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취향 콤플렉스

2014.05.01
카페에서 스토리를 짜다가 잠시 쉴 때면 여러가지 소리가 들린다. 그 중 '어쩔 수 없이' 가장 귀를 잡아 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소개팅을 하는 남녀의 대화소리다. 난 소개팅을 안 해봤기 때문에 (진짜다) 처음 만난 두 남녀가 어떤 대화를 하는지에 대해 상당한 호기심을 갖고있다.

처음에는 사는 곳이나 출신 학교를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공통 지인을 찾아내려는 시도, 소위 '족보 털기'를 한다던데 사실일까? 그 정도라면 상호간의 어색함을 깨기 위한 애틋하고 건강한 몸부림이라 할 만하다. 음음. 하지만 대화 주제가 '취향'으로 옮겨가면 어떨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남자에게 한층 다가앉는 여성. 혹은 게임이나 야구를 좋아한다는 여성에게 바로 반해버리는 남성. 액션영화를 좋아한다는 남성을 보며 주선자에게 이를 갈고 있는 여성 등 몇 가지 일화를 들은 이후로 취향에 대한 대화는 소개팅에 있어서 지뢰밭과 같은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음. 확실히 취향은 한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작가 지망생들은 자신의 영화, 음악, 만화 취향을 상당히 고심해서 다듬는 것 같다. 나 역시 과거 신인작가 시절 인터뷰를 할 때 취향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최대한 멋있어 보이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 지난 밤 액션영화를 보고 나와서 일부러 아핏챠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거나 당장 즐겨듣는 음악들이 대중 가요임에도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꼭 재즈명반을 이야기한다거나. 쓰고 보니 부끄러운 흑역사에 하나를 추가하는 고백이지만 뭐 어쩌랴. 그 때의 나는 그랬으니까. 아무튼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는 빅뱅과 존 콜트레인을 랜덤으로 틀어놓고 진심으로 좋아했으니까. 그리고 이런 나의 '애매한 취향'은 10대, 20대 시절 내내 일종의 컴플렉스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누군가가 좋아하는 계절을 물어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 각자 왜 좋은지를 이야기하고나서 '재미없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영화, 음악, 만화, 그 무엇에 관한 질문에도 사흘 굶은 들개와도 같은 적극적 잡식성을 피력하는 나에게 상대방은 이내 흥미를 잃곤 했다. 그래서 10대 때에는 보다 멋있어 보이는 대답을 고심해서 골랐고 2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당당하게 아이돌 가수에 대한 선호를 밝히는 솔직한 멋을 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모두를 정말로 만끽하며 지냈다. 그 뒤엔 뒷통수 어딘가에 매달린 죄책감, '나는 명색이 작가 지망생인데, 이렇게 취향이 없어도 되는 걸까?'를 되새김질 하곤 했다. 사실 죄책감이라기 보단 초조함에 가까운 감정이었지만 아무튼 그런 감각은 데뷔 초까지도 늘 가까이에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면서 뭐랄까,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원래 금언이란 그런 거다. 같은 말이지만 내가 변해가기 때문에, 다르게 읽힌다. 그 말은 바로 이 것이다. '명작이란 가장 흔한 테마를 가장 색다르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이 문장을 정리하고 나서, 학자금 융자를 다 갚은 듯한 후련함으로 죄책감과 초조감을 벗어났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시종일관 '새로움'과 그 부록처럼 딸려오는 '난해함'만을 찬양하던 동료의 작품이 어떻게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지를 볼 때가 있다. 반대로 무조건 쉽고 재미있고 편안하기만 한 작품만을 추구하던 작가가 어떻게 한번 읽히고 말 작품을 만들게 되는지도 간간히 목격할 때가 있다. 사실 해묵은 논쟁이라 할 수 있는 '대중성/작가주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풀어내도 답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용어정의부터 엄밀하게 한다면 어딘가에 가 닿을 수 있는 대화가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요즈음의 나는 그 자체도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두 가지는 사실 한 가지 명제의 앞과 뒤이기 때문이다. 명작이란 가장 흔한 테마를 가장 색다르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나는 들개같은 잡식성의 취향 역사를 다행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지금 대중적인 작품을 좋아한다고 해서 자신의 취향을 얄팍하다고 속단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난해한 작품에 꽂혀있다고 해서 문화적 선민의식을 느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이 작가 지망생이 아니어도, 이 생각은 권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자신의 그 날 그날의 상태에 맞는 감동거리를 언제든 골라들 수 있으니까. 편식은 좋지 않겠지만 과식과 잡식은 좋다. 적어도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그렇다. 그건 나의 모든 순간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플레이리스트다.

만화가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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