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 학원격투느와르

2013.12.12

<독고>│작가: 글 meen, 그림 백승훈│매주 월, 수, 금 스투닷컴 연재

학생들이 싸우고 또 싸우는 내용으로 작품 전체를 전개하는 학원격투물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관습 가운데 하나는, 탁월한 무력을 지녔거나 점차 지니게 되는 다분히 단순한 성격의 주인공이 원치 않던 싸움에 계속 휘말리지만 결국 싸움에서 패배시킨 자들이 하나씩 동료가 된다는 공식일 것이다. 싸움은 우열을 가리는 승부일 따름이라는 나름대로의 건전함을 유지하면서, 격투의 쾌감은 살려내는 묘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즐거운 판타지라도 결국은 지겨워질 때, <독고> 같은 작품을 읽게 된다. 영민한 주인공이 스스로 기획한 싸움을 벌이면서 적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싸우고 나면 비뚤어진 성격이 고쳐지고 우정이 싹트는 말랑함 따위는 없다. 이야기는 중학교를 자퇴하고 싸움질에 능해진 강혁이, 학교에서 구타당해 병원에서 의문사한 모범생 쌍둥이 형으로 위장해 학교에 돌아가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학교는 이태현이라는 학생을 정점으로 하는 학내 조직폭력단이 장악하고 있으며, 활동 내역은 매우 체계화되어 전교생에게 갈취한 돈으로 서열화된 학내 폭력단 간부들에게 월급을 지급한다. 이들을 뿌리 뽑아 복수하기 위해 강혁 역시 정체를 들키지 않으면서 싸움꾼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계획을 수행해야 한다.


많은 학원폭력물이 무협지를 연상시키는 개별 결투에 초점을 둔다면, 이 작품의 전개는 범죄스릴러다. 강혁은 어째서 강후가 죽임을 당했는지 수사를 나서고, 숨겨진 협력자를 찾아내야 한다. 이태현은 주먹 좀 써서 대장 노릇 하는 고등학생이 아니라, 거의 기업화된 범죄조직의 수장으로서 부하들을 관리한다. 나아가, 고등학생들만의 룰로 움직이는 폐쇄된 가상세계가 아니라, 경찰도 범죄 냄새를 맡고 수사에 들어가고 선생도 연루된다.

물론 이 작품도 여전히 무력 대결로 한 단계씩 진전되는 학원격투물의 재미를 간직한다. 일대일, 일대다로 싸우며 뛰어난 싸움 기술들을 선보이고, 서열에 맞춰 하나씩 더 강한 적이 주인공 앞에 등장한다. 각자의 싸움 스타일은 인물의 성격을 반영할 정도로 격투가 중심에 놓여 있다. 남자들의 표정 묘사에서 <지뢰진>의 작가 다카하시 츠토무에 대한 애정이 다소 지나치기는 하지만, 싸움을 그려내는 거친 그림체와 절제된 연출 역시 훌륭하다. 그러나 <독고>는 싸움이 성장의 절차 또는 훈계의 과정인 학원 판타지가 아니라, 조직화된 적을 물리쳐 나가는 수단인 액션스릴러다. 오늘날 고등학교 조폭들의 조직화된 착취의 현실성을 반영하되, 다만 그 안에서 격투 폭력으로 사건을 돌파해 나아갈 따름이다.

강혁이 조직 전체와 벌이는 싸움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나. 학원 폭력 없는 세상이 오는 것도, 잘못이 바로 잡힌 개개인의 행복이 기다리는 것도 아님을 독자들도 주인공도 이미 알고 있다. 이룰 것이라고는 이미 죽어 없어진 가족의 원한에 대한 복수뿐이다. 이런 감성은 80년대를 사로잡은 속칭 ‘홍콩 느와르’ 영화들의 신파적이면서도 비정한 풍미에 가깝다. 신파는 지금의 상황을 낭만적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덧 희박해진 정의를 씁쓸하게 돌아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비정함은 갑갑한 현실에서 교훈적 판타지로 도피하는 것을 멈추고, 비열한 현실감을 던져주고 그 안에서 처절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현실의 한국 사회에서, 학원폭력을 장르 오락물로 다루는 방식이라면 이쪽이 훨씬 매력적인지도 모르겠다.

김낙호
만화를 계속 읽다가 어쩌다 보니, 제법 여러 가지를 진지하게 논했다.
별별 다양한 만화들이 지속되고, 다들 잘 골라 읽는 환경이 목표.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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