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코│① 지코라는 이름의 아티스트

2013.11.04

① 지코라는 이름의 아티스트
② “무엇보다 진짜 뮤지션으로 인정받고 싶다”
③ 포토갤러리

 


“이런 콘셉트는 우리가 전문이야”라는 가사처럼, 블락비의 ‘Very Good’은 블락비만이 할 수 있는 무엇이다. “개판”이나 “깽판”과 같이 과격한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들의 무대에는 다른 아이돌들과 구별되는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금발과 빨간색, 초록색으로 물들인 기상천외한 헤어스타일이나 현란한 의상과 메이크업, 무질서를 모토로 하는 것 같은 안무의 힘만은 아니다. 전주부터 강렬하게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의 레퍼런스를 상기시키는 이 노래는 곧바로 무섭게 메인 테마를 던져버린다. 이어지는 지코와 피오의 랩은 속도를 올리거나 과장된 연출을 더하지 않으면서도 노래에 묵직한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초반부터 기세를 높여버린 노래는 그 템포를 발전시키기 위해 후반부에서 태일의 고음으로 갖고 있던 에너지를 남김없이 소진시켜 버린다. 듣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지치기 십상이지만, 적어도 노래가 진행되는 3분 남짓한 시간 동안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블락비는 이 노래로 음악방송 1위를 달성했다.

블락비의 성과는 단지 포화 상태인 아이돌 시장에서 대형 소속사에 속하지 않은 이들의 선전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데뷔 이래로 계속해서 “폭주하는 일곱 악당”의 이미지를 고수하는 이 팀은 결국 지나친 자유분방함이 문제가 돼 위기에 처한 바 있었고, 악동 이미지가 팀의 발목을 잡는 독이 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리더이자 앨범의 프로듀서인 지코는 ‘Very Good’에서 오히려 자신들의 정체성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길을 선택했다. 음악 밖으로 빠져나온 캐릭터를 수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음악의 영향력을 넓히는 것이었고, 지코는 음악을 설득하면서 자신과 팀의 성격 또한 대중에게 설득해냈다. 이제 블락비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대 위에서 잘 노는, 거칠지만 매력적인 아이들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지코는 뮤지션의 방식으로 아이돌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종류의 아티스트다. 그는 언더그라운드 래퍼로 음악 커리어를 시작해 데뷔 후에도 믹스테이프를 발표하며 고유한 캐릭터와 색깔을 숨기지 않았고, 팀의 휴식기에는 다른 아이돌 팀의 노래를 프로듀싱하면서도 공격적인 비트와 키치적인 유머를 가미한 독특한 음악성을 꾸준히 드러냈다. 그리고 현재 지코의 음악은 블락비의 무대, 콘셉트, 스타일에까지 모두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 작곡을 하거나 랩메이킹을 하는 등 창작 능력을 증명한 아이돌은 여럿 있다. 그러나 2PM을 떠나면서 오히려 뮤지션의 정체성을 찾은 박재범처럼 아이돌에게 본격적인 창작이란 대개 탈아이돌의 시작을 의미한다. 지코 이전에 아이돌인 채로 음악과 스타일을 컨트롤할 수 있었던 것은 G-드래곤(이하 GD)이 유일할 정도다.

지코와 GD의 음악적 기반이 모두 힙합이고, 최근 메이저 씬에서 인기를 얻은 많은 힙합 뮤지션들의 지지자와 아이돌 팬덤이 갖는 교집합이 제법 크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힙합은 노래의 완성도만큼이나 뮤지션의 성격과 태도가 앞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가장 강렬하게 캐릭터를 부각하는 장르다. 래퍼의 목소리와 말투, 동작과 취향은 음악으로 드러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의 퍼스널리티를 설명한다. 본래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며 무대에서조차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 지코와 블락비의 태도는 오히려 힙합 뮤지션에 가까운 것이다. 오랫동안 힙합 뮤지션들이 메이저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부드럽고 센티멘탈한 새로운 캐릭터를 강요받았던 것과 달리, 지코를 비롯한 몇몇 젊은 래퍼들이 자신의 캐릭터 그대로 아이돌 시장에 입성하기 시작한 것은 캐릭터에 대한 회사들의 이해가 넓어진 덕분이다.

최근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가 선보인 m.net < WIN >은 이런 시도들이 앞으로 하나의 경향이 될 것이라는 예언과 같다. 최종 우승자는 시청자들의 투표로 결정되지만, 회사는 자작곡 미션을 통해 계속해서 두 팀이 스스로 자신들의 색깔을 만들어 나가도록 유도했다. 물론, 여전히 많은 아이돌이 기획과 계획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YG가 배출한 아이돌 중에서 가장 다채로운 콘셉트와 뛰어난 스토리를 보여준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GD였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캐릭터의 힘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코와 마찬가지로 GD 역시 자기를 둘러싼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종식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자신의 음악임을 알고 있다. 이들이 정말 뛰어난 것은 지코는 지코인 채로, GD는 GD인 채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는 점에 있다. 그렇게 지켜진 유일한 캐릭터가 아이돌 산업의 핵심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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