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관이 받은 3단 멘붕 선물 세트

2013.10.28

오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사상 최초로 ‘주루방해 끝내기’가 나온 것.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 ‘사상 최초’는 정말로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교학사 수준으로 역사를 아예 새로 쓰기로 작심한 2013년의 한국 프로야구에서 오전의 사건은 에피타이저에 불과했다. 포스트시즌 최장경기시간 신기록을 필두로 포스트시즌 한 이닝 최다폭투, 연장전 최다득점, 최다희생타, 최고령투수, 최다잔루, 최다탈삼진, 최다투구수까지 나올 것은 다 나왔다 싶었던 올해의 포스트시즌 기록에 믿기 어려운 진기록이 새로이 더해진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두산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오른 유희관. 준 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모두 최종전에 등판해 승리를 이끌며 강심장을 과시했던 유희관은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도 역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의 4회초, 수비-심판-코치로 이어지는 보기 드문 3단 콤보가 유희관을 멘붕에 빠뜨리고 만다. 1사 만루에서 병살타성 땅볼을 유도해냈지만 유격수 손시헌이 공을 더듬으며 실책을 범한 것이 멘붕의 제1단계. 2루수 오재원이 급박한 와중에도 베이스를 먼저 터치한 것으로 보였으나 세이프로 판정된 것이 멘붕의 제2단계. 결정적으로 항의차 나왔던 코치진이 무심결에 마운드에까지 방문, ‘한 이닝에 코칭스태프가 마운드를 두 번 방문할 경우 무조건 투수를 교체해야 한다’는 규정에 걸리면서 멘붕의 최종 ‘테크트리’가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멘붕으로 이어질지 아직은 단언하기 어렵다. 유희관이 본의 아니게 전천후로 등판하면서 두산의 왼손 불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커피향만 음미하던 김진욱 감독이 본격적으로 각성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리고 유희관의 강판 이후에도 두산은 무너지지 않았고, 결국 오승환의 등판까지 이끌어냈다. 미디어데이에서 드라마의 끝이 새드 엔딩이어선 안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유희관. 그의 흑마구는 이미 상대팀을 향하고 있지 않다. 그의 느린 패스트볼은 이번에도 우리의 고정관념을 제대로 찔렀다.

이민호
MBC 스포츠 PD. 주요 연출작 <야구夜!>, <야구 읽어주는 남자>. “소시민은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는 노모 히데오의 말은 한계투구수를 잊게 하는 인생의 에너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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