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판 페르시의 운수 좋은 날

2014.03.24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불운의 본질을 날카롭게 묘사한 작품이다. 예기치 못했던 행운이 연달아 이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그 기분에 도취된 순간, 바로 그 행운의 정점에서 불운은 조용히 시작된다. 로빈 판 페르시의 지난 한 주는 완벽한 ‘운수 좋은 날’이었다. 원정 1차전에서 0:2로 패해 탈락 직전에 몰렸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판 페르시는 올림피아코스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맨유의 극적인 8강행을 이끌었더랬다. 소속팀 맨유도 살리고 모예스 감독도 살리고 자기 자신도 살린 아름다운 세 골이었다. 그리고 종료 직전 판 페르시는 무릎 부상을 당했다. 결과는 4~6주 결장. 사실상 시즌 아웃 판정이었다.

사실 불운의 전조가 없지만은 않았다. 브라질 월드컵의 가장 든든한 동료 중 하나였던 케빈 스트루트만(24·AS로마)이 3월 10일 무릎 부상으로 월드컵 진출이 좌절됐다. 벵거 감독의 아스널 1000경기 지휘를 기념해 NBC가 선정한 ‘벵거의 베스트11’에도 판 페르시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앙리와 베르캄프의 후배라는 것도 불운이라면 불운이다!). 불운이란 녀석, 한번 찾아오면 끝을 본다고 하던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사실상 다음 시즌 챔스 진출의 유일한 희망인 맨유의 8강 상대는 유럽 최강팀 바이에른 뮌헨으로 결정되었다.

모예스와는 뭔가 좀 안 맞고, 레전드와 팬들에게는 충성심 없다고 혼나고, 늦게나마 폼 좀 올라오나 했더니 바로 찾아온 시즌 아웃 부상. 이제 발등에 떨어진 건 브라질 월드컵에라도 출전할 수 있게 몸을 만드는 일이다. 스페인·칠레·호주가 한 조에서 눈 부릅뜨고 기다리고 있는 고난의 월드컵이지만 판 페르시여, 너무 낙담하지는 말기를. 등번호(20)부터 그대는 행운(7)과 불운(13)이 교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까.

이민호
MBC 스포츠 PD. 주요 연출작 <야구夜!>, <야구 읽어주는 남자>. “소시민은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는 노모 히데오의 말은 한계투구수를 잊게 하는 인생의 에너지원.



목록

SPECIAL

image SNS와 여성 연예인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