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민라 취소, ‘딴따라’는 생계를 포기해야 할까?

2014.05.01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다음 날, 우리는 주말로 예정되어 있던 공연 하나를 취소했다. 공연을 하지 않는 걸로 애도를 표할 수 있다거나 피해 입은 이들의 아픔에 동참할 수 있다는 대단한 생각을 품고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너무나 커다란 비극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공연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몇몇 공연이 취소됐다. 그런데 그 여파는 예상한 것 이상이었다. 관 주도의 공연이 잇달아 취소됐고, 그로 인해 음악 업계에 있는 이들의 생계에 비상이 걸렸다. 음향 및 조명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었고, 1년 중 대목인 5월에 집중적으로 벌어야 할 음악인들도 막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점점 뭔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뷰티풀 민트 라이프(이하 뷰민라)의 취소 소식을 들은 건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하마터면 취소될 뻔한 소속 팀의 단독 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현장에서였다. 그날 아침, 공짜로 맥주를 나눠주며 흥청망청 대는 페스티벌을 어떻게 개최할 수 있냐는 기사를 봤다. 그리고 오후에는 무슨 예비후보라는 사람이 이 시국에 풍악을 울리는 건 고양시민들의 애도를 방해한다고 일갈한 글을 읽었다. 그때만 해도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미 주최측은 이유를 설명하는 장문의 글과 함께 예정대로 진행할 것임을 밝혔으니까. 하지만 저녁이 되자 고양시 홈페이지에 취소를 통보하는 공지가 올라왔고, 몇 시간 후 주최사에서 공식적인 연락이 왔다. 고양문화재단 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인해 페스티벌을 취소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페스티벌 개최를 하루도 채 안 남긴 상황이었다.

참담한 기분이었다. 프로야구도, 영화도, 뮤지컬도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째서 음악 공연들만 이런 식으로 취소되어야 한다는 건, 우리가 하는 일이 피해를 입은 이들을 더 상심케 하고 사회적인 애도의 분위기를 훼손하는 특별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건지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딴따라라는 말이 떠올랐다. 음악 하는 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 우리 회사의 모토인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에도 들어있는 단어다. 사실 관심은 지속 가능성에 있었지 딴따라질이라는 말을 선택한 데는 큰 고민이 없었다. 약간의 위악과 약간의 자조를 담아, 사실은 그냥 웃겨 보이려고 고른 단어였다. 은연중에 딴따라가 담고 있는 비하의 뉘앙스는 이제 옛날의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인디 음악을 한다고 하면 그래도 기본적으로 존중을 받았고, 심지어 동경하는 이들마저 있었으며, 최소한 동정이라도 해주는 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이처럼 우호적인 소수의 비호 안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딴따라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악 하는 이들 중 흥청망청 거리고 방탕하고 나태한 사람들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업계에도 쓸데 없을 정도로 진지한 사람들, 웬만한 다른 직업인들 이상으로 음악을 잘 만들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 보통의 직장인들처럼 일주일에 4~5일씩 공연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도 무수하게 있다.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 중 흥청거리는 이, 방탕한 이, 진지한 이, 열심히 하는 이들이 다양하게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요컨대 음악을 만들고 부르고 연주하는 일도 하나의 직업일 뿐이다.

공연장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소리가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는 견딜 수 없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다른 직업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느 때처럼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모습 자체가 삶을 박탈당한 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모든 직업 활동, 생산 활동, 일상 생활을 중단해야 할까? 그럼 언제까지? 어느 시간이 흐르면 그때는 상처가 다 치유될까? 만약 지금 이 순간 공연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그건 시간이 흘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정말로 페스티벌을 하는 게 이번 사고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이들의 슬픔을 더할 수도 있다. 뷰민라의 주최사가 5천만원을 세월호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하기로 한 것도 그럴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짐작하는 페스티벌의 수익 규모로 봤을 때 이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피해자들의 상처를 그깟 돈으로 메우려 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거꾸로, 그렇다면 페스티벌을 취소하는 건 어떤 도움이 되는지 반문하고 싶다. 페스티벌에 들여온 스탭들과 아티스트들의 노고와 생계를 배려하고 관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주최사 스스로 희생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그들의 희생을 고양문화재단은 몇 줄의 공문으로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계약서 조항에 따라 배상하겠다.’ 고양문화재단이 두 번째로 보내 온 공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아마 배상금의 재원은 고양시민이 낸 세금이 될 것이다. 이처럼 그저 문제의 소지만을 없앤다는 이유로 모든 이들이 손해를 보는 결정의 배경에는 음악인 혹은 음악을 필요할 때 데려다 쓰고 언제든지 편의에 따라 내버릴 수 있는 사치품으로 여기는 마음이 배어있다. 생계에 대한 고려는 물론이거니와 직업인으로서 존중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는, 대대로 내려오는 ‘갑’의 전형적인 태도다. 그리고 정작 딴따라들을 천박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배경 삼아 금준미주에 옥반가효를 즐겼던 과거의 갑들과 부당거래에 성매매를 일삼는 현재의 갑들이었다.

나는 음악이 위로를 줄 만큼 대단한 뭔가라고 감히 생각하지 않는다. 거꾸로 그것이 무조건 천박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음악을 하는 이를 아티스트라 부르던 뮤지션이라 부르던 음악이라 부르던 혹은 딴따라라 부르던 상관없이 그렇다. 뭔가를 생산하는 것을 통해 자아 실현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려는 일반적인 직업인, 우리들 딴따라가 바라는 것은 딱 이 정도의 인식이다. 이 커다란 참사를 마주하고 어떤 말도 더하거나 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기껏 하는 얘기가 애도도, 위로도, 분노도 아닌, 내 일에 대한 변호라니. 스스로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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