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국 “변하지 않는 건 없지만 마음은 초심 그대로여야 한다”

2013.11.14
재능이란 무엇일까. 영화 <노브레싱>의 원일(서인국)은 수영선수였던 아버지로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경기 도중 아버지가 사망하자 수영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리고 <노브레싱>은 꿈도 내일도 없이 살아가던 고등학생 원일이 자신의 재능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라이벌 우상(이종석)과 승부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래서 소년만화 주인공의 전형 같은, 단순하고 쾌활하고 까불대지만 어떠한 계기로 각성하며 무서운 에너지와 집중력을 보여주는 원일을 서인국이 연기하게 된 것은 재미있는 인연 같다. 일찍 발견했던 재능을 갈고닦아 가수로, 그리고 자신도 미처 몰랐던 재능을 발굴당하며 배우로 두 번의 도약을 해낸 그에게 특히 후자는 거의 본능의 영역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자신이 지닌 힘을 완벽하게 컨트롤하지는 못하지만 연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놀라울 만큼 빠르게 흡수하고 자연스레 소화해낸 서인국의 가능성이 지닌 크기는 섣불리 가늠할 수 없다. 아마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남자, 서인국을 만났다.

조용선 감독과 영화에 나오지 않는 원일의 성장과정에 대해 여러 시간 동안 신나게 얘기를 나눴다고 들었다. 캐릭터의 전사(前史)를 연구하는 건 배우에게 중요한 과제일 텐데, 어떤 상상을 했나.
서인국
: 작품 초반 원일은 같이 몰려다니며 놀던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한 상태라 상당히 거칠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밝은 아이다. 그런데 그 밝은 성격이 자기방어적인 데서 나온 것 같았다. 어릴 때는 그냥 보통 아이였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사건의 트라우마 때문에 성격이 변한 것 같다. 힘든 걸 떨쳐내기 위해 좀 더 일차원적인 본능 위주가 된 거다. 그래서 먹을 게 있으면 집착적으로 달려들어 정말 맛있게 먹고 조금이라도 기쁜 일이 있으면 굉장히 격하게 신나 하는데, 오히려 그래서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원일을 연기하다 보면 짠한 느낌이 들었다.

원일에 대해서는 다들 ‘천재’라고 말하지 않나. 정작 본인은 별로 의미를 두지 않지만 완벽한 커리어를 쌓아 온 우상조차 원일을 부러워하는 느낌이 있고, 그렇게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서인국
: 남들은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갖고 있으니까 궁금하겠지만 원일이 입장에서는 그냥 당연한 기분이지 않을까. 수영을 시작한 것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아빠를 따라 한 것뿐인데 처음부터 너무 자연스럽게 잘했으니까 타고난 재능에 대해서도 특별하다고 인식하지 못했을 것 같다.

수영 연습은 물론 전체적인 운동 능력을 길러야 했을 것 같다. 미끄럼틀에 거꾸로 매달려 윗몸일으키기 하는 신이 기억에 남는데.
서인국
: 그때 속으로는 엄청나게 겁이 났다. 혹시라도 떨어지면 머리부터 떨어지는 거라 사고가 나면 위험하다고 다들 말렸는데 내가 괜찮다고 안전장비 없이 촬영했다. 그런데 막상 하면서도 겁이 났고, 여러 번 찍다 보니 나중에는 기운이 빠져서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상체를 일으켜서 코치님(박철민)이 내미는 붕어빵을 먹어야 하는데 안 닿으니까 혀 내밀고 용쓰느라 추한 컷들이 많다. (웃음)

엄격한 식단 관리를 6개월 가까이 했다던데, 그렇게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거스르는 생활을 계속하면서도 스스로 풀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동력은 뭐였나.
서인국
: 대충 할 수가 없었다. 벗어야 하니까. (웃음) 내가 그냥 수영장에 놀러 간다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안 할 텐데, 전 국민이 나의 몸 상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되니까 참아졌다. 사실 운동을 하루 정도 쉬어도 당장 표가 나는 건 아니다. 살이 빠지다 말고 좀 멈칫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욕심이 커지니까 열심히 할 힘이 됐다. 오히려 제일 힘든 건 촬영할 때였다. 계속 식단 조절을 하다가 원일이가 삼겹살 같은 걸 먹는 신에 들어가면 미친 듯이 먹는데, 한 번 먹으면 입맛이 돋아서 참는 게 정말 힘들었다. 너무, 힘들었다.

KBS <사랑비>로 연기를 시작했는데,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음에도 초반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고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 캐릭터에 접근해가는 방식이 궁금하다.
서인국
: 내 캐릭터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캐릭터를 많이 본다. 주변 사람들이 있어야 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이 내 캐릭터에 대해 말하는 걸 들으면 내가 이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tvN <응답하라 1997>의 윤제는 누가 봐도 판타지적인 인물인데 친구 방성재(이시언)한테는 맨날 “재수 없는 새끼”라는 말을 듣고, 시원이(정은지)한테는 맨날 얻어맞지만 시원이 부모님에게는 아들처럼 아끼고 기대를 품는 존재다. 그런 여러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내 캐릭터를 일차적으로 만들고, 원래 나와 있는 나의 스토리를 보며 성격 같은 걸 좀 더 파고들어 간다.

카메라 앞에 처음 섰을 때 심정은 어땠나.
서인국
: 무서웠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다른 연기자들과 함께한다는 게 무서웠다. 나는 가수 출신이고, 당시 그에 대한 시각도 좋지만은 않았으니까. 그래서 <사랑비> 촬영에 들어가면서 남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가수 서인국의 모습을 지우려고 했다. 일부러 살도 찌우고 머리도 덥수룩하게 기르고 큰 안경을 끼고, 그런 것들이 캐릭터를 만들고 접근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사실 현장 시스템 같은 것도 거의 몰랐는데,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카메라 앞에서 네 마음대로 해보라”고 하며 많이 예뻐해 주셨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셨다.

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도 배우로서의 장점 중 하나인데, 사투리가 자신에게 무기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서인국
: 없었다. 연기하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 와서 몇 년 지내는 동안 고치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노래할 때도 사투리가 나오고, 친구들도 재밌다고는 하는데 한편으로는 놀리는 듯한 기분도 들어서. (웃음) 그런데 <응답하라 1997>의 신원호 감독님께서 “사투리는 제2의 국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배우에게는 힘이 된다”고 말씀해주셔서, 그때부터 내가 경상도 출신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

연기할 때는 분명 매력이지만, 경상도 남자 특유의 툭툭 던지는 말투나 너무 솔직한 태도 때문에 오해를 사기도 할 것 같다.
서인국
: 그런 일은 종종 있다. 드라마에서는 ‘나쁜 남자’ 같은 캐릭터가 주어지니까 괜찮다. 윤제도 항상 냉정한 성격에, 단것 좋아하면서 여자가 케이크 줄 때 “단거 안 좋아한다” 하고 확 가버리니까 상대 입장에서는 재수 없는 놈일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는 이 사람이 왜 그런지 다 설명해주고 나쁜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지만 현실에서는 그러지 않으니까. 만약 내가 토크쇼에서 세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한다 해도 그건 세 시간만큼일 뿐이고, 또 그중에서도 몇 가지 단편적인 것만 사람들에게 보이게 되는 거다. 그래서 ‘왜 나를 이해하지 않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그런 생각을 내가 이해하려고 한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는 타지에 와서 혼자 사는 평범한 남자로서의 삶을 조금씩 보여주기도 했다. 어떤 경험이었나.
서인국
: 워낙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어디에 속해 있는 걸 힘들어하는 성격이라 ‘모임’이라는 게 처음이었다. 그런데 선배님들과 사람 대 사람으로 얘기를 나누고, 촬영이 끝난 뒤에도 우리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혼자서만 생각할 때보다 스트레스가 많이 풀렸다. 이성재 선배님과는 동네에서 자주 만나 맥주도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도 한다.

요즘은 낚시에 취미를 붙였다고 들었다.
서인국
: 원래 취미가 거의 없었다. 집에 있거나 친구 만나 소주 한잔 하는 게 다였는데, 그러다 보니 너무 나태해질 것 같아서 활동적인 취미를 가지려고 했다. 몸 관리 차원에서 운동은 꾸준히 하던 거라 스쿼시를 시작했는데, 스케줄 때문에 자주 못 가다가 낚시에 재미를 붙였다. 어느 날 친구가 50cm 정도 되는 고기를 잡아서 사진을 보내줬는데, “이 자식이 잡았는데 내가 못 잡겠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울산에 가서 같이 해봤더니 져서 자존심이 엄청 상했다. 내가 잡은 고기 중 제일 큰 사이즈는 15~18cm다. (웃음)

해보니 어떤 매력이 있나.
서인국
: 낚시라고 하면 어르신들이 낚싯대 던져놓고 여유롭게 기다리는 풍경을 많이 상상하실 텐데, 내가 하는 건 루어 낚시라 계속 움직이며 던지고 당겨야 해서 딴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다. 그게 휴식 시간을 주는 것 같다. 전에는 모든 생활이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내가 잘했나? 이렇게 할걸. 아쉽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낚시를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고기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일에 몰두하고 바쁘게 살아온 만큼 갑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어지거나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도 있나.
서인국
: 사실은 많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그에 대한 부담, 책임감,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런데 또 막상 사람들과 같이 일하다 보면 그런 생각 자체를 할 겨를이 없다. 나 혼자만 하는 일이 아니라 감독님, 상대 배우들, 스태프들, 그리고 작품을 위해 밖에서 일하시는 분들까지 하면 천 명이 넘을 텐데 그분들을 생각하면 감히 혼자 슬럼프에 빠져 있을 수가 없다. 작품은 우리 거니까, 이겨내야지.

연기자로서든 가수로서든, 어떻게 살고 싶은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원칙 같은 게 있나.
서인국
: 변하지 않는 건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고향에 내려가 친구랑 술을 먹다 보면 “변했네”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전에는 친구랑 있을 때 말도 행동도 편하게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의 시선이 있으니까 똑같을 수는 없다. 그걸 친구가 서운하게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사람이 자기 직업에 익숙해지면 거기에 맞게 행동이 변해야 한다. 안 그러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 처음에 모든 게 어색했을 때 같은 모습으로 계속 지내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일에서는 철저히 프로 의식을 가지고, 내가 욕을 먹더라도 지켜야 할 건 지켜야겠지만 마음은 초심 그대로여야 할 것 같다. 내가 예의 바르게 사람들을 대하던 모습이 어느 순간 없어진다면 나 자신도 너무 슬프고, 내 인성 교육을 그렇게 시키지 않으신 부모님한테도 죄송한 일일 거다. 그래서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태도, 첫 마음은 잃지 말자고 생각한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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