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저 사람은 아직도 쓰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계속 쓰고 싶다”

2013.12.20
칼럼니스트 허지웅은 JTBC <썰전>, <마녀사냥>과 tvN < SNL Korea 4 >에 고정으로 출연한다. 예능에서 문화를 비평하고 야한 농담도 하며 가끔은 연기도 하다 보니 누군가는 그를 방송인이라 하고, 농담 삼아 “미친 사람”이라고까지도 한다. 그러나, 허지웅은 말한다. 자신은 ‘글 쓰는 사람’이라고. 고시원 총무에서 <오마이뉴스>, <필름 2.0>, < GQ >, <프리미어> 등에서 영화와 정치적 담론 등에 대한 글을 쓰다 <마녀사냥> 첫 회에서는 자신의 성적 경험에 대해 털어놓은 독특한 이력. 하지만 여전히 일주일에 세 개의 매체에 기고하는 글쟁이. 왜 그는 글을 계속 쓰는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쓰면서 살아갈까. 허지웅에게 물었다.

얼마 전 체력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트레이너가 뭐라고 하던가.
허지웅:
이대로 가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이런 상태로 살아 있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웃음) 그래도 테스트를 하더니 내장 지방 0%인 몸은 오랜만에 본다고 하더라. 운동은 대학교 이후 처음 해보는데, 열심히 하고 있다. <썰전>이랑 <마녀사냥>을 같은 날 녹화하는데 너무 힘들다. 키가 180cm인데 몸무게가 57kg까지 떨어졌었으니까. 어쨌든 운동이 글쓰기에도 좋은 것 같다. 일주일에 3개 정도 마감을 하는데, 글 쓰는 것만으로도 몸이 굉장히 망가졌었다. 거의 새벽에 글을 쓰고 마감하면 술을 마시다 보니 몸이 망가지더라. 근데 그런대로 또 마감은 할 수 있으니까 그 상태로 계속 온 거지.

몸이 힘든 만큼 인지도도 높아졌다. 달라진 시선을 의식하나.
허지웅:
별로. 그런 거에 대한 자의식이 없다. 방송으로 무슨 일가를 이루겠다는 생각도 눈곱만큼도 없고, 내가 미친 사람이긴 하지만 지금 밝혀져서 검찰에 소환당할 만한 일은 안 했다. (웃음) <마녀사냥> 제작진도 내가 자유롭게 이야기한다는 걸 알고 섭외했다. 첫 회에서 친구 사이였던 여자와 술 먹고 잤다는 이야기를 편하게 한 것도 그런 이유였고. 알아서 편집도 잘하더라.

하지만 상황 자체는 분명히 달라졌다. 이런 변화가 글쓰기에는 영향을 주지 않나.
허지웅:
별로. 안 그래도 예전에 이 부분을 고민한 적이 있긴 했다. 분명 이혼도 하고 환경이 많이 달라지고 있는데, 왜 나한테 별 무리가 안 가지? 궁금했던 거다. 몸만 힘들고.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술이 도움이 된 것 같다. 하루를 늘 새롭게 산다.

방송을 하고 나서는 청탁받는 글이 달라졌나. 전에는 주로 영화, 시사, 연애에 대해 썼는데.
허지웅:
당분간은 지금 정기적으로 마감하고 있는 것만 하려고 한다. 물리적인 시간이 없으니까. 결벽증이 있어서 글쓰기 전에 청소도 해야 하고 키보드도 닦아야 한다. (웃음) 청탁 내용은 늘 그랬듯 영화나 연애 이야기도 들어오고 연말이라 결산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 시사에 관한 건 뚝 끊겼다. 완전히. 그나마 <경향신문>에 기고하는 칼럼이 시사를 영화로 풀 수 있는 글이지만 정통 시사칼럼은 아니지 않나. 늘 써오던 분야 중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글에 대한 반응은 전보다 더 커졌을 것 같다.
허지웅:
그게 진짜 열 받는다. 나름대로 글을 오래, 열심히 써왔다고 생각했는데 방송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나에 대한 반응도 완전 달라지니까 일종의 배신감이 들더라. 물론 글을 쓸 때는 나름의 보상이 있었을 거다. 또래에 비해 사랑을 받기도 했고. 하지만 특히 <마녀사냥>은 <썰전>과 달리 직업 정체성을 드러낼 일이 없어서 <마녀사냥>만 보고 날 아는 사람은 내가 그냥 미친 사람인 줄 안다. (웃음)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마녀사냥>에서 진지하게 말할 이유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지만, 한국에서 글 쓰는 게 들이는 품에 비해 너무 보상을 못 받는 직업이라는 생각은 든다.

예전에 트위터로 지적한 원고료 문제도 그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건가.
허지웅:
지금도 주요 일간지에 글을 기고하는 필자 중, 원고지 1매당 만 원을 못 받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문제가 있겠지. 외국에서는 교수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기 분야에 관한 글을 쓰면서 칼럼니스트란 말을 듣기도 하지만, 한국에는 그런 체계가 안 잡혀 있고 지식인이란 개념만 있다. 한국에서는 글 쓰는 직업을 일종의 명예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글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조금 유명해진 사람이면 일단 청탁하고 보는 곳도 있으니까.
허지웅:
그렇게 칼럼 지면을 메울 거라면 빈 상태로 두거나 일러스트를 넣는 게 낫지 않을까. 글을 청탁하는 사람들도 필요해서 지면을 채우는 건데 정당한 글 값을 안 주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중문화에 관한 글은 진입 장벽이 낮기도 하고.
허지웅:
국가고시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진입 장벽이 낮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글을 쓰는 사람도 너무 많다. 그렇다면 더욱더 글 값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하면서 정확한 사람을 찾아 청탁을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 생각이 없는 거다.

반대로 방송가는 반응을 얻는 만큼 몸값을 제대로 준다. 고정으로 출연하는 방송이 3개인데, 일주일에 3개의 글을 써도 얼마 안 되는 돈을 받는 게 허무하지는 않나.
허지웅:
내가 왜 그런 생각이 안 들까 생각해본 적은 있는데, 안 든다. 송고하기 전에 내 글을 보는 게 가장 좋다. 가끔 마감 시간 때문에 뭐 같은 글을 썼거나 지면에 실리고 보니 데스크가 비문 안 걸러주고 하면 ‘난 뭐하러 사나’ 싶기도 한데, 나는 그냥 쓴 글을 모아놓고 보는 게 제일 중요하다. 지금 뭐, 여자 친구도 없고 아무런 낙이 없기 때문에. (웃음) 그리고 내가 글 쓰는 거 말고 다른 걸 하면 사회에 민폐를 끼칠 것 같다. 아르바이트로 텔레마케팅을 하면서 알았다. 사기는 잘 칠 수도 있겠다는 걸. (웃음)

방송에서도 스스로를 ‘글 쓰는 허지웅’으로 소개하더라.
허지웅:
한동안 방송에서 난 연예인도 아니라는 말을 너무 자주 했는데, 얼마 전에 (신)동엽이 형이 걱정하더라. 게스트가 아니라 고정으로 1년 가까이 방송에 출연하고 있으면 방송인인 거라고.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다만 지금도 계속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글 쓰는 사람이란 정체성은 변한 게 없다. 가끔 방송과 글 쓰는 것 중 어떤 게 더 중요한지, 어떤 걸 더 오래 하고 싶은지 묻는 분이 있는데 의미 없는 질문이다.

글을 쓰는 게 직업이기 전에 생활인 건가.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 때부터 글을 썼고, 영화 리뷰를 쓸 때도 글에서 ‘나’를 굉장히 드러낸다.
허지웅:
생활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건 좋아했지만 고등학교 때 광주로 이사 간 후에는 글에 대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교를 다시 서울로 오면서 계속 혼자 있었다. 방을 공짜로 주는 고시원 총무 아르바이트도 꼭 해야 했고. 그때는 별로 할 일도 없어서 혼자 있으면 글을 쓰게 됐던 건데 그게 되게 좋더라.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글로 처음 배운 거다. 그러다 글이 인정을 받고 돈벌이가 되면서 직업이 됐다. 직업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해본 적도 없는데, 대학교 졸업하고 바로 기자 생활을 하며 지금까지 온 거라 나한테는 글 쓰는 게 당연하다.

그래선지 발표한 책 <대한민국 표류기> 같은 걸 보면 글을 쓰는 게 어떤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는 느낌이 든다.
허지웅:
숭고한 목적은 없다. 개인의 글이 사회에 엄청나게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대도 이젠 아니고. 난 글을 안 쓰면 아무것도 아니다. 글을 안 쓰면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내다 건달이 될 것 같다. 열심히 몸 굴리며 사는 게 제일 멋진 것 같다.

글쓰기의 목적이 달라서일까. 문장도 이전 세대의 비평과 다르다. 한국 공포영화사를 정리한 <망령의 기억>에서도 문장이 구어체와 문어체 사이에 있는 것 같았다.
허지웅:
기자 생활 하면서 문장을 짧게 쓰라는 교육도 많이 받았고, 워낙 가독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건방진 말일 수 있지만 안 읽히는 글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망령의 기억>은 장르영화에 대한 이야기라 더 연성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한국에서 공포영화는 그렇게 큰 인기는 없다. 한국 고전 공포영화는 더더욱 그렇다. 안 그래도 인기 없는 장르를 어렵게 쓰면 사람들에게 안 읽힐 것 같았다.


문장 쓰기처럼 방송에서 말하는 톤도 고민하나. 글로 쓰면 자세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썰전>에서는 한두 마디로 불특정 다수를 이해시켜야 한다.
허지웅:
그런 고민은 안 한다. 내가 방송 전문가도 아니고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전문 방송인처럼 할 수 없다. 물론 상대적으로 강하게 들릴 수는 있겠지. (김)구라 형은 MBC <라디오스타>처럼 수다를 써는 스타일로 <썰전> 2부를 대하지만, 난 손석희 씨가 JTBC 보도부문 사장이자 <뉴스 9> 앵커가 됐으니 <뉴스 9>에서 삼성을 다뤄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근데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어처구니없이 MBC <무한도전> 욕했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힙합 신의 디스전에 대해 “힙합 문화라기보다 스스로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느낌이다”라고 말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런 논란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나.
허지웅:
나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이 정도가 심한 경우엔 쌍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옆에서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 (웃음) 디스 사건은 당시 이슈이기도 했고 <썰전>에서 아이템으로 다룬 거라 이야기를 하긴 해야 했다. 물론 편집된 영상을 보고 나니 욕을 먹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방송이 이런 거구나 하고 넘어갔다. 그때 날 디스한 파일도 누가 만들어서 올렸더라. (웃음)

<썰전>에 출연하면서 글만 쓸 때보다 다루는 영역이 넓어졌다.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허지웅:
그런 건 별로 신경 안 쓰지만 가끔 열 받을 때는 있다. 제목이 <썰전>이지 않나. 그러면 <썰전> 2부는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주제로 가면 좋겠는데 갈수록 연성화되고 있어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여배우들이 결혼하고도 잘되는 이유가 뭘까? 원래 잘 나갔었으니까. (웃음)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는데 그 주제로 어떻게 한 시간을 말하나. 그래서 보통 <썰전>은 녹화 전에 관련 주제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나 방송에서 어떤 논조로 이야기할 건지 작가들과 인터뷰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 담당 작가랑 계속 이야기를 한다. 근데 뭐, 가끔씩은 민감한 것도 하니까.

그중 하나가 “손석희 사장이 삼성을 다룰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 거였다. 이후 그 한 문장이 <뉴스 9>의 기준으로 화제가 됐는데, 방송에서 글보다 훨씬 압축적으로 생각을 전달하면서 글에 대한 생각도 바뀐 게 있나.
허지웅:
글의 파급력이 방송보다는 약하지만 방송은 말 그대로 파급력만 크다. 손석희 사장 이야기를 글로 쓴다면 내가 말한 건 제목에 가까운 거다. 글 내용에서는 어떤 이슈가 생겼을 때 처음 보도를 하고 나면 후속 보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이며 그걸 어떻게 이슈 메이킹을 해서 다른 뉴스가 따라오게 할 건지 등을 이야기했을 거다. 근데 방송으로 그 한마디만 들은 사람들은 <뉴스 9>이 삼성 노조 문건을 입수해 보도한 것 자체만 보고 다뤘으니 됐다고 생각한다. 파급력은 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끝난다는 게 아쉽다. 방송의 한계라 생각한다.

대중이 지식과 정보를 글보다 <썰전>이나 팟캐스트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런 변화가 대중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까.
허지웅:
글쎄, 사람들이 점점 더 단순화되고, 일단 시간을 보내기 좋은 콘텐츠, 형식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썰전>에 대해서도 방송을 본 기자의 기사를 보고 소화한다. 나는 책을 읽는 게 여전히 최선이라고 본다. 인터넷에는 잘못된 정보도 너무 많다.

하지만 말한 것처럼 글은 점점 대중에게 외면받고 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허지웅:
정말 어려운 문제다. 글 쓰는 사람이, 특히 어떤 직업군으로 소속된 사람이 아니면 노동성을 가진 주체로 인정받기가 너무 어려워 조직을 만들기도 어렵다. 그럼 갑자기 사람들의 읽기 문화에 혁신적인 변화가 있다면 가능할까.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거고. 너무 요원하다. 유명한 소설가도 책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더라. ‘진짜 한국에서 글 쓰는 건 하지 말아야 되나’라는 자괴감도 든다.

그런데도 결국 쓰고 있다. 방송 출연 후에도 여러 논쟁에 참여하고. 지치진 않나.
허지웅:
되게 얄팍한 인기를 얻기 좋은, 유행을 탄 영화가 있다고 치자. 그걸 잘 만들면 또 괜찮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그냥 좋아할 법한 부분만 자극해 만들면 열 받는다. 그걸 동력으로 글을 쓴다. 그렇게 사람들 생각이나 입장이 다른 게 너무나 당연한데, 그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이 자기 말만 맞다고 하는 걸 보면 울컥 화가 나서 싸움이 붙는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특히 일부러 싸움을 위해 불필요하게 특정 진영을 임의로 지정하는 사람들 때문에 싸운다.

<대한민국 표류기>에서 “끔찍하게 저열해 보이는 말과 글일지라도 누군가의 삶 위에서는 제법 적확하게 작동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라고 쓴 게 기억난다.
허지웅:
그 문장이 내게는 종교와도 같다. 이슈를 두고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다들 어울려 사는 세상이라 타인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근데 타인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과 그들과 친구가 되는 건 다른 문제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좋아하지만 억지로 가정하자면 내가 (홍)석천이 형을 싫어한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호모포비아인가? 그건 아닌데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이거 아니면 저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걸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많다.

논쟁은 하되 상대의 입장에 대해서는 대화할 준비가 돼 있는 건가.
허지웅:
나도 어렸을 때는 안 그랬다. 그런데 나는 대학 시절에 진보 진영, 그중에서도 NL에게 설움을 받고 있던 PD 계열에 속해 있었는데, 매번 싸우려고 하다가 졌다. NL의 가공할 만한 조직력은 사그라지지 않고 우리가 옳다고만 하다가 패배한 기억밖에 없다. 그런 패배의 기억이 있다 보니까 이해심이 늘어나더라.

진영이라는 게 자칫하면 다양한 입장을 뭉뚱그릴 수도 있으니까. 그럴수록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하는지가 글 쓰는 사람의 입장을 보여준다.
허지웅:
한국에서는 특정한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살던 사람들이, 어느 시점이 되면 넌 어디 편이냐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그 선택을 마주하기 전의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 게 보람일 것 같다. 사실 완전히 굳어진 사람들의 생각은 안 고쳐진다. 만약 살기 위해 어떤 편에 들 수도 있는데 지금 내가 택할 진영이 대승적으로 정의로운 진영이니까 지금 당장 마음에 안 들어도 참고 넘어간다면 그 사람은 점점 자기 생각을 잊어버리고 진영의 아젠다가 본인 인생처럼 되어버릴 거다. 그러지 말고 영화가 됐든 시사적인 문제가 됐든 고민을 해보고 숭고한 전사나 산신령 같은 사람은 되지 말자고 하고 싶다. 그러면 이중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거든. 자기는 진영의 논리대로 살고 있지 않으면서 막상 불편한 일이 펼쳐지면 음지로 치워버리는 사람 말이다. 진영의 논리가 아니라 이해심을 전제로 사람들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개개인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말인데, 그런 태도가 글을 쓸 때는 미덕이 되겠지만 외롭지는 않나. 글쓰기는 자기 아니면 결국 누구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허지웅:
그래서 책상 위에 피규어를 많이 놓는다. (웃음) 근데, 어찌 됐든 내가 느끼기에 충분한 친구들이 있으니까 크게 상관없다. 제일 싫어하는 게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면 자기만 좋은 사람이 되거든. 친구가 10명 있다고 해보자. 그들의 이해관계가 다 다르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사람이려고 한다면 결국 자기만 선비 되고 다른 사람들은 당연한 배신감을 느끼는 순간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 마냥 좋은 일이란 애초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라 보는 편이라, 앞으로도 좋은 일은 크게 없을 거라고 본다. 인생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글은 혼자 써도, 써서 사람들에게 읽히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방송은 더 많은 사람이 보고. 어른의 책임감을 자주 언급해왔는데,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나.
허지웅:
절대 아니다. 그랬다면 이혼은 안 했을 거다. 책임을 잘 못 진다. 방송도 10번 넘게 그만둔다고 말했다. 근데 이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을 완전히 배제하고 내가 떼를 썼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면서 책임감의 테두리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 글 쓰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성장하고 싶나.
허지웅
: “저 사람은 햇수를 세어보니까 아직도 쓰네?”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계속 글을 쓰고 싶다.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한 사람들에게 배울 점이 많겠지만, 난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게 멋지다. 윤종신 씨가 매달 발표하는 싱글 <월간 윤종신>처럼. 이쪽 직업에는 그런 분들이 많이 없다 보니까 내가 그렇게 되고 싶다. 글 쓰는 후배들을 위해서도 무언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중간한 나이에 잡지사 들어갔는데 갑자기 그만두고 할 일이 없어진 친구들을 많이 봤다. 그래서 노조나 유니온을 생각하기도 했던 거고. 명확한 기준이 되는 체계를 만드는 데에 일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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