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세상의 품격

2013.12.19

<노블레스>│작가: 글 손제호, 그림 이광수│매주 화요일 네이버 연재

노블레스: 1. 귀족의 신분(계급) 2. 고귀, 고결, 기품, 위엄.
웹툰 <노블레스>에서 주인공이자 작품 속에서 실제로 ‘노블레스’라는 칭호로 불리는 라이를 설명하기에 이보다 좋은 요약은 없을 것이다.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과 수명을 지닌 뱀파이어 귀족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 ‘노블레스’인 그는, 820년 동안의 잠에서 깨어나 인간의 학교에서 평범한 삶을 누린다. 뱀파이어 귀족들과 그에 반목하는 전 지구적 지배 집단인 유니온과의 알력과 학교 아이들이 휘말리며 사건이 벌어지는 <노블레스>의 갈등 구조 안에서, 라이는 언제나 아이들을 비롯한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등장해 싸움을 종결한다. 판타지 액션 만화로 분류할 수 있는 <노블레스>의 세계관 안에서 소위 파워밸런스 최상위에 위치한 귀족 집단의 가주들과 유니온의 장로조차 그에게는 경외감을 표할 정도다. 매 에피소드를 거듭할수록 더 새롭고 강한 적이 등장하는 소년 액션 만화의 공식 안에서도 그는 이미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능력자다.

때문에 <노블레스>에는 <드래곤볼>이나 <원피스>, <나루토> 같은 여타 ‘에스컬레이션(주인공이 매번 더 강한 적을 쓰러뜨리며 성장하는 방식)’ 스타일의 소년만화처럼 난관을 극복하며 만들어가는 서사의 긴장감은 덜하다. 매 시즌, 아무리 새로운 적이 등장해도 라이에겐 이길 수 없다. 지난 시즌의 적이 동료가 되고, 그보다 훨씬 강한 적이 등장하고, 신우 일행을 비롯한 라이 주변의 인물들이 위험에 빠지며, 최종적으로 라이와 그의 충복 프랑켄슈타인이 등장해 말 그대로 판을 정리한 뒤 다시금 학교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패턴도 반복된다. 그럼에도 <노블레스>의 이야기가 독자를 매혹하는 건, 서사적으로 누적된 감정을 라이의 각성과 함께 폭발시키며 액션의 쾌감과 이야기의 재미를 동시에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작가는 라이가 현세의 고등학교에서 겪는 평범한 일상에 집중한다. 몇백 년의 잠 이후에 현세에 나온 그에게는 아이들과 함께 라면을 먹고 온라인 게임을 하는 모든 일상이 신기하고 소중한 일이다. 이러한 일상의 즐거움을 쌓아놓았기에, 그가 아이들을 위기에 몰아넣은 악역 제이크에게 힘과 분노를 개방하며 “꿇어라,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라고 말했을 때 캐릭터의 위엄과 악을 징벌하는 서사적 쾌감이 한 흐름에서 납득될 수 있다.


하지만 라이가 정말 빛나는 건, 가장 높은 계급 혹은 위엄으로서의 ‘노블레스’가 아닌 고결함으로서의 ‘노블레스’를 보여줄 때다. 라이는 언제나 자기 주위의 소중한 존재들을 지키기 위해 힘을 쓰기에 결코 과시적이지 않다. 여기에 그가 힘을 발휘할 때마다 생명이 소모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라이의 싸움은 순결한 자기희생이 되며 일종의 신성까지 부여된다. 왜 생명까지 소모하며 자신들을 구했느냐는 M-21의 물음에 라이는 답한다. “내 생명력을 소모해서 그대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내 생명의 가치는 그걸로 충분한 것이 아닌가.” 누구보다 강한 ‘노블레스’의 품격은 이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는 ‘오블리주’를 통해 완성된다. 가장 통쾌한 액션 신이 가장 짙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이율배반을 통해 판타지 액션으로서의 쾌감과, 영웅적 주인공의 선의가 스스로의 파국을 향해 가는 전통 비극의 정서가 <노블레스> 안에서 하나가 된다. 하여 <노블레스>의 그저 단순 반복되는 것처럼만 보이던 이야기 패턴이 라이의 일관된 희생의 과정이라는 것이 드러나며 극적 긴장감의 밀도 역시 훨씬 높아진다.

라이가 매번 강력한 적들을 물리친 뒤 다시 평범하지만 밝은 학교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반복적 결말을 빤하다고 할 수 없는 건 그래서다. 그 일상은 그의 희생으로 지켜낸, 말하자면 싸움 자체의 목적인 동시에 언제나 홀로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그가 잠시나마 그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장소다. 하여 매 시즌 나오는 일상으로의 귀환은 가장 반가운 승전보이자 다음 시즌에서도 도래하길 바라는 이상적인 미래다. 다섯 번째 시즌을 마치며 생명의 위험까지 겪은 라이에게 다시 한 번 이 일상을 선물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선한 희생엔 그만한 보상이 따르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품격을 보여주는 것일 테니까. 설령 그것이 “기억해주기를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었”(라이)다고 해도.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여성의 이직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