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덴마크 우유장인 김현복을 찾아서

2014.05.12

이것은 새로운 도시 전설(Urban Legend)일까. 언젠가부터 인터넷에서는 신비의 우유장인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동원 데어리푸드에서 나오는 덴마크 우유 브랜드의 가공유마다 검수자의 이름이 적혀있고 그 중 김현복이라는 이의 이름이 적힌 가공유의 맛이 좀 더 진하다는 소문. 게시판과 블로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네티즌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김현복 장인에 대한 간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모카라떼, 카페라떼 민트, 카페라떼 토피넛 등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김현복 장인의 손길이 닿은 제품이 윤창수, 홍주은 등 다른 검수자들의 그것보다 맛있더라는 고백들이 모이며 그렇게 김현복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신앙이 되어갔다. 무엇도 믿기 어려운 시대에,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묵묵히 우유의 맛과 품질을 지키는 장인이 있다는 것만큼 따뜻하고 희망적인 미담이 어디 있으랴. 우유를 한 모금 테이스팅 하고선 “이건 아니야!”라며 우유팩을 내동댕이치는 장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물론 이단들도 있었다. 자신들은 윤창수 장인의 우유가 더 좋다는 이들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김현복, 윤창수들은 우유 검수자도 장인도 아니며 우유의 맛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간만에 모두가 하나 되어 누군가를 칭찬할 때 꼭 초를 치는 그런 사람들. 그럼에도 저널리즘은 우선 이단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올곧게 자신의 길을 걷는 우유장인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은 우유장인을 검증하겠다는 과학적이고도 각박한 기획으로 변질되었다. 취재 루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동료의 지인인 해당 브랜드 영업사원의 번호와 고객센터를 통해 얻은 유가공 제품 마케팅 부서의 번호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진실에 대한 열망이 클수록 장애도 커지는 것일까. 영업사원인 K는 바쁜 일이 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유가공 마케팅 부서의 전화에서도 CM송만 무한 반복 될 뿐이었다. ‘소와 나무가 자란다~ 소와 나무가 자란다~ 소와 나무가 자란다~ 소와 나무가 자라는 것은 누구든지 알지요~’ 하지만 저널리스트는 누구든지 아는 것보단 누구도 모르는 것에 관심을 갖는 법이다.

사실 궁금증이 커질수록,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말 우유가 검수자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면, 왜 그토록 수많은 우유 브랜드들에 대해선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일까. 왜 덴마크 우유라는 브랜드에 대해서만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동원에서 나오는 덴마크 우유는, 사실 덴마크가 아닌 정읍의 전용 목장에서 만들어진다. 덴마크라는 이름이 붙는 건 덴마크식 저온 살균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온 살균법이라면 이 살균법을 만들어낸 과학자의 이름을 딴 파스퇴르 우유도 있다. 덴마크 우유의 브랜드 네이밍에는 단순히 살균법의 구분 뿐 아니라 세계적 낙농 국가이자 푸른 자연,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복지 시스템 등 덴마크라는 나라가 가진 북유럽의 풍요로움의 이미지가 스며들어 있다. 커피가 들어간 가공유마다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들을 넣으며 유럽의 느낌을 강화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심지어 덴마크 우유 홈페이지의 ‘all about Denmark’에선 덴마크의 낙농 산업부터 역사, 기후, 심지어 국가 내 여성의 지위까지 상세히 설명하며 덴마크 우유와 덴마크의 이미지를 절묘하게 중첩시킨다. 이처럼 선진화되고 정직한 낙농 국가에서 만든 우유의 이미지이기에 더 신선하고 짙은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맛의 종류가 아닌 맛의 농도 문제로 이 소문이 시작된 건 이러한 맥락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때문에 취재가 잠시 정체된 사이 좀 더 기본으로 돌아가 과연 우유의 맛과 농도가 다를 수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회사 동료들을 상대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해보았다. 프랑수아가 그린 ‘연애편지를 읽는 여인의 표상’이 그려진 덴마크 모카라떼를 김현복 장인 제품과 장인수 장인 제품 두 종류로 구매하고선, 아래쪽에 표시한 컵에는 김현복 장인의 것을, 표시하지 않은 쪽에는 장ㅇㅇ 장인의 것을 따랐다. 흥미롭게도 맛에 대한 평가는 조금씩 달랐다. 취재팀의 C와 H1은 김현복 장인의 것을, 취재팀의 H2와 J, 디자인팀의 J는 장인수 장인의 것을 더 진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평가의 당락을 확실히 가를 기준이 있었다. 평소 디저트를 좋아해 웬만한 케이크나 타르트, 초콜릿 맛집에 정통한 ‘황금혀’ 편집장 K는 너무나 쉽게 김현복 장인의 우유를 골라냈다. 커피의 맛이 이쪽이 조금 더 진하다는 촌평과 함께. 어쩌면 도시 전설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부풀 즈음, 동원의 영업사원 K와의 통화가 성사됐다.

“저… 얘기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우유장인에 관한 취재 때문에요.”
“네, 블로그에서 많이 이야기되고 있어서 저희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게 사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우유팩에 찍힌 이름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없어요. 그분들은 우유 가공이나 생산 과정에 참여하는 분이 아니라 우유팩 포장을 담당하는 분들이거든요.”
“그럼 그에 따라 우유 맛이 다를 가능성은…”
“그럴 수가 없죠. 다 같은 라인에서 나오는 우유인데요. 다만 우리가 아무리 냉장 상태로 유통을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어떤 아주 작은 변수로 맛의 차이가 생길수도 있는데요, 그것도 정말 그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K와의 통화는 충격적이었다. 김현복 장인도 윤창수 장인도 맛과는 절대 무관한 분들이며, 회사 역시 처음에는 이 이슈가 제품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너도 나도 김현복 장인 아니 김현복 씨의 우유만 찾는 통에 오히려 유통기한이 짧은 우유 시장에선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간증은, 체험기는, 믿음은, 모두 단체 환각 효과에 불과했다는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며 방금 전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편집장 K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커피 맛이 미묘하게 이쪽이 진해요.” 풉.

명백해졌다. 우유장인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고, 우유마다 맛의 차이가 있다는 것도 혀의 착각일 확률이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남는다. 과연 무엇이 이처럼 거대한 집단 최면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이제는 우유가 아닌 대중의 반응으로 돌아가야 한다. 처음에는 덴마크 우유를 맛있게 먹는 팁으로 퍼졌던 정보가 어느 순간 김현복이라는 이를 장인으로 추대하는 팬덤으로 전환되는 그 변곡점에 집중하게 된 건 그 때문이다. 덴마크 우유에 대한 팁과 김현복 장인에 대한 흠모 사이에는 덴마크라는 부유하고 복지가 잘 된 선진 국가에 대한 동경이 공통분모로 놓여있다. 왠지 더 깐깐하고 더 순도 높은 우유를 만들 것 같은 브랜드 네이밍이기에 우유팩에 적힌 이름으로부터 우유 검수자라는 존재를 유추해내고, 그들에게서 낙농 국가 덴마크의 합리적이고 정직한 시스템을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장인이라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선 실제론 찾아보기 힘든 호칭을 김현복이라는 이에게 붙이며 열광한 그 대중 심리에는 김현복이든 누구든 자기 자리에서 고집 있게 일하는 장인이 있길 바라는 기대심이 깔려 있던 건 아닐까. 작은 인터넷 루머로 시작된 이 촌극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결여되어 있기에 더 찾게 되는 어떤 이상향에 대한 욕망으로 증폭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제 더는 굳이 김현복 씨의 이름이 붙은 우유를 찾아 먹진 않겠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그의 이름을 볼 때마다 이 흥미로운 소동극이 떠오를 것 같다. 재밌고 좋은 경험이었어요, 김현복 장인.



목록

SPECIAL

image 아이돌 연습생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