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이 만든 세상│① ‘마음의 소리’라는 이름의 역사

2014.02.04

조석이 만든 세상
① ‘마음의 소리’라는 이름의 역사
② 조석 “만화는 가장 완벽하게 자기 자랑을 할 수 있는 매체”
③ <마음의 소리> 7막 7장
④ <마음의 소리> 학력평가

2707일. 2006년 9월, 첫 화 ‘진실’ 편을 시작으로 네이버 웹툰 <마음의 소리>가 오늘까지 연재되어온 날짜다. 세헤라자데가 1001일 동안 했던 이야기를 한 번 더 반복해도 남을 시간 동안, 작품은 800회를 넘겼고, 초등학교 6학년은 군대 갈 나이가 되었으며, 우리는 여덟 번의 추석과 여덟 번의 설을 보냈다. 하지만 정말 대단한 건, 그 오랜 시간 <마음의 소리>가 한 주도 빠짐없이 연재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여전히 이 만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무지 웃을 일이 없는 팍팍한 일상 속에서도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웃을 수 있는 보험으로 <마음의 소리>는 긴 시간을 우리와 함께했고, 조석이라는 작가의 농담 같은 일상을 그리던 만화는 어느 순간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아이즈>의 이번 스페셜은 가상을 담은 픽션으로서가 아닌, 조석이 만들고 우리가 즐거이 놀았던 공용 놀이터로서의 <마음의 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2707일, 우리가 함께 공유해온 즐거운 경험에 대한 이야기.

 


최근 <마음의 소리>에는 독자들이 보내온 팬아트 한 편씩이 소개되고 있다. 뉴질랜드에 있는 유학생부터 한국 서산에 사는 마산 처자까지, 초등학생이 학교 전시회에서 그린 루돌프 조석부터 호주의 파티셰가 만든 캐릭터 케이크까지, 보내오는 사람들의 스펙트럼도 작품의 종류도 넓고 제각각이다. 과거 소시지 탐정 캐릭터가 나왔던 ‘소시지’ 편에서 작가는 각진 얼굴의 조석 캐릭터 때문에 캐릭터 사업이 수월하지 않다고 우회적으로 말했지만, 이제 그의 독자들은 스스로 조석과 조준, 애봉이를 그리고 만든다. 네이버를 대표하는 인기 콘텐츠의 위엄일까. 맞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게 설명되진 않는다. <마음의 소리>와 독자의 관계는 단순히 읽고 읽히는 일방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조석이라는 작가와 함께 만들어온 현재 진행형의 추억에 가깝다.

사실 연재 초반, <멋지다 마사루>나 <이나중 탁구부>에 비견될 정도로 <마음의 소리>의 개그 센스는 당시 상당히 마니악한 것이었다. 허튼 농담에 가까운 짧고 황당한 이야기는 종종 허무와 엽기 사이를 오갔고, 그림은 기존 출판 만화의 기준에서 볼 때 거의 작화 붕괴 수준이었다. 작품의 내러티브와 작화, 소위 기본기를 중시하는 한국 만화계에서 <마음의 소리>는 제대로 된 하나의 타이틀이라기보다는 웹이라는 새 플랫폼이 낳은 말초적이고 휘발적인 유머 모음 정도로 받아들여졌고, 작품을 즐기는 독자들 역시 이후 등장한 귀귀, 이말년 등 일련의 작가군과 묶어 ‘병맛’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했다. 연재 3년 차 즈음 슬슬 ‘소재 고갈이신 듯, 재충전이 필요할 듯’이라는 댓글들이 달리고 이제 조석은 끝났다는 반응이 나온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파격은 익숙해지는 순간 힘을 잃는다. 힘겹게 연명하거나, 박수 칠 때 떠나거나. 하지만 조석은 그 어느 경우도 아니었다.

슬럼프를 극복한 조석의 두 번째 전성기가 흥미로운 건 파격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개그를 받은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활한 그의 개그 센스는 눈이 부셨다. 몸치인 조석이 에어로빅을 추다가 풍년의 춤으로 옥수수를 자라게 하던 ‘내 몸의 주인’ 편, “아침엔 네 개, 점심엔 두 개, 저녁엔 세 개인 것?”이라는 스핑크스의 질문에 “의욕”이라 답하던 ‘이거냐 저거냐’ 편 등 매회가 참신했다. 하지만 이 시기가 정말 중요하다면, 독자들이 <마음의 소리>라는 작품을 조석이 이뤄낸 부활과 성장의 서사로 받아들이기 시작해서다. 바닥을 치고 다시 솟아오른 작품을 보며 비로소 사람들은 만화 속에서 황당한 소동극을 벌이는 조석에게서 무겁게 엉덩이를 붙이고 그림을 그리는 작품 바깥의 조석을 발견했고, 사람이 그러하듯 작품 역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한 번의 휴재와 지각도 없이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은 <마음의 소리>를 보는 날이 되었고, 순간순간의 파격이 빛나던 작품은 어느 순간, 꾸준하고 일관된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마음의 소리>는 에피소드 개그물이라는 장르와는 별개로, 그 자체가 하나의 성장 서사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쉽게 휘발되지 않고 조석을 비롯한 캐릭터 안에서 고스란히 쌓여갔다. 조석이 말실수를 했다가 애인인 애봉이에게 구타당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도 웃기지만, 지난 에피소드에서 애봉이 보여준 과격함이나 조석의 어리바리함, 동거에 가까운 둘의 관계라는 과거의 일관된 서사 안에서 더 온전히 이해된다. 예수를 닮은 친구는 바다를 가르는 이적 때문에 샤워를 할 수 없고, 천방지축 반려견인 센세이션과 행봉이는 조석을 끌고 <벤허>처럼 전차를 몬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하루하루는 작품 안에서도, 독자의 기억 안에서도 차곡차곡 누적되었고, 독자들은 조석과 친구들이 매주 벌이는 소동극을 엿보는 기분으로 <마음의 소리>를 봤다. 요컨대 이것은 공유된 기억, 아니 추억에 가깝다.

비록 작품 최대의 고비이긴 했지만, 한때 <마음의 소리>에서 볼드모트처럼 입에 담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던 조준 사건은 이 독특한 관계를 가장 잘 보여준다. 만화 속 캐릭터이자 조석의 형이기도 한 조준이 고양이 분양과 관련해 잡음을 일으키고, 역시 만화에도 나오던 고양이 김정남이 실제로는 가출한 것을 알게 된 독자들은 조석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 본인의 잘못도 아니고, <마음의 소리>가 픽션이라는 걸 생각하면 분명 부당한 비난이었지만, 그만큼 작품 속에서 오래 시간 함께한 캐릭터들은 독자들에게도 실제 인물의 그것과 다름없는 인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조석은 만화를 통해 사과했고, 사태의 시발점이 되었던 형 조준은 마치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처럼 한동안 <마음의 소리>에서 떠나야 했다. 독자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웃음뿐 아니라 신뢰 역시 필요하다. 조석은 찜찜함을 은폐하기보다는 환부를 도려내고 묵묵히 연재하며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새살이 돋기를 기다렸다. 하나의 세계를 공유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지금 <마음의 소리>를 보며 웃는다는 것은, 그래서 <마음의 소리>라는 세계의 일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매회 다른 에피소드는 캐릭터를 발전시키고, 발전된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에피소드가 나오며, 이 에피소드들은 <마음의 소리>라는 세계 안에 통합된다. 700회 특집에서 서부욱 캐릭터로 변장했던 조준에게 조석이 “야 나와 봐”라고 하는 하나의 장면은 700회 동안의 에피소드와 심지어 작품 바깥에서 벌어진 사건까지 누적된 <마음의 소리> 세계에서만 온전히 해석될 수 있다.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재된 이 작품의 팬덤은 차라리 소속감에 가깝다. 이제 그들은 연령과 장소를 불문하고 자신들이 만든 팬아트를 보내며 이 세계의 일원임을 인증하고, 조석 역시 이것을 작품에 소개하며 <마음의 소리>가 여전히 독자와 함께 성장 중이라는 것을 인증한다. 작품과 독자의 성장과 함께 세계는 다시금 확장되며, 확장된 세계는 또다시 새로운 에피소드와 웃음으로 이어진다. 조석이 만들어낸 이 웃음의 선순환 구조는 수많은 천재적인 개그 만화가들 중에서도 오직 그만이 닿은 전인미답의 신세계다. 물론 이것은 그저 한 편의 만화와 그 만화를 오래 즐긴 팬들의 이야기일 뿐일지 모른다. 다만 이처럼 종으로 횡으로 깊고 넓게 누적된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를, 우리는 흔히 역사라고 부른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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