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의 전략가들│② 영기획 대표 하박국 “신에서 중요한 건 흐름을 만드는 일”

2014.03.19

인디의 전략가들
① 프로듀서 나잠 수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
② 영기획 대표 하박국 “신에서 중요한 건 흐름을 만드는 일”
③ 공연기획자 황경하 “홍대에서 할 건 다 해봤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장기하는 없다. 십센치도 없다. 신선한 얼굴과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던 지난 몇 년간과 달리, 현재의 인디신은 잠잠한 분위기다. 주목받는 뮤지션의 탄생이란 희귀한 일이 되었고, 대부분의 레이블들은 좀처럼 뚜렷한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홍대 앞이 곧 인디신이라는 이야기도 옛말이 되어가는 중이다. 사람들을 흥분시킬 만한 움직임이라곤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는 이들은 분명 존재한다. 2012년 6월에 문을 연 YOUNG GIFTED&WACK(이하 영기획)은 신기하고 낯선 레이블이다. 숨어 있는 전자음악 음반들을 발굴하는 것도 모자라, 자체적으로 기획 기사를 쓰고 국내 최초로 전자음악페어인 <암페어>까지 주최했다. 게다가 각각 지난 9월과 12월에 발매한 그레이(GRAYE)의 < MON >, 사람12사람의 <빗물구름태풍태양>은 기존 미디어의 도움에 기대지 않고도 입소문을 타며 꾸준히 판매되는 중이다. 1인 레이블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영기획 하박국 대표에게 물었다. 잘 되어가고 있냐고. 그는 아직까지 커다란 성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가능성은 봤다고 말했다.



전속 디자이너가 생겼다고 들었다. 제반 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건가.
하박국
: 영기획이 만들어진 지 1년 반 정도 됐는데, 인프라가 생긴 건 있다. 레이블, 미디어, 공연기획까지 다 하다 보니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지. 가장 큰 재산은 인디신에서의 역할을 인정받은 거고. 그거 말고는 딱히 좋아진 게 없다. 여전히 가난하다. (웃음)

시작하면서 기대한 만큼은 성장하고 있는 것 같나.
하박국
: 원래는 영기획에 하루 4시간만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시간엔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운영해야지 싶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까 그 정도로 투자해선 안 되겠더라. 공연기획, 콘텐츠 제작, 대외활동, 영업, 정산, SNS 관리까지 나 혼자 하니까 시간이 진짜 오래 걸린다. 그래도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는 느낌은 드는데, 단계마다 해야 하는 것들을 놓치고 커왔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뭘 놓친 걸까.
하박국
: 어떤 일이든 초반에는 충성도 높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점점 성장을 하게 된다. 그 부분을 간과했던 거다. 코어한 팬들과 스킨십을 많이 하면서 커왔어야 했는데, 무작정 규모만 키운 듯하다. 다른 사람들은 ‘영기획 팬덤이 크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허수가 많다. 수익 면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목표치를 못 이룬 것도 그 때문인 것 같고. 물론 2012년과 2013년의 상황이 너무 달랐던 이유도 있다. 1년 사이에 음반 시장이 너무 많이 죽은 거지.

그래도 그레이나 사람12사람의 음반은 제법 많이 팔린 거 아닌가.
하박국
: 사람12사람은 노래에 힘이 있는 팀이기 때문에 잘 팔리고 있다. 그레이는 아직까지 손익분기점을 못 넘기고 있는데, 곧 넘길 거라고 내다보고 있다. 분명히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음악을 이만큼 알리고 이만큼 판 건 선방이긴 하다. 하지만 레이블을 운영할 수 있을 만큼의 수익으로는 직결되지 않았다. 음반이라는 것 자체가 공연장이나 페어에 가서 추억의 매개로, 일종의 MD처럼 사는 게 돼버렸으니까. 얼마 전에 팟캐스트에서 들었는데, 오지은 씨가 2007년에 음반을 1만 장 팔았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때는 시장이 천 장 단위였다면 지금은 백 장 단위로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나온 전자음악 음반 스물아홉 장 중 100장 넘게 판매된 건 클래지콰이나 글렌체크, 그레이 등 다섯 장 미만일 정도니까.

그레이는 기존 미디어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도 홍보가 잘 된 것 같더라.
하박국
: 요즘은 음악보다 스토리를 먼저 보는 시대다. 그레이는 군산에서 올라온 친구라 척박한 땅에서 고군분투했고, 자신의 신을 일구기 위해 노력한다는 포인트로 홍보를 했다. 그리고 영기획 사이트에서 그레이 특집을 하기도 했다. 요즘은 음반에 대한 반응이 “우와 좀 좋은 듯ㅋㅋ” 하고 끝나버리니까,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가이드 같은 걸 주고 싶었다. 디구루, 캐스커, DJ 소울스케이프 같은 분들에게 부탁드려서 < MON > 리뷰를 써달라고 했지.

사람12사람을 알리는 방식은 또 달라야 했을 텐데.
하박국
: 사람12사람의 경우엔 음반 발매 1년 전부터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빗물구름태풍태양’의 인기가 워낙 높았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국내에선 음원 서비스를 하지 않길 원했고, 연말인 12월에 음반이 나오는 바람에 다른 이슈가 많아서 홍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YG엔터테인먼트에서 ‘D-ㅇ일’이라고 띄우는 것처럼 SNS에 아무 설명 없이 링크만 달아서 1부터 12까지 숫자로 티저를 띄웠다. 프리뷰 트랙으로는 먼저 공개됐던 ‘빗물구름태풍태양’과 비슷한 스타일이 아닌 ‘더 많은 이야기’를 골랐고. 이 팀의 음악적 가능성이 더 넓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영기획에서 발매한 그레이(왼쪽)와 사람12사람의 앨범.

일이 정말 많겠다. (웃음) 이 정도로 힘들 거라는 각오는 했을 텐데, 왜 레이블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가.
하박국
: 1990년대 후반부터 홍대 앞에 공연을 보러 다녔다. 드럭에서 크라잉넛이 공연하고, 마스터플랜이 막 생기고 할 때쯤이었다. 이 신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지냈는데, 프리랜서로서 일한 건 많지만 메리트가 없더라. 내 이름을 갖고서 일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갖고 있는 능력치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면 레이블을 잘 운영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했고. 레이블을 시작하게 된 더 직접적인 계기는 로보토미라는 친구의 음반을 내기 위해서였다. 내가 너무 듣고 싶었거든. 결국 아직까지 나오진 못했지만. (웃음)

초반에 ‘무키무키만만수 리믹수 컨테수트’나 ‘RE-단편선 프로젝트’ 등 기존 뮤지션들의 음악을 리믹스하는 이벤트도 했는데, 성과가 좀 있었나.
하박국
: 참여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퀄리티라는 부분에서는 약간 아쉬운 점이 있지만, 경쟁이 아니라 많은 부분을 열어두고 시작했던 거니까. 반면 정작 필드에 있는 분들은 많이 참여하지 않아서 또 한 번 놀라기도 했다. 누군가 불러주지 않으면, 음악가들은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좀 가리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들이 같이 많이 만들어져야 시너지가 날 텐데.

뮤지션들이 열심히 하면 시장도 자동적으로 넓어질 거라고 보는 건가. 지금의 전자음악 신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거의 같다는 느낌도 있다.
하박국
: 사실 대중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중요한 건 뮤지션 한 명이 잘하는 게 아니라 흐름을 만드는 거다. 가령 블루스도 하헌진 혼자만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붐업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김대중 씨나 김태춘 씨를 끌어들여서 신을 만든 거 아닌가. 사람들은 수동적이기 때문에 흐름이 생겨야 비로소 ‘아, 이런 것들이 있구나’ 하면서 인지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향유하는 사람들도 많아지지 않을까.

국내 최초의 전자음악페어였던 <암페어>도 그런 맥락에서 기획한 행사였나.
하박국
: 내가 알고 있는 음악가들과 프로듀서를 다 모아놓으면 그 사람들의 팬뿐만 아니라 약간 관심 있던 사람들까지 다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숫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거다. 막상 진행해보니 한 300명 정도 되더라. 그리고 기본적으로 지금 사람들의 소비 흐름에는 ‘페어(fair)’라는 게 굉장히 매력적인 아이템인 것 같았다. 공연도 보고, 다른 곳에선 팔지 않는 특별한 걸 사는 행사니까. 그런 의도로 만들어서 끝난 후 반응도 좋은 것밖에 없었는데, 디구루 형이 한 가지를 지적해줬다.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끌어모았지만 그들이 전자음악에 대해 학습할 만한 무언가가 없었다고. 그래서 라이브와 토크쇼, 워크숍, 음감회를 한 번에 아우르는 라이브 쇼 <하이-파이너드클럽>을 만들기도 했다.

여러모로 기획에 트렌드를 잘 반영하는 것 같다. 너드라니. (웃음)
하박국
: 너드라는 말이 정말 아름답지 않나? 보통 공연 제목을 잘 지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하이-파이너드클럽>은 짓고 3일 정도 즐거웠다. (웃음)

사실 인디신에 영기획이 생기면서 저변이 조금 넓어진 느낌도 있는데, 스스로는 레이블의 정체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하박국
: 음악 하는 사람들은 사실 서로에게 관심이 많이 없다. 영기획이 허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우리가 밴드 쪽 음반은 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저변이 좁아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공연 지역을 넓히면서 저변을 확대하는 것에는 언제나 열려 있다. 실제로 이태원의 케이크샵이나 한남동의 웨이즈오브씽, 압구정 크크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고. 코어 팬들은 가져가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책임감이나 부담감도 커졌겠다.
하박국
: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유머감각이 줄었다. 예전엔 Mnet <음악의 신> 속 이상민처럼 괜히 허세 부리는 농담을 즐겨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다 진짠 줄 알더라. ‘아, 이러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웃음) 보는 눈들도 많아지고, 다양한 시선들이 생겼으니까. 어쨌거나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하게 된 건데, 아직까지는 몸으로 때우고 있는 대신 더 많은 기회들이 생길 거라고 본다. 여기는 아직 황무지다. 개척하기는 힘들지만, 개척해서 깃발을 꽂으면 확실히 자기 땅이 되는 거다. 영기획이 하고 있는 게 워낙 지금까지 없었던 신이라 그 부분에서 가능성을 봤다.

2014년의 목표는 뭘로 잡았나.
하박국
: 지난해 실제로 했던 일들을 보니 계획대로 된 건 거의 없더라. 그레이나 사람12사람의 음반도, <암페어>도 모두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뭐, YG 같은 경우도 양현석 사장이 이야기한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 (웃음) 그냥 올해는 심플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가능한 한 좋은 음반을 많이 내고 싶다. 그렇게 다짐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100장 한정 판매하는 YOUNG,GIFTED&100 카탈로그와 사람12사람의 LP, 그리고 작년에 만들었던 카세트테이프 등 더 자주, 더 다양한 형태의 음반을 제작할 예정이다. 제의를 받은 일들도 꽤 있어서 작은 규모의 음반도 많이 낼 거고. 5월과 11월엔 <암페어>를 다시 열 계획이니 많이 주목해줬으면 좋겠다.

서서히 다음 단계를 도모해야 할 때인데, 더 필요한 건 뭘까.
하박국
: 돈. (웃음) 내가 따로 돈을 벌지 않으면 영기획은 지금 상태론 유지할 수가 없다. 나중에 내고 싶은 스펙의 음반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못 내게 되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많이 된다. 페이스북에서 투자하실 분 없냐고 묻기도 하고, 대출을 받아야 하나 뭘 더 팔아야 하나 고민 중인데 답이 쉽게 나오진 않는다.

혹시 수익이 많이 나면 어떤 부분을 가장 먼저 보강하고 싶나.
하박국
: 매니지먼트다. 직원이 생기면 매니지먼트를 맡기고 나는 레이블과 미디어 일에 더 충실하고 싶다. 우리는 좋은 음악을 소개하는 게 가장 우선인 곳이니까. 참고로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은 소모임음반(이랑의 앨범을 제작한 레이블)의 김경모 대표다. 그분은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 일을 처리한다. 레이블의 규모가 작기도 하지만, 매니지먼트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음반 제작과 홍보, 새로운 음악가 발굴 등 레이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는 거다. 인디 레이블은 직원이 생기면 그때서야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하더라. 영기획도 어서 그 정도가 됐으면 좋겠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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