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내 애교는 다 애정결핍 때문이다”

2014.01.27
시골 학교 여자애들 사이에서 카사노바로 유명하지만, 집에서는 사법 고시에 합격한 형에게 밀려 구박만 받는다. ‘소유가 아닌 존재로 사랑하고 싶습니다’와 같은 말을 편지에 쓰며 폼 나게 여자를 유혹하다가도 일진 광식(김영광)이 나타나면 여자 뒤로 숨는다. 영화 <피끓는 청춘>의 중길은 그동안 이종석이 보여준 예쁘고 도도하기만 했던 모습과는 다른 이종석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충청도 사투리와 조금은 찌질한 연기를 시도해서만은 아니다. 이종석은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부터 KBS <학교 2013>,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이하 <너목들>) 등으로 얻은 주연의 무게와 그에 걸맞은 연기에 대한 부담을 중길을 연기하며 오롯이 느꼈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본인이 만족할 만한 연기도, 극을 이끌어갈 카리스마도 마음껏 보여주기 어려운 자신을 절감해가며 중길을 완성한 것이다. 영화가 개봉한 지금도 그때의 경험을 기억하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이종석은 의외의 냉철함을 갖고 있는 배우였다.

그동안 <학교 2013>의 고남순이나 영화 <노브레싱> 우상처럼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는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다. 반면 중길은 롤러스케이트도 제대로 타지 못해 넘어지고 여자 일진도 무서워하는 등 다소 만만해 보이는 캐릭터다.
이종석
: 중길이 그 자체로 찌질해서 귀여웠지만, 그보다 충청도 사투리가 있었고 시골 배경에 1980년대의 이야기라 이 작품을 선택했다. 사람들에게 이종석의 새로운 면을 확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았거든. 사실 <너목들>이랑 <노브레싱> 하면서 당시에 좀 답답했다. 난 지금까지 다 다른 캐릭터를 맡아왔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내가 비슷한 연기만 하고 늘 교복만 입는다고 생각하니까 화가 났다. 물론 나도 그 두 작품을 동시에 찍으며 느끼긴 했다. 도저히 <너목들>의 (박)수하랑 <노브레싱>의 우상, 이 두 캐릭터를 다르게 표현할 수 없더라. 그래서 도전! 한 거다.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나와 다르게 생각한다면 아예 새로운 걸 해보자, 했던 거지.

막상 해보니 어떻던가. 극 전체를 끌고 가야 했는데.
이종석
: <하이킥> 때는 내가 진지해도 주변 상황이 웃기게 만들어줬지만 중길이를 연기할 땐 기댈 만한 게 없었다. 그런 게 겁나면서도 억지로 더 망가지고 찌질하게 보이려 애를 썼다. 물론 찍을 땐 소심했지만. 근데 영화를 보고 나니 더 갔어도 됐겠더라. 소희(이세영)가 장기 자랑으로 팝송을 부를 때 내가 갑자기 소희 뒤로 가 노래에 추임새를 넣지 않나. 오홍~ 하면서. 그게 애드리브였다. 시나리오에는 소희와 같이 노래를 하는 걸로 돼 있었는데 내 생각에 중길이가 팝송을 알 것 같진 않았거든. 노래 끝에 ‘홍~’을 붙이는 건 스타일리스트랑 차에서 자주 치는 장난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걸 써봐야지 했는데 너무 소심하게 한 거다.

마음처럼 쉽게 망가지지 못했던 이유가 뭘까.
이종석
: 본능인 거 같다. 자꾸 몸을 사리게 되더라. 성격이 워낙 민망한 걸 못 참기도 하지만 과감한 시도를 할 용기도 부족했던 거지. 더 하면 웃길 거 같단 생각을 찍을 때 하면서도 ‘했는데 이상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동시에 드니까. (웃음) 진짜 죽을 거 같았다. 작정하고 망가졌던 신이 있긴 했다. 중길이가 광식이한테 끌려갔을 때 나중에 영숙(박보영)이가 염산을 들고 오지 않나. 그 전에 내가 광식이한테 많이 맞다가 불로 지져버린다고 발악할 때 나름 오버하면서 막 했거든. 근데 영화에서는 내 목소리만 나가서 ‘어? 이 신 괜찮았었는데?’ 싶었다.

중길은 늘 활발하고 들떠 있는 인물인데 톤은 어떻게 잡았나.
이종석
: 이 캐릭터는 중간이란 게 없더라. 원래 그 날 기분이 안 좋으면 연기가 잘 안 되는 편이라 그런 톤을 맞추기 되게 힘들었다. 연기하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어려움이었다. 예전에 맡았던 역할들은 약간 우수에 차 있으면서도 사연 있어 보여서 기분이 안 좋은 날에도 얼추 비슷하게 톤을 맞출 수 있었거든. 그나마 다행인 게, 충청도 사투리가 입에 빨리 붙었다. 원래 내가 말끝을 끄는 스타일이고 말투 자체가 좀 느리다. <너목들> 끝나고 바로 들어간 작품이라 시간이 없어서 매니저 옆에 앉혀놓고 “야, 들어봐. ‘밥 먹었어유?’” 하면서 연습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왔다. 매니저도 경상도 사람이라 충청도 사투리를 잘 모르지만 듣고 괜찮은지 이상한지 정도는 나한테 알려줄 수 있었다.

상대를 바라보면 아련한 느낌을 주는 눈빛이 특징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런 눈빛이 없어서 오히려 어리고 철없는 카사노바 중길과 잘 맞더라.
이종석
: 중길이 나이가 워낙 불안정한 때니까 무미건조한 게 어울렸던 거 같다. 그리고 어떻게 눈빛 연기를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던 것도 있다. 중길이가 후반부에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 영숙이라는 걸 깨닫지 않나. 그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되는 거다. 계속 소희를 좋아했고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후 마음이 복잡했을 텐데 그 와중에 영숙이가 떠났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해서 사랑을 깨닫나? 그래서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감독님은 그게 첫사랑이라고 하더라.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갖고 있던 중길이가 아버지와 영숙이 어머니 사이를 오해했기 때문에 영숙이를 밀어냈던 거고 뒤늦게 깨달았다는 거지.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나중에는 이해가 됐다.

이제 대중의 평가를 받아야 할 텐데, <너목들>이 끝난 이후로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부담이 크겠다.
이종석
: 그렇다. <관상> 때도 그랬는데, 그 영화가 <너목들> 끝나고 개봉했다. 이미 나에 대한 기대치가 엄청 높아져 있었고 대단한 선배들과 함께 나오는 작품이라 걱정을 많이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를 보고 난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울적해졌다. <학교 2013> 찍으면서 <관상> 촬영할 당시만 해도 이 선배들에게 누가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허점이 너무 많이 보이더라. 솔직히 900만 관객이 <관상>을 봤는데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물론 나에 대한 기대치가 <관상> 흥행에 어느 정도 영향은 줬겠지만 객관적으로 따져봐도 내가 못한 거다. 그런 반성을 하면서 <피끓는 청춘>을 찍었다.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스타일인가.
이종석
: 그래야 될 것 같다. 댓글도 웬만하면 다 받아들이는 편이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걸 짚어주기도 하거든. 예전에는 발음이나 발성에 대한 지적도 많았는데 그건 내가 계속 고쳐가야 하는 게 맞다.

여러 작품을 동시에 찍으며 쉬지 않고 일을 해서 단점을 보완할 시간도 갖기 어렵지 않았나.
이종석
: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를 꿈꿨지만 데뷔도 힘들었고 이 회사에 들어와서 2~3년은 방치돼 그냥 놀았다. 그때 쌓인 갈증이 작년에 터져 나온 것 같다. 한 작품 끝내면 왠지 또 하나를 해야 할 거 같고, 불안했던 거지. 근데 아무래도 두 작품을 동시에 찍다 보니 양쪽 모두에 피해를 주더라. 나도 영혼 없이 찍게 되고, 연기적으로 완벽한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부족한 게 더 눈에 보이기도 했다.

갈증으로 쌓아온 필모그래피를 보면 어떤가.
이종석
: 가끔 내가 찍은 작품들을 쭉 보는데, 아직까지는 잘 쌓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피끓는 청춘>도 이전과는 다른 나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 꼭 필요한 작품인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학교 2013>의 (고)남순이가 가장 많이 생각난다. 무기력하면서도 뭔가 사연 있어 보이지 않나. 아무 부담 없이 연기하는 맛을 알려준 캐릭터이기도 하고. 이제부터는 연기 완성도에 조금 더 신경을 쓰면서 한 번에 한 작품씩 골라보려고 한다. 배우로서 연기적으로 스펙트럼을 넓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잘하는 것만 해야 되는 건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명쾌하게 결론을 냈다. 영화는 흥행을 떠나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드라마는 시청률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걸 고려하자는 쪽으로.

잘하는 거라면 상대 배우와의 ‘케미’를 살릴 수 있는 방향인가.
이종석
: 글쎄, 사람들은 나보고 ‘케미’ 좋은 배우라고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너목들> 할 때 (이)보영이 누나가 그런 이야기는 해줬다. 종석이는 상대 배우를 참 사랑스럽게 바라본다고. 그게 이유인 거 같다.

애교가 많다는 주변 반응도 본인 입장에서는 의아하겠다.
이종석
: 난 진짜 몰랐다. 물론 애정 표현을 거침없이 하긴 한다. 근데 난 그게 애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친근감의 표시인 거지. (박)보영 씨 코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적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놀라더라. 그 전에 10살 많은 보영이 누나랑 작품을 하지 않았나. 그러고 나서 보영 씨와 파트너가 됐는데 생각보다 보영 씨랑 붙는 신이 없어서 빨리 친해져야겠단 생각에 장난을 쳤는데 이상한 사람이 됐다. 근데 뭐, 생긴 대로 살아야지 어쩌겠어. (웃음) 아무래도 소속 집단의 막내였던 적이 많아 애교가 익숙해진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 만나면 어려 보여도 그냥 다 누나 같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더라.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 누나? 밥 먹었어?” 하며 친근하게 대하는 거고. 이젠 현장에서 내가 막내가 아닌데도 그런다. 아무래도 이게 다 애정결핍 때문인 거 같다. 사람들 무는 것도 그렇고. 왜, 구강기 때 아기들이 자꾸 입에 뭘 넣지 않나. 그런 것처럼 관심을 달라는 의미인 거다.

외로움을 많이 타나.
이종석
: 그렇기도 하고, 이젠 외로움을 즐기게 됐다. 활동적인 걸 워낙 싫어해서 집 밖에 잘 안 나가는데, 혼자 있으면 되게 외롭지 않나. 어릴 땐 그게 진짜 무섭고 싫었는데 어느 순간 익숙해졌다. 어둡게 하고 있는 것도 좋아하고 가슴에 찬바람이 불면 사람이 감성적으로 변하고 생각이 많아지더라.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아, 그래서 내가 밖에 나갔을 때 그렇게 애교가 많구나 싶다. 한번은 보영이 누나가 그러더라. 내가 남자친구로서는 별로인 스타일이라고. 남자라면 듬직하고 여자가 힘들어할 때 옆에 있어줘야 할 텐데, 난 내가 항상 사랑을 갈구하고 치대는 거지. 늘 연애하고 결혼 빨리 하고 싶단 말을 많이 해왔는데 누나 말을 들어보니 난 준비가 아직 안 된 것 같았다. 물론 이런 날 받아줄 여자는 어딘가에 있겠지만…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냥 기분인 거 같기도 하다.

혼자 있는 걸 즐기다가도 가끔 그조차도 질릴 때는 없나.
이종석
: 그래서 억지로 취미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친구들도 일할 때나 만나지 일부러 나가서 만나진 않고, 그나마 자주 연락하는 게 (김)우빈이다. 아, 근데 그놈 시사회에 안 왔다! 촬영 있어서 진짜 미안하다고 하길래 빨리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했다. (웃음)

헤어스타일을 바꾼 것도 일탈의 하나일까?
이종석
: 그렇다.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그냥 내가 질리는 거다. 1년 내내 너무 바쁘게 지냈고 매체에 노출도 많이 됐지 않나. 난 그 모습을 다 보고 거울을 통해서도 날 보는데 늘 같은 모습이니까. 미용실에 앉아 있다가 즉흥적으로 해달라고 했다. 사실은 회색으로 하고 싶었는데 하다 보니 두피가 너무 아픈 거다. 중간에 “악~ 나 안 할래~” 해서 이렇게 됐다. (웃음)

일에 매달리며 20대를 보내고 있는 요즘, 본인을 가장 들끓게 만드는 게 있나.
이종석
: 개봉 전의 이 불안함? 사실 남 탓을 할 수도 없지 않나. 그래서 되게 겁난다. 관객들이 내 새로운 모습을 보고 거부감을 가지면 어떡하나 싶다. 영화의 주연이라는 게 참 무서운 자리라는 걸 몰랐다. 선배들이랑 찍을 때는 선배들에게 어부바해서 가는 느낌이었는데, 극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게 만만치 않더라.

이전까지는 연기에 대한 갈증으로 달려왔다면, 지금 가장 큰 동력은 뭔가.
이종석
: 궁극적인 목표는 배우가 되는 거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가고 있는 행보는 스타의 것이다. 그렇다 보니 모순이 생길 수도 있겠더라. 뭐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진짜 배우라고 불리고 싶다. 날 떠올렸을 때 ‘아, 그 배우 연기 진짜 잘하지’ 할 수 있는. 솔직히 지금은 대부분의 대중이 ‘이종석? 음, 뭐 그냥 연예인’ 이렇게 생각하지 않나.

배우 이종석만이 보여줄 수 있는 건 뭘까.
이종석
: 요즘 가장 많이 드는 생각 중 하나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내세울 만한 게 없더라. 어떤 배우는 해외로 나가 한류 스타가 되고 판권을 무기로 삼기도 하는데 난 도대체 뭘까? 스스로 끼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고민이 된다. 작년에 20대 배우들이 다 터져 나와서 자극을 많이 받기도 한다. 그 배우들 작품은 다 찾아보는 편인데, 살아온 세월은 비슷하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다르니까 많이 배우게 된다. 그렇게 배우면서 내 경쟁력을 하나씩 찾아가고 싶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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