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훈, <풍월주>의 순둥사담

2014.02.06
뮤지컬이 익숙한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뮤지컬 넘버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하는 이들을 종종 만날 수 있지만, 아직 뮤지컬이 대중적이지 않은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던 2013년 Mnet <보이스 코리아 2>에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이 흘러나왔다. 당시 해군홍보단 소속으로 참여해 ‘바다의 정우성’이라 불리던 배두훈에게 신승훈 코치가 생방송 1차 미션으로 선곡해준 곡이었다. 배두훈은 아쉽게도 그 곡을 끝으로 <보이스 코리아 2>에서 탈락했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를 진짜 뮤지컬의 세계로 인도했다. 신라시대 가상의 남자기생 풍월들의 이야기를 그린 <풍월주>가 배두훈에게 당도했고, 발라드부터 소울까지 다양한 장르의 가능성을 내비친 그는 어느새 순하고 능청스럽지만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용감한 사담이 되었다. 누가 얘기해주지 않는 이상 ‘첫 뮤지컬’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운 신인.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배우와 만났다.

1. 뮤지컬배우입니까?
Yes.
2013년 11월 15일, <풍월주> 사담 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2. 자신 있었습니까?
No.
제대하고 이틀 후에 연락을 받아서 급하게 오디션을 봤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었다. 게다가 학교(한예종 연기과)를 휴학한 지도 3~4년이 지났기에 작품을 접하는 것도 오래간만이었다. 자신감을 갖고 편하게 연기를 해야 되는데 겁이 나다 보니 자꾸만 움츠러들고 소극적이 되었다. 내가 과연 내 몫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냥 포기할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3. 당황한 적이 있습니까?
Yes.
그래도 연기를 전공했으니 익숙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학교랑 프로 무대는 너무 다르더라. 난 학교에서처럼 서로의 배역이나 작품에 대해 상의하는 워크숍 같은 걸 생각했다. 그런데 연습실에 가보니 다들 자기 배역에 대한 그림을 상당히 많이 그려왔더라. 연습실에서 자주 쓰는 용어도 생소하고, 내가 모르는 것투성이라 너무 무서웠다.

4. 외로웠습니까?
Yes.
작업방식이 달라서 외로운 것도 있었고, 다른 배우들은 이미 여러 작업을 해서 금방금방 편하게 하는 것도 부러웠다. 특히 상견례 때는 첫 사회생활이라 그랬던 건지 완전 얼어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었다. 걱정이 많아서 제대 못 하는 꿈을 꾼 적도 있다.

5. 도움을 받은 이가 있습니까?
Yes.
(정)상윤 배우님이 제일 많이 도와줬다. 내가 어떻게 해도 다 받아줄 테니까 편하게 자기 믿고 다 하라고 해줬다. 그래서 한번은 용기를 내서 새로운 걸 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약간 냉정한 적이 있었다. 다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웃음) 아무래도 내가 좀 순진한 편인 것 같다. 막무가내로 던지는 게 아니라 준비를 하고 해야 되는데.

6. 잘 지르는 편입니까?
Yes.
어릴 때부터 명절에 또래 친척들 모아서 ‘봉숭아학당’ 같은 역할극을 많이 했었다. 중학교 때는 연극부를 했고. 그러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소위 스카이를 갈 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런 학교 못 가는 이상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서 고3 때 한예종 들어간 선배 형을 만나서 레슨을 받고 한예종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아찔한데 무슨 똥배짱으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웃음) 중간이 좀 없는 편인 것 같다. 한예종 들어가서도 1학년 마치자마자 너무 평범한 삶을 산 것 같아서 바로 휴학을 했다. 더 많이 놀고 나 자신을 위해 많은 경험을 해주자 하며 시작한 휴학이 많이 길어지긴 했지만.

7. 경험의 힘을 믿습니까?
Yes.
간접체험도 중요하지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높고 넓어져야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어딘가를 혼자 떠나본 적도 없고, 사람도 다양하게 만나지 못해서 동기나 선후배보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었다. 일찍 학교를 벗어나서 다른 일을 많이 했다. 잠깐 회사에 들어가서 음반 준비도 했었고, 억스(AUX)라는 밴드를 만나서 객원보컬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8.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까?
Yes.
고3 때의 경험이 그때 또 생긴 것 같다. (웃음)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21살 때까지 독학을 하다가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졌다. 그러다 입대하기 2달 전에 억스 객원보컬 제안을 받았다. 억스는 국악과 양악이 결합된 퓨전 장르에 판소리도 같이 묶여 있어서 극적인 공연을 많이 한다. 그동안은 늘 혼자 MR에 맞춰서 노래 부른 게 전부였다가, 밴드와 함께하니 너무 신선하고 여태까지 채워지지 못했던 것들이 채워진 기분이었다.

9. 공동작업을 선호합니까?
Yes.
에너지가 같이 상승한다는 게 제일 좋았고 뒤가 든든한 느낌이었다. 내가 실수를 하든 무대에서 막 뛰어놀든 그런 것에 상관없이 내가 하는 만큼 같이 반응해주니까.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풍월주>에서도 아직 신인이고 경험이 없다 보니 공연이 들쑥날쑥할 때가 많다. 그때마다 상윤 배우님이 나 혼자 빠져서 하지 말고 대화를 하자는 말을 많이 해주신다. 연기에서도 그런 관계가 중요한 것 같다.

10. 표현을 잘 하는 편입니까?
No.
상대 배우들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적극적으로 표현을 잘 못 하는 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게 있다면, 표현은 안 하는데 티가 난다는 것? (웃음) 감추질 못한다. 속으로 삭이는 게 없진 않지만 앞으로는 더 표현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11. 끈기가 있습니까?
Yes.
해군홍보단은 노래를 계속 하고 싶어서 지원했던 거였다. 3번의 오디션 끝에 가수병으로 군 생활을 했는데, 트로트를 그렇게 많이 불렀다. 제일 많이 부른 건 ‘사랑의 트위스트’였고, 마을회관 행사 때는 어르신들이랑 부르스도 추고 그랬다. (웃음) 주로 흥겨운 곡들을 많이 하다 보니 도대체 가창력 좋은 사람은 왜 뽑았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초등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에 맞춘 행사가 무대에서는 도움이 많이 되더라.

12. 아쉬웠던 무대가 있습니까?
Yes.
<보이스 코리아 2>에서 ‘지금 이 순간’을 불렀는데, 오디션과 별개로 부대에서 행사가 계속 있다 보니 약간 성대결절 같은 게 왔었다. 뮤지컬 넘버는 감성과 풍부한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잘 못 내서 결과적으로 제일 아쉬운 무대였다. 곡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은 느낌도 있고. (웃음) 다른 분들이 그 무대 잘 봤다고 하면 민망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그거 때문에 기억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서 다행이다.

13. 고마운 이가 있습니까?
Yes.
그 생방송 무대에 같이 군 생활 하던 동료들 50~60명이 왔었다. 정말 그 사람들 소리밖에 안 들릴 정도로 엄청 격렬하게 응원을 해줬다. 게다가 흰 제복을 입고 앉아 있으니 한쪽에 하얀색 큰 점이 있어서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웃음) 1년 반 정도 군 생활을 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끝나고 부대원들이 헹가래를 쳐줄 때 굉장히 울컥했다. 이게 전우애인가? 싶을 정도로.

14. 노래를 잘합니까?
No.
아무래도 내가 가요나 팝을 부르던 습관이 알게 모르게 배어 있어서 뮤지컬에서는 그걸 고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뮤지컬을 하면서 많이 알게 되고 느낀 건, 역시 감정은 진짜여야 된다는 것과 전달에 목적이 있어야 하는 거였다. 처음에는 내 감정은 이래, 라고 어필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슬퍼도 담백하게 부르려는 게 좀 생겼다.

15. 춤은 잘 춥니까?
No.
<풍월주>에 춤을 추는 장면이 있어서 연기보다 춤 연습을 더 많이 하기도 했다. (웃음) 얼마 전에 삼촌이 <풍월주>를 보셨는데 재밌다 하시면서도 몇 번이고 춤 연습 좀 많이 하라고 말씀하시더라. 항상 그 장면 할 때가 되면 약간 조바심이 난다. 태가 중요한 것 같은데 경험이나 센스가 부족한 거 같아서 걱정이다. 아무래도 몸 쓰는 법을 못 배우고 휴학한 것 같다. (웃음)

16. 새롭게 알게 된 성격이 있습니까?
Yes.
사담은 밝고 ‘순둥순둥’한 면이 있고 나도 배려심이 많아서 일단 사담의 그런 부분이 좀 닮았다. 요즘 관객분들이 능청스럽다는 말을 많이 해주시던데, 예전에 들었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내 안의 능글맞음을 다시 상기하게 됐다. (웃음)

17. 새롭게 알게 된 문화가 있습니까?
Yes.
퇴근길(공연이 끝난 후 배우와 관객이 만나 인사하는 비공식적인 자리)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첫 공연을 하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추리닝에 화장도 다 지우고 머리도 헝클어진 상태로 집에 가야지! 하고 대기실 밖으로 나왔는데 관객분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라.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아, 안 되는데’ 싶고. 그래서 다음 날 이 얘기를 다른 배우들한테 했더니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왜 그랬냐고 하시더라. (웃음) 그다음부터는 좀 정상적인 모습으로 퇴근길에 임하고 있다.

18. 적응력이 좋습니까?
Yes.
연습 처음 할 때는 자꾸 객석을 등지고 있었다. 첫 대사 하는 게 제일 힘든 순간이었는데 지금은 전보다 자연스러워졌다. 생소한 단어들도 많았는데 이젠 그 생소했던 단어가 뭐였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 찾아가는 게 느렸고 이게 내가 갈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지금은 즐겁게 하려고 한다.

19. 꿈꾸는 미래가 있습니까?
Yes.
첫 아르바이트가 <지킬앤하이드> 하우스 진행요원이어서 40일간 공연을 보면서 대사를 다 외웠었다. 솔직히 작품을 많이 알지 못해서 하고 싶은 배역에 대해 말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지금 이 순간’을 부르기도 했으니 언젠가는 제대로 <지킬앤하이드>를 해보고 싶다. 지금은 닥치는 대로 해야지. (웃음)

20. 마지막으로, 당신은 누구십니까?
배두훈.
1986년생. 모든 것이 신기한 열혈 신인.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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