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심은경, 비상한 그녀

2014.02.11

어떤 사람의 재능은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계기로 인해 세상에 나온다. 열 살,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타면 엄마 뒤로 숨을 만큼 지나치게 수줍음 타는 성격 때문에 연기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던 심은경도 그랬다. 하지만 커다란 눈망울에 다람쥐처럼 볼이 통통한 아역은 금세 사람들의 눈에 띄었고 사랑받기 시작했다. 같은 반 남자애에게 ‘헥토파스칼 킥’을 날리는 초등학생(MBC <단팥빵>)에서 어린 나이에도 쓸쓸한 운명을 체감하며 눈물짓는 소녀(KBS <황진이>), 괄괄하고 당찬 말씨 뒤에 한량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감춘 딸(KBS <경숙이, 경숙아버지>)까지 심은경은 작품 안에서 자라가는 모습만으로도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하는 어린 배우였다.

그런데 10년이 지나 스무 살이 된 <수상한 그녀>의 심은경은 성장이 아니라 ‘회춘’한다. <로맨틱 헤븐>에서 열여덟 처녀 시절로 돌아간 김분(전양자)을 연기한 데 이어 젊은 몸에 깃든 노인이 된 것만 벌써 두 번째다. 칠순의 오말순(나문희)은 우연히 들어간 ‘청춘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은 뒤 스무 살 적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 오두리(심은경)라는 이름을 얻고 가수가 되어 젊음을 만끽한다. 판타지임을 감안해도 빈틈이 적지 않은 설정과 작위적인 전개지만, 심은경의 활력과 능청스러운 기세만은 종종 이야기의 많은 약점들을 잊게 만든다. 그것은 사투리를 능란하게 구사한다거나 노인의 말투를 그럴듯하게 흉내 내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이를테면 타고난 배포 같은 것이다. 오두리가 오랫동안 자신을 짝사랑해온 박씨(박인환)에게 허벅지를 슬쩍 내보이며 “워뗘, 후달려?”라고 농지거리하는 순간, 심은경의 얼굴에 담긴 오말순의 기막힌 호흡 같은 것은 특히 다른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젊어진 육체를 마음껏 누리며 펄쩍펄쩍 공중제비를 넘고 꽃무늬 원피스 차림으로 살랑살랑 춤을 추는 오두리의 터질 듯한 생동감 또한 영화에 숨을 불어넣는다. 오두리라는 캐릭터에 맞춰 일부러 체중을 3~4kg가량 늘린 심은경의 탄력 있는 몸과, 고운 소녀 같기도 하고 장난기 넘치는 사내애 같기도 한 앳된 얼굴은 부럽도록 반짝이는 젊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건강하게 펄떡이는 에너지가 ‘빗물’의 쓸쓸함과 ‘하얀 나비’의 깊은 슬픔으로 바뀌는 순간 심은경의 목소리는 무대를, 화면을 장악한다.


그래서 심은경은 사진으로 평면 위에 남기고 싶은 피사체라기보다 움직임 그 자체에 빠져들어 담아두고 싶어지는 연기자다. 생 고깃덩이를 베어 물며 음산하게 죽음을 예언하던 소진(<불신지옥>)이나 순진무구한 얼굴에서 갑자기 눈을 허옇게 뒤집으며 신들린 듯 걸쭉한 욕설을 뱉어내던 나미(<써니>)와 마주했을 때의 충격적인 즐거움이 그랬던 것처럼, 이 예사롭지 않은 배우에게 기대하게 되는 것은 ‘국민 여동생’이나 미래의 ‘여신’ 같은 타이틀에 갇힌 스타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길을 가는 모습이다. 물론 아역으로 출발한 10대 배우들이 한창 ‘성인’ 이미지로의 변신을 고민할 나이 열일곱에 조급히 커리어를 쌓는 대신 “평범한 학생으로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며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낯선 땅으로 유학을 떠났던 씩씩한 소녀의 앞날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가냘픈 꽃이 아니라 담을 넘어 뻗어 나간 나뭇가지처럼 예상 가능한 범주를 훌쩍 벗어나 자란 심은경은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걸 알아달라고 애써 외치는 대신, ‘어르신’ 연기로 천연스레 돌아와 500만 관객을 불러 모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Art is the most beautiful of all lies. (예술은 가장 위대한 기만이다)”라는 드뷔시의 말을 가슴에 새긴 이 아티스트는 이제, 겨우 스무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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