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미술가 겸 연출가 여신동 “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거다”

2013.11.01
아티스트라는 단어 뒤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음표가 이어진다. 포괄적이고 모호한 데다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아티스트라 부를 수 있고, 예술이란 건 무엇이란 말인가. 11월 1일부터 10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사보이 사우나> 역시 물음표로 가득하다. 배우에게는 대사가 없고, 공연에는 서사가 없다. 그저 공중목욕탕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예민한 감각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낯설고 불친절한 공연을 만든 이는 2007년 <빨래>부터 연극과 뮤지컬을 부지런히 넘나들며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온 무대미술가 여신동이다.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는 그가 무대디자이너로서 작업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가, 스페이스111에는 그의 유년시절을 바탕으로 연출한 <사보이 사우나>가 공연된다. 한 해 평균 열 편 가량의 작품을 올리는 대표적인 다작 크리에이터인 그가, 2013년 자신의 내면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그런 여신동을 만나 화가를 꿈꾸던 어린 소년이 점점 세상 밖으로 나와 세계를 인정받기까지의 시간에 대해 물었다. 그의 뇌 구조를 찬찬히 들여다보다 비로소 알았다. 아티스트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사람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석고 작업을 하다 왔다고 들었다.
여신동
: 사람 몸이 다 뜯어지는 것 같은 효과를 내려고 한다. 말로 들으면 무서울 것 같지만 음악과 함께 아름답게 그려질 거다. (웃음)

무대디자이너가 연출을 하는 경우는 생소한 편인데, <사보이 사우나>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여신동
: 어릴 때 독립적인 작가를 꿈꾸며 미술을 시작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정물을 그리며 서양화를 했고, 예고에 가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무대미술과에서도 내 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졸업하면 존중받는 아티스트가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그만두려는 생각도 많았고, 내 인생에서 무대디자인은 과정이고 언젠간 내 작업을 할 거야! 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아트랩을 알게 되면서 슬며시 물어봤다. 저도 해도 돼요? (웃음) 솔직히 처음에는 그냥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원래 저지르고 수습하는 편이라서.

뭘 그렇게 저지르고 살았나.
여신동
: 처음에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남고였는데 갑자기 커진 남자들이 너무 많다는 게 충격이었다. 적응이 너무 힘들어서 부모님 몰래 자퇴서를 냈다. 예고 졸업 후 성적에 맞춰서 간 공예디자인과도 1학기를 다 못 채우고 자퇴했고, 보통 일을 제일 열심히 하는 서른한 살에는 1년간 뉴욕에서 놀았다.

서양화와 디자인 얘기를 했는데, 미술이라는 큰 바운더리는 같지만 둘은 서로 다른 영역이지 않나. 회화에서 디자인으로 방향을 바꾸게 한 계기가 있었나.
여신동
: 당시 <느낌>이라는 드라마가 인기였는데, 손지창과 류시원이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나왔다. 그렇게 되고 싶어서 서양화를 포기하고 디자인을 선택했다. (웃음) 하지만 예고는 입시를 위한 곳이기도 하고, 디자인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정확한 데다 패턴도 있어야 해서 3년 내내 야단도 많이 맞았다. 입시에는 꼭 이 색이 들어가야 하는데 난 섞어서 쓰고, 스케치도 이상했으니까.

독립적인 작가라는 가치관과 현실이 부딪힌 순간이었겠다.
여신동
: 예고 졸업하고 공예디자인과 자퇴하고 군대 제대할 때까지만 해도 TV에 나오는 멋있는 디자이너가 돼서 그냥 일하며 살려고 했다. 그러다 고3 때 한예종 입시를 봤던 걸 떠올렸다. 친구 하나가 나한테는 왠지 여기가 맞을 것 같다고 한예종 연극원을 소개해줬는데, 학교에 갔다가 무대미술과 복도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고 무대미술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느꼈다. 의상도, 미니어처도 모두 그림이 아니고 다 튀어나와 있는데 그게 더 회화 같더라.

학교에서는 주로 어떤 작업을 많이 했나.
여신동
: 학교 커리큘럼 자체가 에고로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하고 싶은 것도 표현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특히 무대미술은 한계가 많아서인지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미용실 프로젝트라는 걸 한 적이 있는데, 공간을 미용실처럼 꾸며놓고 내가 미용사가 되어 학교에 붙은 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을 손님으로 받은 적이 있다. 졸업전시도 클럽 화장실을 공간설치처럼 했고.

다시 원래의 꿈으로 돌아간 셈인데 뉴욕에는 왜 갔나.
여신동
: 졸업은 했는데 일이 막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작업을 할 수도 없었다. 술 먹고 유령처럼 홍대를 누볐다. 그러다 그냥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떠났다. 뉴욕이나 파리를 가고 싶었는데 뉴욕을 선택한 건 환율 때문이었다. 유로가 갑자기 확 올랐거든. (웃음) 아무런 정보도 목적도 없이 간 데다 그때까지 모은 돈을 노는 데만 다 썼다. 그동안 살면서 그렇게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해가 뜨고 지는 걸 온몸으로 느낀 그 시간들은 힘들었지만 굉장히 좋았다.

근 15년 정도 제법 많은 방황을 한 셈인데,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인가 보다.
여신동
: 내 인생은 늘 그랬다. 경험상 내가 원하는 것들은 늘 정확했기 때문에, 아니다 싶을 때는 미련을 갖지 않는다. 일이든 연애든 내가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했을 때 그 순간 자신감도 생기고 내가 더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깊이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업을 할 때도 뭔가를 딱 정해놓고 하지를 못한다. 작가라는 건 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시점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보이 사우나>도 마찬가지다. 이번 공연이 1월 아트랩에 비해 좀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완벽하진 않을 수도 있다. 작업자에게는 그냥 내 상태를 보여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 아마도 이건 내가 순수미술을 해서일 수도 있다. 회화는 전시장에 그림이 걸릴 때보다 작업할 때 더 많은 걸 얻으니까. 그 과정과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보냈는지가 더 중요하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 않나.
여신동
: 나도 20대 중반까지는 바보 같은 애였다. (웃음) 아마 한예종에 들어가면서 바뀐 것 같다. 예술가를 굉장히 크게 보는 편이었고 한예종은 그런 사람들이 다니는 학교였으니까, 거길 들어가서는 그때의 나처럼 거짓되게 살면 안 될 것 같았다. 사라지지 않는 진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더니 훨씬 편해졌다. 공연을 하다 보면 같이 일하기 때문에 MT를 가거나 족구를 하거나 술을 마시면서 급격히 유대감을 쌓는다. 그런 어색한 만남을 좋아하지 않을 때는 거기서 뭔가를 찾으려 한다. 물론 질서를 만드는 것이지만 그런 게 없을 때도 자기만의 질서를 만들면서 잘 살았다. 사람들이 자기 본연의 모습에 대해 부자연스럽게 산다는 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거다. 그럴수록 더 망나니처럼 살 것 같지만 오히려 나를 알면 알수록 나에게로 침잠하는 것들이 생기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서도 더 유연해졌다.

자기 자신에게 굉장히 집중하는 스타일인데 어떻게 접점을 찾아 나갔나.
여신동
: 무대디자인은 돈이나 공연에서의 기능적인 역할로 참여하는 거지 내 것을 하는 곳이 아니라는 걸 여러 작업을 통해 깨달았다. 그걸 인정하고 나서부터는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내 스타일로 손 도면을 그렸다면 이제는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기 쉽게 캐드 도면으로 바꾸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연출을 많이 관찰해서 그 사람과 닮은 무대를 만들려고 한다. 어차피 내가 해야 되는 건 그런 거니까.

그런 점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하는 <사보이 사우나>의 작업이 흥분되었겠다. 어느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었나.
여신동
: 공연은 협업이고 그 중심은 연출가다. 그런데 간혹 각기 다른 모양의 사람을 억지로 자기처럼 만들어놓는 이들이 있다. 그걸 보면서 저런 게 과연 협업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했을 때 작업에 진지함이 더 생긴다. 디자이너로서 배우를 만난 적은 있지만 연출로서는 없었기 때문에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알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배우를 찾았다. 아트랩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작품을 알고 배우가 참여하는 것보다 배우 스스로가 자신을 알고 작품에 들어와야 훨씬 편해진다는 것이었다. 배우도 아티스트로 존중하는 거다.

존중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여신동
: 무대디자인을 할 때도 치켜세운다기보다는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선택을 믿어주고, 그것을 한번 사용해보는 사람들과 작업할 때 작품이 잘 나왔다. 그게 신뢰라고 생각한다. 오늘 (김)정훈 씨 몸을 떴는데, 내 앞에서 옷을 다 벗고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노출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작업들을 통해 배우라는 직업에 확신을 더 가질 수 있고, 확신이 생긴 후에는 무엇을 해도 자유로울 수 있다. 배우들이 스스로를 믿는 순간을 찾을 때 나도 기분이 좋고 앞으로의 작업들도 그렇게 이루어질 거다.

음악감독으로 정재일을 선택했는데, 그와는 어떻게 작업을 하게 되었나.
여신동
: 솔직히 난 이 사람이 과거에 어떤 작업을 했는지 잘 몰랐다. 작년에 맨날 같은 노래 듣기 싫어서 (웃음) 추천받은 게 정재일이었는데, 영상을 보니 본 적이 없는데 너무 낯이 익다고 해야 되나 왠지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일 씨 음악에서는 나이에 비해 많은 스토리가 느껴졌다. 굉장히 큰 공간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는 잠재되어 있고 다듬어지지 않으면서도 폭발하는 것들이 많았다. 이 사람이라면 내가 느끼는 걸 이해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작품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사보이 사우나는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나.
여신동
: <피부자아>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논리는 우리의 자아가 글을 읽고 뭔가를 하면서 형성되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피부를 통해 생긴다는 거다. 먹고, 만지고 하면서. 그 관점에 공감이 많이 돼서 내 피부를 열게 해준 순간을 떠올려봤다. 여탕을 다니다 처음으로 남탕을 갔던 때, 아버지가 날 안았던 날들이 생각났고 거기가 대구의 사보이 사우나였다. 공간에는 시간과 이야기가 다 들어가 있다. 그래서 사우나라는 공간에 대한 재해석이 아니라 그 순간 내가 느꼈던 또 다른 느낌들을 표현하는 거다. 무대디자인을 통해 공간을 베이스로 쌓아왔으니 그게 내 형식에도 맞고.

아트랩 때 본 <사보이 사우나>는 다양한 감각에 집중한 공연이었다. 대중에게는 매우 낯선 시도였는데, 시각 외의 감각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신동
: 낯설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고 내가 늘 하고 싶어 하는 거다. 사람들은 판단을 할 때 보통 눈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시각적 자극은 간접체험이지만, 뇌에서 연상작용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끄집어내는 순간 직접경험이 된다. 앞에서 이상한 짓들을 하는데 얼굴이 붉어진다거나 닭살이 돋는다거나 하는 감각을 느끼길 바란다. 스토리는 없지만 집에 가서 자꾸 빨간 등이 생각나고 누드모델의 몸이 생각나고… 그렇게 이미지로 각인되는 공연이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금기가 주요 화두인 것 같다. 19금 공연이기도 하고.
여신동
: 사람은 누구나 다 숨기면서 산다. 그걸 모두가 오픈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은밀함이 존재하고, 은밀해서 감각이 더 열리기 때문에 은밀함 자체가 매력적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남들도 경험했는데 말하지 못한 게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얘기를 해야 내가 좀 살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희들도 그렇잖아~ 같은 느낌으로 풀었다. (웃음)

이번 실험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좀 찾았나.
여신동
: 난해하다는 건 좋게 말하면 추상적이거나 특이하다는 건데, 관객이 말하는 난해함은 어떠한 것도 느끼지 못하고 갔을 때를 얘기하는 것 같다. 난해한 작업은 안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뚜렷한 메시지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디자인 작업을 할 때도 내가 못하는 건 안 한다는 기준이 있는데 이번 실험을 통해 그것에 대한 확신을 더 얻었다. 난 안무도 극작도 잘 모르는데 그걸 하려고 해서 아트랩이 힘들었다. 이번에 내가 부족한 부분을 다 없애버렸더니 오히려 나만의 방식이 생긴 것 같다.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혹시 다음 작품으로 구상해놓은 게 있나.
여신동
: 군대. (웃음) <사보이 사우나>를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가 생각났는데 군대, 예배당, UFO 같은 거였다.

사우나, 군대, 예배당은 현실이 기반이지만 UFO는 정말 상상에 기대야 하는 부분 아닌가.
여신동
: 난 만나본 적 있는데? (웃음) 누구나 다 경험할 수 있다. 으흐흐흐흐. 경험할 수 있는데 어떤 이성이라는 게 붙들고 있어서 그렇다. UFO 얘기는 총체적인 거라서 그 작업은 내가 더 철들고 뭔가 능숙할 때 해야 할 것 같다. 지금 하면 더 난해한 작업이 될 거다.

결국 자신을 표현하는 일을 평생 하게 될 텐데,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뭔가.
여신동
: 사람으로 태어난 만큼 사람답게 살고 싶다. 작업을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이 일은 어차피 죽을 때까지 해야 된다. 그냥 사람스럽게 사는 게 더 어렵다. 평범한 생활일 수도 있는데, 요즘 집에서 밥을 잘 못 해먹는다. 시장도 못 가고 산책도 못 하고. 하아. 그런 걸 늘 그리워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느껴볼 수 있는 건 모두 다 느껴보고 싶다. 근데 모든 감정을 다 느끼면서 살 수 있을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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