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에게 보내는 이별의 서

2014.02.19

피겨 스케이팅은 잔인한 스포츠다. 중력을 이겨내며 공중에서 3회전을 정확하게 수행해야 하고, 쇼트와 프리 프로그램에 각각 적용되는 엄격한 동작 횟수를 모두 충족시키면서도 이 모든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듯, ‘나는 음악에 정말 몰입해 있답니다’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관중들에게 하나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감동까지 선사해야 한다. 피겨 스케이터는 운동선수이자 배우, 예술가가 되기를 요구받는다.

김연아의 경기를 볼 때마다 똑같이 놀라게 되는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테면 지난 1월 4일, 김연아의 국내 마지막 경기였던 제68회 전국 남녀 피겨선수권대회 쇼트 프로그램은 2분 40초가 어떻게 흘러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Send in the Clowns’의 우아한 선율에 맞춰 김연아는 단 한 번도 끊김이나 멈칫거림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음악을 타고 넘는 듯 모든 동작을 수행했다. 그때서야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스케이터인가를 실감했다. 김연아가 쇼트 프로그램을 클린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녀의 움직임을 보면서 이 사람이 넘어지거나 흔들릴 거라는 불안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리 프로그램 후반부, 더블 점프 두 군데에서 작은 실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성으로 비명을 지르지 않았던 것도 전혀 그 흔들림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2월 20일과 21일 양일간 펼쳐질 김연아의 두 번째 올림픽에서 아사다 마오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를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두려워할’이 아닌 ‘신경 쓸’이다. 개인적으로 이제는 정말로 소치에서 김연아가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김연아가 불운하게 빙판 위에서 미끄러진다 하더라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을 것 같다. 김연아는 그것 역시 연기의 일부인 양 아무렇지 않게 다음 동작으로 넘어갈 테니 말이다.

많은 매체에서는 단체전에서 1위를 차지한 소녀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를 두고 이 소녀가 김연아를 당장에라도 이겨버릴 듯 호들갑 떠는 기사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또한 룰 개정이 김연아의 금메달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변수가 될 거라는 이들도 많다. 현재의 룰은 점프의 전체 회전수가 1/4 정도 모자라도 ‘언더 로테이티드 점프’로 규정해 점수의 70퍼센트까지 보전해준다. 트리플 점프 중 가장 점수가 높은 트리플 악셀은 기존의 8.2점에서 8.5점으로 상승됐고, 언더 로테이티드 점프로 인정받으면 회전수가 다소 모자라도 6.0을 챙긴다. 실패한 트리플 악셀이, 트리플 악셀 다음으로 점수가 높은 트리플 러츠 점프에 성공했을 때와 동일한 점수를 받는 것이다. 반면 트리플 러츠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6.0을 받고, 언더 로테이티드 점프로 인정되면 4.2만 받는다. 아사다 마오가 안 되는 트리플 악셀을 끈질기게 고수하는 이유다. 정확한 동작을 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점수를 인정받으면서 룰이 악용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정확한 점프를 뛰는 김연아가 오히려 불리한 것 아니냐는 근심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김연아의 팬에게 필요한 것은 불리한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고 그것이 현실인 양 호들갑을 떠는 일이 아니다. 불공정한 판정 시비를 불러오는 규정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김연아의 금메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근사한 스포츠에 나쁜 관행이 자리 잡것을 피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룰 개정이든, 따뜻한 날씨로 인한 좋지 않은 빙질이든, 러시아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이든, 김연아는 지난 9년 동안 언제나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예술가의 연기를 보여줬다. 밴쿠버 이후 오랫동안 진로를 고민하던 김연아가 소치를 은퇴 무대로 결정하기까지 그 이면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외부인 입장에선 알 도리가 없다. 다만 그녀가 두 번째 올림픽에 나가기로 결정한 이상, 그녀는 최선을 다해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남기고 싶어 할 것이며, 우리는 그런 그녀의 노력과 결과물을 최선을 다해 응원하면 된다. 마지막 무대에서도, 김연아는 안무가 데이빗 윌슨의 말대로 “김연아만이 표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 피겨 팬들을 향한 작별인사를 끝까지 완수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김연아와 똑같은 충실한 태도를 견지하며 더없는 사랑과 감사의 작별 인사를 준비하면 된다. 지난 9년 동안, 김연아 덕분에 충분히 행복하지 않았던가.

사진제공. 뉴스1│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데이팅 앱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