 상상을 한다던 김보성은 자신의 인생 모토이자 이미지이며 캐릭터이기도 한 ‘의리’를 놓지 않았다. “폼 나게 살고 싶어” 형사가 된 원칙주의자(<투캅스 2>)든 교통법규로 캠퍼스를 호령하는 경찰(SBS <카이스트>)이든 가죽 재킷, 선글라스, 오토바이로 대표되는 ‘김보성 스타일’로 그가 연기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러나 ‘영웅’을 꿈꾸는 이의 삶이란 실제로는 그리 평안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법이다. 주식투자 실패로 전 재산을 날리고 ‘의리’로 차용증도 없이 거금을 빌려줬다가 역시 날린 김보성은 한동안 생활고에 시달렸다. 비슷비슷한 액션 코미디 영화에서 이미지가 소모되며 배우로서도 주춤했다. 그 와중에 주식 실전투자대회에 출전해 받은 상금은 기부했고, ‘주식’이라는 제목의 시(사면 내리고 / 팔면 오르네)를 썼다. 그가 모처럼 “대한민국 첩보원으로서 인류를 구하는 영웅 역할을 맡았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던 영화 <영웅: 샐러멘더의 비밀>은 전국 관객 6천여 명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매니저의 지인이 경영하는 경호업체에 이름을 빌려주었다가 그 업체가 파업 노동자들을 폭행한 ‘용역깡패’라는 사실이 알려져 비판받은 이후 그는 “정의롭지 않은 의리는 의리가 아니라는 것을 통감했다”(<스타뉴스>)고 말했다. 20년 전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하고 30년 전 <영웅본색> 시절에나 먹혔던 가치인 ‘의리’를 입버릇처럼 외치는 남자, 김보성은 연예계에 덩그러니 남은 과거의 화석 같은 존재였다. 


재기의 기회는 의외로 ‘으리’에서 왔다. 그것도 자신이 아닌 남으로부터였다. 지난겨울 tvN <코미디빅리그>에서 짙은 구레나룻을 그리고 섀도복싱을 하며 등장한 ‘보성댁’ 이국주는 김보성 특유의 호탕한 말투로 말끝마다 ‘으리!’를 붙이며 유행시켰다. 옥장판을 팔아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호구’가 되면서도 “다단계 노! 피라미드와의 으리! 의심 노! 친구와의 으리!”라 외치며 자신은 ‘으리’를 지켰다고 뿌듯해하는 캐릭터의 허술함은 큰소리 뻥뻥 치는 것과 달리 마음 여리고 귀가 얇은 김보성을 떠올리게 해 폭소를 자아냈다. 마침내 김보성이 이민호와 함께 출연한 화장품 광고 브랜드명에서 딴 ‘이니스프으리’를 비롯해 ‘으리렁’, ‘병아으리’ 등 무수한 유행어와 합성사진이 쏟아져 나왔다. 여세를 몰아 ‘아메으리카노’와 ‘에네으리기 음료’를 박살내는 ‘신토부으리’ 식혜 광고도 찍었다. 세월호 참사에 가슴 아파하며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 성금을 낸, 잔고를 계산하는 머리보다 뜨거운 가슴이 앞서는 남자 김보성에게 주어진 ‘으리’의 선물이었다.

물론 “젊은이들 사이에서 의리 열풍이 일어났다는 건 정의로운 의리에 대한 갈증이 폭발한 거”라는 그의 해석은, 안타깝지만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으리’ 열풍은 <영웅: 샐러멘더의 비밀>에 대해 “만약 노아가 살아 있다면 이 영화를 방주에 실었을 것이다!”라며 과장된 평가와 점수를 주며 장난치던 네티즌들이 전진의 ‘빠삐놈’ 이후 가장 반갑게 덥석 문 ‘떡밥’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의리의 가치가 아니라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김보성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거대한 리얼리티 쇼의 주인공 같기도 하다. 30년 동안 외길 이미지를 지켜온 남자가 드디어 자신의 가치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인정받는 ‘으리’의 시대, 이 예상치 못한 복권 당첨 같은 날들이 아주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쇼가 주는 교훈이 있다면 정말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거라는 사실이다. 언제 갑자기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올지 모르는. 그러니 역시, 끝까지 살아봐야 안다. 으리 모두, 으리으리하게! 




목록

SPECIAL

image 걸크러시 콘셉트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