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 게임판 바깥을 보라

2013.12.05

<다이스>│작가: 윤현석│매주 일요일 네이버 연재

“신이 주사위를 던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보드게임을 즐기고 있다.” 웹툰 <다이스> 21화에 인용된 말이자 “신은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비튼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위트 있는 경구는 어쩌면 <다이스>의 세계관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설명일지 모르겠다. 반 내 ‘왕따’이자 ‘빵셔틀’인 동태가 우연히 사람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신비의 주사위 ‘다이스’를 줍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이스’의 관리자인 엑스의 말대로 게임과 비슷하다. 엑스에 따르면 게임은 임무와 보상으로 이뤄진 세계다. 때문에 노력한 만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오히려 타고난 능력에 따라 많은 것이 결정되는 현실이 이보다 더 불공정하고 불합리하다.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다이스’를 얻고 능력을 올리는 ‘다이서(‘다이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은 그래서 동태에게 게임처럼 즐겁다. 하지만 앞서 인용한 말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건 엑스가 동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때다. “이건 내 게임이야.”

동태에게 있어 ‘다이스’란 출발부터 불공평했던 선천적 약자들이 세상과 공정한 게임을 펼칠 수 있는 일종의 구원이다. 능력치를 높여 잘생겨지고 운동 신경도 좋아진 동태에게 일진들은 더는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그가 자기 대신 새롭게 ‘빵셔틀’이 된 병철에게 충동적으로 ‘다이스’를 나눠준 건 그래서다. ‘다이스’만 있다면 밑바닥 인생도 평범한 삶에 편입될 수 있다. 그게 동태의 관점이다. 하지만 모두가 동태처럼 평범한 일상에 만족할 수는 없다. “모두들 평범하게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을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병철은 ‘다이스’가 주는 힘에 집착하며 무리한 임무를 수행하다 죽는다. 죽은 병철이 흘린 ‘다이스’ 덕에 ‘다이서’가 된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퀸카 수준으로 예뻐지고, 호날두보다 강력한 킥을 얻어도 계속해서 ‘다이스’를 모은다. 무한히 열린 가능성 앞에서 인간의 욕망 역시 무한대로 분출된다.

 

교내 아이들 다수가 ‘다이서’가 되며 벌어지는 일들이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을 연상케 하는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아이들은 단순히 ‘다이스’를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이스’를 지불하거나 지불할 거라는 약속으로 누군가를 움직인다. 무엇보다 병철의 예상대로 “‘다이스’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입장이 명백히 갈리”게 된다. 아무리 많은 ‘다이스’도 무한한 욕망을 채울 수는 없다. 오히려 인플레이션은 ‘다이스’가 주는 만족감을 둔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경쟁은 심화되고, ‘다이서’ 대 평범한 아이, 혹은 ‘다이서’ 간의 불평등 역시 심화된다. ‘다이스’가 퍼져 나가도 “다수가 행복해졌으니 좋잖아?”라던 동태의 순진한 생각은 틀렸다.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박탈감과 제로섬을 이룬다.

물론 <다이스>가 시장경제를 은유하는 작품은 아니다. 단지 어떤 신비한 능력도 인간의 욕망을 온전히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허기진 욕망이 만들어낸 무한 경쟁의 나선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나선 바깥에서 웃고 있는 존재는 따로 있다는 걸 보여준다. ‘다이스’는 무한한 가능성을 주지만, ‘다이서’는 자유로워지기보다는 오히려 ‘다이스’의 노예가 된다. ‘다이스’가 걸린 임무를 통해 ‘다이서’를 마음대로 부리고 통제하는 엑스가 “이건 내 게임”이라 말하는 건, 섬뜩하되 진실이다. 앞서 인용한 펠리니의 말을 다시 한 번 비튼다면, 신이 보드게임을 즐긴다면 인간은 그의 말에 불과하다. 그 신이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법칙이건, 시장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이건, ‘다이스’의 관리자이건. 이것은 얼핏 비관적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인식을 통해 비로소 독자들은 스스로 주인공이라 믿고 아등바등 경쟁하던 게임판 바깥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다. 현실이 게임이 되는 판타지를 통해 역설적으로 현실 속에 내재된 판타지를 부수는 이 독특한 충격 요법이야말로 <다이스>를 여타 게임을 소재로 한 판타지 만화들과 구분해주는 미덕이지 않을까. 물론 판타지 만화에서조차 판타지를 즐길 수 없는 현실이 조금은 씁쓸하겠지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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