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이허브에 탐닉하는가

2014.04.30


지난 4월 8일 식품의약품 안전처는 유해물질 함유, 허위·과대광고 등을 들먹이며 아이허브를 비롯한 해외 쇼핑몰들에 대한 근본적 접속 차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들이 진짜 걱정하는 것이 누구인지 우리가 설마 모르겠는가. 


나는 왜 아이허브에 열광하는가. 쇼핑은 산책이기 때문이다. 가장 빠르게 목적지에 닿는 것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모른다, 건들건들 구경이나 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불필요한 구매에 가장 적합한 물건은 생필품이다. 어차피 필요한 물건이니까 당장은 안 필요해도 언제나 살 수 있는 것이다. 샴푸나 버터를 싸게 사는 것은 돈을 쓰면서도 버는 것 같은 착각까지 일으킨다. 게다가 딱히 비싸지도 않은데 유기농님이 아니신가. 그 떳떳함은 소비, 그것도 해외 소비의 죄책감을 덜어 준다. 


이를테면 2014년 3월 마지막 주, 바다를 건넌 귤젤리 네 통이 우리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 주말 한국행 비행기에 실린 수천 통의 일부이다. 아이허브의 주간 할인품목에다가 무료 배송 막바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귤 젤리란 도대체 무엇인데 이 난리인가. 멀쩡한 이름은 따로 있지만 ‘귤 젤리’로 통하는 이 물건은 비타민이다. 하지만 이것을 건강 때문에 구매하는 사람은 최소한 내 주위에는 없다. 이 새콤달콤한 젤리는 간식이다. 그것도 악마 같은 간식이라 일단 먹기 시작하면 바닥을 볼 때까지 멈출 수 없다. 하지만 귤 젤리의 악덕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왕설탕에 굴린 젤리가 아니라 건강식품을 먹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최소한의 죄책감마저 날려버리는 것이다.


아이허브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원래 비타민이었다. 국내의 반도 안 되는 가격에 비타민을 필두로 각종 건강 보조 식품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중년층에 입소문이 난 것이다. 다음은 화장품이었다. 대형 드럭 스토어나 인터넷 등지에서 비싸게 팔리는 해외 유기농 화장품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고, 국내에 안 들어오는 특이한 제품들까지 있다는 소리가 이십대 여성들까지 끌어들였고, 결국 한글 사이트까지 개설되었다. 


내가 이곳에 입문한 것은 세제 때문이었다. 그 무렵 나는 세수와 머리감기는 물론, 빨래와 설거지까지 해결되는 다목적 물비누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비싸서 불만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반값에 팔았다. 게다가 무료 배송이었다! 일정 금액 이상이면 해외 배송료를 받지 않았다. 그걸 맞추는 것이 설마 어렵겠는가. 나는 제모제와 홍차와 치실을 샀고, 개 껌과 가루비누와 자외선차단제도 샀다. 하지만 주력은 식품이다. 남들은 차와 잼, 초콜릿인가 본데 나는 곤약이나 훈제 굴 통조림에 아티초크 병조림, 바닐라 엣센스에 말린 올리브를 샀다. 물론 초콜릿도 관심 많아서 완전정복의 날이 머지않고, 기네스 펠트로나 먹을 성 싶은 레몬그라스 진저 라멘이라는 물건에까지 도전했다. 요즘은 콩에 심취했다. 병아리 콩에 렌즈 콩, 리마 콩, 잠두까지 우리 집 냉장고에는 4종 콩 세트가 완비되어 있다. 이제 물비누고 뭐고 모른다. 아이허브는 개미지옥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심기가 불편하다. 지금껏 가격차별로 재미를 보던 축이다. 가격차별은 상품을 시장에 따라 다른 가격으로 판매하는 전략이다. 똑같은 물건인데 100원까지만 낼 사람에게는 100원을, 200원이라도 살 사람에게는 200원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차별받는 것은 사실 가격이 아니라 소비자인 셈이다. 물론 아무리 돈이 썩어도 그렇지, 100원짜리 시장이 뻔히 집 앞인데 200원짜리로 가지는 않는다. 그곳의 존재를 모르거나 갈 수 없을 때만 다른 곳에서 구매한다. 한국의 경이로운 택배와 인터넷 시스템은 가격차별이 힘들게 만들었다. 10년 전과 달리 대형 마트가 없는 곳에서도 휴지나 샴푸를 최저가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남은 것은 글로벌 가격차별이다. 수입품은 물론이고 국산도 국내에서 더 비싸게 파는 현상에 우리는 익숙한데, 이런 취급에 대한 전문 용어도 있다. ‘호갱’.

  

동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숲에서 사는 즐거움’에서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들이 모두 잡혀 먹히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모래를 뿌리며 달려드는 개미귀신에 맞서 다리 하나를 내주면서까지 탈출에 성공하는 개미들이 있다고 한다. 나는 언젠가 아이허브를 탈출할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나의 문제이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다 큰 어른이랍니다.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피의 책』 『블루 아라베스크』 등을 번역했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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