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서의 발전>, 재난에 맞서는 민주주의의 힘

2014.05.02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를 외치던 분들에게는 놀라운 얘기겠지만, 민주주의는 밥을 먹여준다. 비유가 아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인도 출신 석학 아마티아 센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기근이 발생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가난해도 민주주의 국가라면 흉년에도 기근을 결코 겪지 않는다. 반면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가벼운 흉년조차 쉽게 기근으로 이어진다. 왜 그럴까?

민주주의가 대단히 효율적인 정보 생산 체제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면 권력자가 관심 갖지 않았을 구석구석의 수많은 정보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빠르게 위로 올라가 모인다. 하이에크는 시장경제를 ‘가격이라는 형태로 정보를 생산하는 체제’로 설명한다. 여기서 ‘가격’을 ‘투표’로 바꾸면 그대로 민주주의에 대한 센의 설명이 된다. 기근은 의외로 막기가 꽤 쉬운 재난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정보 생산 체제가 작동만 한다면 기근이 설 자리는 없다.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센은 기근을 다룬 이 유명한 논의를 재난 일반으로 확장한다. 민주주의는 강력한 재난 경보기다. 민주주의에서 재난 정보는 빠르게 접수되고, 재난을 해소할 책임은 권력자를 강하게 구속한다. 만약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은 나라에서 어떤 재난이, 이를테면 경제위기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위기는 국민에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고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경제위기는 마치 기근처럼 뒤처진 사람만 덮친다.” 센이 예로 드는 나라는 어딘가의 독재국가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의 한국이다.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은 나라에서 위험은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다. 재난은 뒤처진 자들의 몫이 된다. 돈이 없어 저렴한 교통편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은, 훈련받지 않은 비정규직과 안전규정을 무시하는 과적의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재난이 발생한 이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은 국가기구는 재난 현장에서 올라오는 목소리보다 권력자의 심기경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재난 수습보다 정권 보위에 자원이 집중된다. 재난 현장에서는 우왕좌왕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국가의 민낯이 드러나고, 정권 보위의 현장에서는 일사불란한 총력전이 벌어진다.

거대한 비극과 지독한 무능 앞에 그저 허탈하면서도, 센이 던지는 질문을 곱씹게 된다. 우리는 재난에 맞설 만큼 충분히 민주적인가?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째 정치 기사를 쓰고 있다. 경제팀에 보내자니 산수가 안 되고, 국제팀을 시키려니 영어가 젬병이고, 문화면을 맡기에는 감수성이 메말랐고, 사건기자를 만들기엔 치명적으로 게으르다고 조직이 판단했다. 내막 모르는 어른들은 인정받아서 오래 있는 줄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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