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이 만든 세상│② 조석 “만화는 가장 완벽하게 자기 자랑을 할 수 있는 매체”

2014.02.04

조석이 만든 세상
① ‘마음의 소리’라는 이름의 역사
② 조석 “만화는 가장 완벽하게 자기 자랑을 할 수 있는 매체”
③ <마음의 소리> 7막 7장
④ <마음의 소리> 학력평가

“제가 약속은 잘 지키지만 성실한 건 아닌 것 같아요.” <마음의 소리>를 그리고 남는 시간에 신작 준비를 해야 하는데 미처 그러질 못한다며 조석은 이렇게 말했다. 뭐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그런 말인가? 조석은 인터뷰 내내 종종 그렇게 어딘가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말들을 했다. 장기 연재 때문에 동기부여를 많이 잃었지만 작품은 존중한다고, 질투는 못난 짓이지만 좋은 만화를 위해서는 그만둘 수는 없다고, 타인에 대한 예의와 인사가 필요한 건 알겠지만 그냥 발을 빼고 혼자 있고 싶다고. 만약 한 번의 지각이나 연재 중단도 없이 <마음의 소리> 800회를 돌파한 작가의 거침없는 행보와 신념을 확인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인터뷰는 오히려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창작이 저 멀리 보이는 북극성 하나를 보고 걷는 천편일률적인 길이 아닌, 순간순간의 고민과 혼돈 속에서 힘겹게 걷는 갈지자 길이라면, 우리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여전히 고민하고 자기만의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하는 한 창작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룬 것이 아닌, 앞으로 조석이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



최근 <마음의 소리> 800회를 돌파한 걸 축하한다.
조석
: 고마운 반응이지만, 우선 내게 중요한 건 장기 연재를 하는 것보다는 새롭고 재밌는 만화를 그리는 거니까. 남들이 숫자에 의의를 둘수록, 스스로는 내게 사람들이 그 외에 바라는 게 없나 싶기도 하다. 내 기준에서는 아주 달가워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요즘 잘나가는 신인 작가들과 그래도 몇 합은 겨룰 준비가 되어 있는데 벌써 노인네 취급받는 거 같기도 하고. (웃음)

성실한 작가라는 타이틀에 너무 매몰되는 기분인가.
조석
: <마음의 소리> 5주년 때 담당자가 ‘한 번도 쉬지 않고’라는 식의 말을 해줬고, 엄청난 도움을 받았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게 좋은 소리를 듣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 된 거지. 그래서 기뻐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족쇄가 된 것 같다. 스포츠로 치면 연속 출장 기록을 세우고 있는 건데, 4번 타자는 역전 만루 홈런을 치고 선발 투수는 완봉승을 거두고 있는 와중에 나 혼자 “여러분, 저는 오늘도 출장했습니다”라고 손을 흔드는 게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싶다.

꾸준히 한다는 것만으로는 스스로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못하는 상황인 걸까.
조석
: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는데, 그게 <마음의 소리> 안에서 잘 안 되고 있다. 항상 <마음의 소리>를 하면서 한 번쯤 개그 패턴을 바꾸거나 새로운 캐릭터를 넣는 시기가 있었다. 다행히 그동안 잘 성공한 것 같은데, 작년 여름부터 그 시도가 제대로 성공하지 않았다. 허리가 아파서 만들었던 ‘그러니까요’ 편의 종이 오리기 같은 것들도 반응은 좋았지만 한 화 쓰고 마는 수준이지 새로운 패턴이 될 수는 없었다. 최근 간신히 티끌만큼 건진 게 있다면 ‘나한테 왜 그랬어요’ 편에서 쌍둥이 캐릭터를 만화 안에 성공적으로 투입한 건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단 걸 안다.

최근 들어 팬아트를 만화 도입부에 넣는 것도 같은 맥락일까.
조석
: 만화 시작하면 <마음의 소리> 타이틀이 나오고 조석이 나오는 패턴이 너무 지겨운 거다. 그래서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가끔 팬아트를 그려서 보내줄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있어도 너무 표현 안 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하면 그분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도 되고 타이틀도 새로운 느낌이 날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별의별 시도를 다 해본다. 항상 직사각형으로 컷을 나누니, 가끔은 다른 도형으로도 해보는데 당장 여자친구도 눈치를 못 챈다. 그럼에도 뭔가를 시도해본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해보며 뭔가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거지.

일종의 딜레마일 수 있는데, <마음의 소리> 자체가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서 마음대로 전혀 새로운 걸 시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조석
: 사실 새롭게 하려면 다 바꾸면 되지. 조석이 빠지고 그냥 철수네 가족 이야기를 하면 정말 새로울 텐데 어떤 선을 지켜야 하니까. 내 작품이 일상 만화는 아니지만 캐릭터의 관계마다 의미가 부여된 게 있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있다. 가령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이별을 소재로 한 개그다. 그러려면 조석 캐릭터와 애봉이가 이별을 해야 하는데 과연 사람들이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얼마 전에는 아무 설명 없이 조석의 여자친구가 바뀌고 이름은 애봉이2인 것도 생각해봤다. 여자친구가 왜 욕먹을 걸 알면서 그런 걸 하려 하느냐고 하는데, 그만큼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

뭔가 야성이 필요한 시기인 건가.
조석
: <마음의 소리>는 맥락에 상관없이 뭔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게 필요하다. 물론 사람들은 어이없는 것보다는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개그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예전처럼 누가 길을 물을 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우니 춤을 추는 그런 개그를 해보고 싶다. 옛날이 더 재밌었다고까지는 않더라도 예전엔 참 참신했다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은 그런 생각도 잘 안 떠오르고, 그런 게 떠오른다고 쉽게 그릴 용기도 없다. 이런 이야기를 그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겠지. 오랜 경험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웃기되 욕먹을 수도 있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덜 웃기고 욕 안 먹는 쪽으로 가는 부분이 있다.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조석
: 그래서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재작년에 <조의 영역>을 그렸는데 그때 정말 만화로 내가 채울 수 있는 모든 욕심을 다 채운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걸 하면서 <마음의 소리>도 더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작년 1월에 <조의 영역>이 끝나면서 바로 3월부터 신작 준비를 시작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잘 안 풀리고 있다. 처음에는 생애 처음으로 1~26화까지 이야기의 뼈대를 다 만든 장편을 준비했다. 그걸 마치 지도처럼 벽에다가 붙였는데, 결국에는 접었다. 나 스스로 저 지도를 만든 것에 반한 건지 만화 자체가 마음에 든 건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자 같았다. 그러다가 여관을 무대로 한 짧은 일일 공포 만화를 그려볼까 했다가 그것도 좀 별로 같아서 접었고. 최근에는 방학용 어린이 만화를 그려보자 싶어서 곤충을 주인공으로 박용제 작가의 <갓 오브 하이스쿨> 같은 액션물을 만들어볼까도 했다. 그런데 그걸 그리다가 생애 처음 어떤 계시 같은 게 왔는데 ‘그거 그리지 마’였다. 만화 그리면서 처음으로 계시가 온 게 ‘그거 그리지 마’라니. (웃음) 지금 연재 제안하고 있는 게 네 번째인 건데, 여전히 담당자 반응은 좋지 않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모두가 반대할 때 오히려 내 만화에 뭔가 있는 거 같아서 두근거리는 타입이라 계속 들이밀고 있다.

다른 사람의 반대를 즐기는 건 <조의 영역> 때의 경험 때문인 걸까.
조석
: 그 경험 때문인 것 같다. 거대한 물고기가 나오는 스토리를 만들어놓고 이러이러한 걸 그리겠다고 했을 때 다들 반응이 별로였다. 물고기가 왜 무서워, 이런 식이었지. 만약 당시에 스마트툰 런칭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과연 <조의 영역>을 연재할 수 있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남들이 반대하는 이야기에 더 끌리는 것 같다. 가령 오른쪽으로 뛸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담당자가 오른쪽으로 뛰라고 하면 발목이 부러지더라도 반대쪽으로 뛴다. (웃음)

말하자면, 남의 반응에 ‘흥!’이라고 하는 게 필요한 건가.
조석
: 그걸 못 버리겠다. 어느 쪽으로 가야 좋은 사람이 되는 건지는 알겠지만 그 길로 가고 싶지 않다. 분명 좋은 사람이라 나올 수 있는 좋은 만화가 있다. 다만 나는 아닌 것 같다. 만약 좋은 사람이라면 친한 작가의 작품이 인기가 많으면 축하한다면서 박수를 쳐주고 앞으로 나도 그에 견줄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말해야겠지. 그런데 나는 그런 걸 보면 ‘저 녀석을 끌어내리겠어’라고 생각하는 거다. 물론 말로 하면 안 되고. (웃음) 그런 식으로 내 안의 불을 계속 지핀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안정적인 위치의 작가 아닌가.
조석
: 분명히 만화가를 준비하거나 데뷔를 했어도 잘 안 풀리는 사람이 보기에 내가 그들이 부러워할 환경을 누리고 있다고는 생각한다. 굳이 배고픈 만화가 흉내를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런 면에서는 내 안의 불을 지피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돈과 인기의 문제인 거고, 나는 내 마음에 드는 만화를 그리기 위한 동력이 필요한 거니까. 만약 돈과 인기가 목적이라면 방에서 마감할 시간에 <마음의 소리> 팬시용품을 만들어서 팔고 주식회사 마음의 소리를 설립할 생각을 하겠지. 그런 게 끼어드는 게 싫다. 요새는 책도 안 찍는다.

실제로 800화에서 더는 책이 안 나온다고 공지했는데 이유가 있나.
조석
: 출판이 어느 순간부터 <마음의 소리> 연재라는 내 영역까지 침범했다. 그동안에는 아무 신경 안 써도 되어서 출판을 할 수 있었는데, 뭔가 만화 외적인 문제가 생겼다. 내가 그쪽을 컨트롤하려면 콘티 짤 시간에 그쪽이랑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인 거지. 사실 책은 꾸준히 나가는 편이라 돈을 벌기 위해서는 출판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내 마음의 저울에선 출판을 통해 다달이 들어오는 돈과 <마음의 소리>에 쓸 시간 중 두 번째가 더 중요한 거다.


만화 외적인 활동은 피하는 건가.
조석
: 내 생각엔, 정말 세상 물정도 모르고 면허도 없이 집 안에서 만화나 그리고 있어야 독특한 만화가 나오지 않나 싶은 거다. 하지만 이젠 나이를 먹어서 세금 문제 같은 것들도 신경을 써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것들이 요즘 많이 불편하다. 마치 만화가 ‘그깟 공놀이’가 되는 기분이랄까. 차라리 작품 속 캐릭터가 사고를 내서 못 그리는 거에 대해 고민하는 게 낫지, 이게 뭔가 싶다.

만화가 커뮤니티와 거리가 먼 것도 그래서일까.
조석
: 이번 ‘웹투니스트 데이’에 안 간 게 컸지. 원래는 가려고 일부러 만화도 한 회씩 앞당겨 그리고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한 편 남겨두고 콘티가 안 나와서 못 가게 됐다. 사실 지난번 ‘웹투니스트 데이’ 때는 <조의 영역>과 <마음의 소리>를 병행하느라 신경이 말도 못 하게 예민한 상태로 굉장히 실례되는 행동을 많이 했다. ‘마감의 왕중왕’ 상을 받을 때도 엄청 시큰둥했다. 그걸 이번에 만회하고 싶었는데 아예 안 가게 되었으니 더 예의 없는 놈이 되어버린 것 같다. 마감 때문에 못 온 작가에 대해 뭐라 할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걸 누군가는 좋게 보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알겠다. 가끔 이 분야에 오래 있었으니 작가 모임도 좀 참여하고 신인 작가들도 챙기라는 말도 듣는데, 작가들과 관계를 원활히 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나로서는 만화에 쓸 정력을 분산시킬 여력이 없다.

혹 20대부터 바로 만화가로 쭉 살아와서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닐까.
조석
: 비슷한 얘기를 담당자가 종종 한다. 네 만화가 더 재밌어지려면 경험도 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그럴 수도 있는데 지금 이 순간 나 혼자 있어서 더 독특한 만화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거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는 누군가 내 만화에 대해 처음 본 만화라는 말을 해주는 거다. <조의 영역>도 그런 마음으로 그리려 했는데 ‘진격의 어인’이라는 반응이 많았지. (웃음)

<마음의 소리>도 처음 그릴 땐 세상에 없는 걸 그린다는 기분이었나.
조석
: 그땐 그냥 그린 거다. 아무 생각도 없었고 내가 잘났는지 못났는지도 모른 채 그냥 댓글 달리는 게 좋아서 그렸다. 그러다가 재밌다고 박수 쳐줘서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 그리고, 1등 하고 싶어서 그리다가 지금까지 온 거다. 그래서 이 작품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내 7년이 여기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는 게 느껴지니까. 만약 재미없으니 끝내자고 하면 나는 몰라도 <마음의 소리>라는 아이는 기분 나쁘겠다 싶은 거다. 나 스스로 이 작품을 존중하게 됐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는 못 한다. 그래서 골치가 아픈 거지. <마음의 소리>를 하면서 신작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마음의 소리>에 올인하는 게 나을 수도 있고, 그냥 깔끔하게 지금까지 사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끝낼 수도 있다. 어느 것 하나 결정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러이러한 길로 나아가고 있다, 라고는 못 하겠다.

이토록 혼란스러운데도 새로운 재미의 만화를 그리겠다는 욕심만큼은 뚜렷해 보인다.
조석
: 만화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 중 최고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창작이다. 천재 감독 아무개가 천만 관객 영화를 몇 편 만들었다고 해도 거기에는 각본이나 배우의 힘도 있지 않나. 그에 반해 만화는 가장 완벽하게 자기 자랑을 할 수 있는 매체다. 내 만화를 보고 누군가 자살을 하려다 그만뒀다, 그런 미담도 멋있지만 우선 나는 내 자랑을 하고 싶은 거다.

말하자면 ‘짠’ 하고 보여주는 건가.
조석
: ‘짠’을 너무 많이 해서 탈이긴 하다. 그리기 전에 좀 더 상의하고 그려야 고생을 덜 하는데 ‘짠’ 하다가 시간도 잃고, 인간관계도 잃고. (웃음) 하지만 이게 재밌어서 만화를 그리는 건데 그걸 못 하게 하면 만화를 그릴 수 없겠지.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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