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수, <공동경비구역 JSA>의 마스코트 정우진 전사

2014.04.03
“한 주름 하니까 노역을 많이 했어요” 하며 웃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입가로 반달 같은 주름이 여러 개 잡혔다. 팬클럽 명이 ‘철수와 영희’일 만큼 다소 투박한 이름과 “괴롭히고 싶게 생겼다”는 도토리같이 동글동글한 외모. 임철수가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 JSA >)에서 7남매의 막둥이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북한군 정우진이 된 것은 외모에 기댄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는 이데올로기와 남·북 총격전이라는 묵직한 이야기 속에서 적당한 유들거림으로 임철수라는 이름을 무대 곳곳에 심어놓고 슬쩍 빠진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그의 연기는, 웃으면 웃는 대로 찡그리면 찡그린 대로 변하는 그의 주름처럼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임철수 본인과 똑 닮았다.

1. 뮤지컬배우입니까?
Yes.
2004년에 데뷔해 뮤지컬 <사춘기>,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여신님이 보고 계셔> 등을 했고, 지금은 < JSA >에 출연 중이다.

2. 이병헌입니까?
No.
신하균 선배님이 맡은 북한군 전사 정우진 역이다. 영화가 개봉한 지 벌써 14년인데 지금 봐도 연기를 너무 잘하시더라. 영화를 생각하면 부담이 당연히 된다. 근데 이 작품은 소설이 바탕이라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기도 비슷하기도 해서 아예 영화를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리딩, 쇼케이스, 본 공연까지 다 참여했는데, 처음에는 앙상블이었다가 정우진 역을 했던 배우가 사정상 쇼케이스를 못 하게 되면서 정우진을 하게 된 거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얘기를 하는 편이다. 기회가 쉽게 오
지 않으니까. (웃음)

3. 사투리를 씁니까?
Yes.
<여신님이 보고 계셔>, <예스터데이>, < JSA >까지 계속 북한 사투리를 쓰고 있지만, 세 작품 다 조금씩 다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창섭은 영화 <황해>에 나온 말투에 가까운데 뉘앙스가 한정적이라 쓰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에 < JSA >의 우진은 평양 쪽이라 좀 더 수월했고. 북한군을 계속 해서 더 이상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우진이라는 이름이랑 따뜻한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남한군 김수혁은 하고 싶어도 이미지가 안 맞는다. 깔창도 많이 깔아야 하고 화장도 진하게 해야 된다. (웃음)

4. 남·북한군이 돈독합니까?
Yes.
김수혁 역의 (정)상윤이 형이랑 되게 친한데, 원숭이 상이라고 맨날 놀리더니 어느 날 김수혁이 오경필·정우진과 처음 만나는 신에서 “원숭인가?” 이러는 거다. 뭐든지 다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기는 했지만 순간 임철수로서 정상윤한테 서운하더라고. (웃음) 남성식 역의 (이)기섭이 형은 7년간 같이 산 룸메이트인데 상대역으로는 처음 만난 거라서 첫 공연 끝나고 둘이 울기도 했다. 한 무대에 설 수 있는 게 너무 감사하다고. (웃음) 그런 형들한테 죽는 거니까 가짜 총이라도 총구를 들이밀면 너무 이상하다. 우리 공연은 그 친밀함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5. 분위기 메이커입니까?
Yes.
괴롭히고 싶게 만드는 상이라고 사람들이 나만 공격한다. 신성민은 동생인데 말을 못 하겠다. 한마디 하면 열 개로 돌아오거든. 최성원은 인생 최대의 적이고. 정말 친한데 정말 짜증 나. (웃음) 그리고 실제로도 막둥이라서 형님들한테도 잘 앵겨 붙는다. 공연 시작 전 무대 밖에서 귓속말하다가 뽀뽀 딱 하고. 그러면 (이)석준이 형이 멱살을 잡는데 살짝 웃는 거 다 보인다. 나를 버려서 분위기 좋게 만든다는 걸 다들 알았으면 좋겠다. (웃음)

6.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Yes.
군인이셨던 아버지 말고 한때 에어로빅에 빠져 있던 어머니의 피를 받은 거 같다. 아버지랑 너무 닮아서 아버지 사진을 카톡 프로필로 해놓으면 무슨 공연하냐고 물어볼 정도인데, 공연 보러 오시면 아무리 시끄러워도 10분 만에 잠드시거든. (웃음) 누나들도 가야금, 아쟁을 해서 집에 악기가 항상 있었고, 큰누나가 “재밌게 생겼으니 연기해보라”고 해서 계원예고에 갔다. 머리 기를 수 있다고 해서 갔더니 1년간은 군대보다 규율이 더 세서 못 하고 고2 때 길렀는데 너무 안 어울리더라고. 오로지 머리와 과반수가 여학생이라는 게 중요했다!

7. 터닝 포인트가 있었습니까?
Yes.
우연히 (이)율이 형 입시 지도를 해주던 조승룡 선생님의 ‘This is the moment’를 듣고 그때 이런 게 있어? 싶어서 연기를 한번 해볼까 생각했다. 그러다 남은 인생 동안 연기를 더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돌아가신 할아버지 때문이다. 스무 살 때 학교에서 (조)승우 형님, 구소영 선생님이 오셔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했었다. 마지막 공연 날 당시 위독하신 할아버지가 나를 찾고 계셨다는데 공연을 했고, 끝나자마자 할아버지께 가는 길에 눈을 못 감고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방학 때마다 할아버지 댁에서 거의 살았고 워낙 예뻐해 주셨는데… 어떻게 보면 내가 존경하는 분의 임종을 공연이랑 바꾼 거니까 그날 이후로는 매번 할아버지를 위해 공연을 올린다고 생각한다.

8. 누군가를 부러워한 적이 있습니까?
Yes.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RDP라고 쫑파티 때 다음 작품 대본을 받을 정도로 1년에 몇십 작품씩 하던 동아리가 있었다. 거기는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도 못하면 잘리는 곳이었다. 모두가 못하면 공연을 안 하고 만다는 각오로 하는 굉장히 치열한 곳이었다고 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전학생을 통틀어 연기 잘하는 엑기스들만 모여 있었다. 너무 가고 싶었지. 그 팀이 학교에서 작업했던 게 뮤지컬 <사춘기>였고, 2008년 프로 무대에서 했을 때 합류하게 됐다.

9. 주인공을 꿈꿉니까?
No.
중학교 때까지는 농구를 했는데, 포지션이 포인트가드였다. 직접 슛을 쏘는 것보다 길을 보고 패스해줄 때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일단 주인공 감도 아니지만 항상 그런 역을 많이 해서 그런지 옆에서 받쳐주고 치고 빠지고 토스해주는 게 더 재밌다. 그동안 코믹한 캐릭터를 종종 했는데, 애드리브를 연습 때는 해도 공연 시작하면 마지막 공연 때까지도 안 한다. 공연을 할수록 더 깊어져야 되는데, 애드리브 때문에 원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희석될 수 있으니까. 고집이다. 매너리즘이 올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 고민도 없어지더라. 관객들이 웃는다고 다 잘 보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고, 무대가 무서운 곳이지만 내 할 일 잘하는 게 더 중요하다.

10. 노래는 잘합니까?
No.
학교 다닐 때 성악도 1년 반 정도 배우면서 준비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 공연을 봐도 내가 해봐도 뮤지컬이 노래로 많은 걸 감추는 것 같았다. 내가 대극장 가서 류정한 선배님처럼 할 수도 없으니 노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노래가 주는 힘이라는 게 있고, 정서를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연극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연극성이 강한 작품이 내가 하고 싶은 것에 가까운 것 같다. 욕심이 많은 거다. 매번 왔다 갔다 하고 싶으니까. 그래도 노래방에서는 곧잘 한다. 에코 빵빵해서. (웃음)

11. 좋아하는 곡이 있습니까?
Yes.
모든 오디션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부른다. 김광석의 목소리를 너무 좋아하고 그 정서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여신님이 보고 계셔>도 이 노래로 붙었다. 2007년에 <노트르담 드 파리>로 첫 오디션 본다고 머리카락이랑 눈썹 다 밀고 목욕재계하고 갔다. 크루아상 먹는 프랑스 크리에이티브 팀 앞에서 ‘서른 즈음에’ 부르니까 “나가세요~” 이러더라. 당시 나에게는 오디션이라는 거 자체가 성스러운 의식이라서 (웃음) 붙고 안 붙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12. 닮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Yes.
2009년에 연극 <39계단>으로 석준이 형을 처음 만났는데,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고 일할 때는 굉장히 이성적이고 그 시간이 지나면 또 확 풀어져서 후배들을 챙긴다. 그게 너무 멋있어서 그 이후로는 고민도 털어놓고 작품 할 때마다 자문을 구하며 멘토로 삼고 있다. 며칠 전에는 낮 공연 끝나고 같이 담배 피우고 극장으로 들어가는데 이 밝은 날에 의상 입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그 뒷모습이 너무 멋있더라. 몇십 년째 저 자리를 지키는 게 굉장히 멋있고 섹시하더라고.

13. 사람의 힘을 믿습니까?
Yes.
<39계단> 모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제대한 지 7년이 지났는데도 빠지지 않고 내 공연 보러 오는 군대 친구도 있다. (박)해수 형이랑도 친한데, 학교 다닐 때 그냥 인사만 하는 선배이던 시절 술 마시다가 크게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그다음 날 학교 가서 사과했더니 “괜찮아, 순대국밥 쏴~”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친해진 사이다. 기섭이 형은 학교가 죽전으로 이사 갔을 때 갑자기 전화 와서 “너 방 구하고 있다며? 같이 살래?” 이래서 7년째 같이 살고 있고. 인연이 이어진다는 건 내가 좋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같이 느꼈다는 거니까 난 인복이 많은 것 같다. 그런 인연과 행복들이 나를 쌓아가고 그게 무대 위에서도 증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14. 꿈꾸는 미래가 있습니까?
Yes.
2012년에 <로미오&줄리엣>에서 머큐쇼를 했을 때 몸속의 화를 봉인 해제시키면서 갈기갈기 찢고 욕하고 그랬더니 해방감이 들었다. 연극 <스테디레인>의 대니도 그런 역이라 10년 후에는 꼭 해보고 싶다. 근데 <빨래>같이 소소한 작품도 좋아하고, 장민호 선생님처럼 적은 액팅과 에너지로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게 가장 고급스러운 것 같다. 고민이 많은데 여기서 내가 제일 추구하고 싶은 건 배우와 관객 사이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순간 스파크 같은 거다. 무대에서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해수 형도 <맥베스> 하다가 어느 날 한 2초 정도 400명이 자기를 딱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더라. 그런 걸 하고 싶다.

15. 마지막으로, 당신은 누구십니까?
임철수.
1984년생. 자연스러움을 꿈꾸는 사람, 좋은 사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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