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 “일에서만큼은 멘탈이 강하다”

2014.05.02
언제나 시작은 호기심이다. 그런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덜컥 맡은 일이 마음을 흔든다. 그동안 자신이 서 있던 곳을 살펴보고, 한계 역시 들여다보게 한다. 새로 만난 사람들과 새로운 감정을 나누고 더 잘하고 싶어 승부욕이 생긴다.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기는 과정은 누구나 같다. 지오 역시 그랬다. 무턱대고 시작했던 뮤지컬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더 좋아하고, 더 잘하고 싶은지 알게 됐다. 2012년 <광화문연가> 일본 공연을 시작으로, <서편제>와 <바람의 나라-무휼>(이하 <바나>)까지, 엠블랙의 리드보컬로 알려진 지오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뮤지컬을 하는 방식과 정반대로 움직인다. 라이선스 대신 창작을, 직접적으로 채우는 무대보다는 여백이 많은 비워내는 무대를 선택한다. 그래서 지오에게 이 게임 안에서 살아남는 법을 물었다. “인생 2막”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아니어도 스스로의 영역을 구축해온 이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


짧은 기간이지만 13회를 원캐스트로 하는 <바나>를 선택했다. 원캐스트는 2014년 현재의 주연급 뮤지컬배우들에게도 쉽지 않은 방식이다.
지오
: 원캐스트라는 건 작품을 선택하고 난 이후에 알았다. 하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굉장히 짜증 나는 상태고, 어떤 분들에게는 혼자서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기대를 하게 하는 부분인 것 같다. 둘 다 충족시키고 만족을 드리려면 그냥 빨리 녹아들어야 한다.

<바나> 개막이 5월 11일이니까 <서편제> 공연 종료와 함께 시작하는 셈인데 왜 이렇게 급하게 들어왔나.
지오: 나는 작품을 하고 안 하고를 선택하는 단계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전혀 아니다. 부득이하게 거절을 하는 건 내가 하는 게 관객이나 작품에 해가 될 것 같아서 그런 거고. 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나와 캐릭터가 닮은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이런 기회가 언제 올까 싶어서다. 내 평생 예술의 전당 무대에 언제 서볼 수 있을까. 이런 기회가 몇 번 오지 않을 거라는 점에서 의미가 커서, 단 한 회를 서더라도 여기 있고 싶었다.

호동 역을 제의하면서 이지나 연출은 무슨 얘기를 해줬나.
지오: 아무래도 걱정하지 말라는 의도에서 하신 말 같은데, 그냥 귀여우면 된다고 했다. (웃음) ‘<바람의 나라> 조정석’을 쳐보라고 하셔서 봤더니 너무 귀여우시더라! 그럼 이렇게 하면 될까? 라고 생각했는데 대본과 풀영상을 보니 호동이 <서편제> 동호에 비해 분량은 적지만 감정적으로나 표현법으로나 결코 수월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서편제> 할 때도 북만 잘 치면 된다고 하셨는데… 선생님께 속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웃음) 게다가 함께하는 서울예술단 분들은 이 작품만 거의 10년째 하고 계시는데 외부 단원인 내가 갑자기 들어와서 극에 방해가 된다면 진짜 죽고 싶을 거다.

<서편제>의 동호와 <바나>의 호동 왕자는 아버지와 대립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어떤 점에서 다른가.
지오: 동호는 소리 자체에 원망이 많은데, 그게 엄마가 죽을 때 아버지가 계속 소리만 해서 그렇다. 그래서 아버지를 볼 때마다 자신의 트라우마가 떠오르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걸 아버지가 막으니 집을 나간 거다. 근데 호동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자기가 짐이 되면 안 된다는 애어른 같은 생각이 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속이 꽉 찬 아이다.

본인의 실제 부자 관계는 어땠나.
지오: 어릴 때는 정말 엄격하게 자랐다. 왼손잡이였는데 왼손으로 숙제하다가 아버지 퇴근하시면 오른손으로 바꿔 쓸 정도였다. 일거수일투족이 늘 아버지 울타리 안에 있었다. 그러다 서울로 상경하면서부터는 음악을 할 수 있고 왼손으로 글 쓸 수도 있고 (웃음) 자유가 생겼다. 그런 소소한 자유가 생기면서부터는 아버지가 내 얘기도 많이 들어주시고 인정해주셨다. 난 아버지가 무뚝뚝하고 엄격해서 안 들어줄 거라 생각했거든. 근데 그건 내가 무서워서 안 했던 거였다. 모든 아버지는 다 자식이 먼저 다가와 주길 기다리시는 것 같다. 한 스물네다섯 때쯤 그런 걸 느끼게 됐다. 엄격했던 아버지랑 지금은 어른들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 같다. 재테크 얘기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웃음)

좀 전에도 그랬지만 작품 이야기 할 때 “폐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 유별나게 더 낮은 자세를 취하는 느낌도 든다.
지오: 아무래도 다른 아이돌과는 다르게 뮤지컬을 정공법으로 도전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이지나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이런 얘기를 들었다. “너 아이돌 오래 못 간다.” (웃음)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해서 뮤지컬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가진 재능이 조금이라도 여기서 표현될 수 있다면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솔직히 <광화문연가> 일본 공연으로 뮤지컬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노래를 어느 정도 하니까 잘 어울릴 것 같다 해서 그냥 겁 없이 도전했었다. 그런데 해보니 뮤지컬은 노래를 어느 정도 뽐낼 수 있다고 해서 아무나 도전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때 들었던 충격적인 말씀들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서 기억하고 새기고 있다.

뮤지컬에서 어떤 가능성을 본 건가.
지오: 뮤지컬을 내 인생의 2막이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프로페셔널한 곳이라서 그렇다. 가요계는 실력만으로 되는 곳이 아니라 연예활동을 하면서 문제도, 상처도, 부조리함도 많이 겪었다. 항상 나 하나만 잘하고 싶은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는데 여기는 분업이 잘 되어 있어서 각 파트마다 너무 잘하는 분들이 계신다. 여기는 실력이 출중해야만 한다. 그게 당연하고. 그때 느꼈다. 아, 이런 곳이 진짜 일하는 곳이고 내가 정말 일하고 싶은 곳이구나.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에서 일을 하고 싶었던 걸까.
지오: 그런 걸 굉장히 좋아한다. 지금 내가 회사에 속해 있지만, 우리 회사가 실수도 어설픈 점도 많다. 나 역시 회사보다 더 완벽한가 싶으면 그것도 아니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타당성이 있는 선에서 아니다 싶으면 회사든 방송국 PD님이든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꼭 말씀을 드린다. 예를 들어 방송을 기대하는 건 팬들인데 방송이 처음 취지와 달리 산으로 가면 팬분들이 방송을 욕하고, 그러면 PD님도 안 좋아지시는 거니까 촬영 당시에 얘기를 안 하면 모두가 손해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뮤지컬은 다르다. 아직은 내 생각을 가질 만큼의 경력이 여기서는 없으니까 틀리다는 말은 다 수용한다.

주로 무엇에 대한 지적이 많나.
지오: 왜 넌 엠블랙인데 춤을 못 추니? (웃음) 선생님은 그런 걸로 분위기를 좋게 만든다. <서편제> 때도 동호는 춤을 추지 않는데 앙상블 춤이 좀 이상한 거 같다고 “지오야, 네가 한번 해봐” 이러신다. 그러면 난 당황해서 “예? 제가요?” 이러고. (웃음) 주위 선배님들 얘기를 들으니 이지나 선생님은 배우에 대한 애착이 큰 분이시라고 하더라. 그래서 같이 하자고 한 배우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관객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욕먹기 전에 선생님이 먼저 욕을 강하게 하신다. 나는 부족한 게 너무 많아서 선생님께 의지하는 게 많다.

이지나 연출이 작업한 창작뮤지컬 중 상징과 여백이 많은 작품이 <광화문연가>-<서편제>-<바나> 순이다. 점점 비워내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작업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지오: 선생님 작품은 타임슬립처럼 시대를 왔다 갔다 하는데, 그 비중이 가장 큰 게 <바나>같다. 3살이었다가 15살이었다가 다시 5살이었다가. (웃음) 게다가 호동은 옷도 한 벌이라 의상이나 헤어, 메이크업으로 변화를 주는 것도 아니어서 그 1~2년의 차이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가 가장 어렵다. 시대적 배경이나 장르의 특징 때문인지 몰라도 부도, 살, 신수, 한자로 이루어진 글들이 많다. 순수하게 극에 빠져들어서 최대한 많이 이해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너무 어렵다.

<서편제>에서 송화와 이별할 때 흘리는 눈물이 “극에 빠져들어야 한다”는 말을 증명해주는 것 같다. 몰입도가 좋은 편이던데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나.
지오: 영상을 되게 많이 본다. 노래 연습도 그런 식으로 해왔다. 나한테는 모방이 실력이 되는 지름길인 것 같다. 이러면 나만의 스타일이 없다고 하는데 일단 좋은 건 본받고, 선배님들보다 조금이라도 다른 쪽으로 표현해서 잘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 부분은 다르게 연습해본다. 영화를 한 번 볼 때, 두 번 볼 때 의미가 다른 것처럼 영상을 보면서 들리는 부분과 보이는 부분을 계속 채워나갔다.

연습실에 꼬박꼬박 참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나.
지오: 그건 의무고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 종일 연습을 하지 않더라도 연습실에 가는 건 선배들의 기운을 받기 위해서였다. 땀 냄새, 약간의 습기 이런 것들이 익숙해져야만 무대에서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소대에서 다음 신을 준비할 때도 선배님들이 연기나 무대 쓰는 걸 계속 봤다. <서편제>에서 가장 좋아하는 신이 ‘부양가’ 장면인데, 그 신에서 유봉의 속마음이 드러나고 동호의 오해가 관객들에게 풀린다. 유봉의 ‘한이 쌓일 시간’을 좋아하는 것도, 너무 강한 아버지인데 그 노래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다 얘기하는 게 짠해서다.

<서편제>는 음악적으로 록, 발라드, 블루스, 판소리까지 다양한 장르를 다루고 있다.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본인에게 어울리는 게 무엇인지 찾았나.
지오: 오히려 나는 더 뮤지컬적인 것 같다. 요즘 음악들은 다양한 악기를 쓰기 때문에 목소리가 묻히는데 나는 순수하게 가사나 음정을 들을 수 있는 노래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뮤지컬넘버들이 훨씬 더 내 취향이고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걸 잘 표현해내지 못해서 문제인 거지. (웃음) 앞으로 진지하게 도전하는 이 뮤지컬을 계속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더 커졌다. 정말 여기서는 실력이 가장 중요하니까. 호흡법이나 창법, 발성이 컨덴서 마이크에 적응되어 있어서 무대에서 소리가 길게 뻗어 나가지 못하는 부분이 가장 큰 단점이다. 그래도 뮤지컬배우들 중에서는 어린 나이라 성장할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하는 마음가짐만큼은 강점이라면 강점일 수 있을 것 같다. 관객들이 인정은 안 해도 얘가 노력하고 있구나 라는 것만 알아주면 된다.

어쩔 수 없이 관객은 과정보다는 결과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
지오: 그래서 난 피드백을 굉장히 많이 받아들인다. 말도 안 된다며 악플 보지 말라고 하지만, 다 본다. 그냥 하는 소리라도 관심이 있고 안타까운 마음에서 해주는 말이지 않을까.

굉장히 멘탈이 강한 사람 같다. (웃음)
지오: 게임 할 때는 좀 약한데 (웃음) 일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멘탈이 강하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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