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전쟁활동>,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들

2013.10.31

<방과 후 전쟁활동>│작가: 하일권│매주 일요일 네이버 연재

불가항력. 웹툰 <방과 후 전쟁활동>에서 성동고 3학년 2반 아이들에게 닥친 모든 일들을 정리하자면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대입 수능 시험을 132일 앞둔 그들은 평소와 별 차이 없는 하루를 보내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파란색 구체를 보게 된다. 외계에서 내려온 이들 미확인 구체는 폭발하거나 촉수로 사람을 공격하며 전 세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그 위험 때문에 잠시 학교를 떠나 있던 아이들은 구체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예비군 대대로 편제한다. 구체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르며, 공부를 하던 아이들이 왜 총을 쥐고 전쟁터로 나가야 하는지 어른들은 특별한 당위를 설명해주지 않고 통보만 할 뿐이다.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거라는 무책임한 위로만을 반복하며.

흥미로운 건, 철저히 SF 판타지적인 설정에서 출발하는 이 불가항력이 고3의 현실적 상황과 연결되며 완성된다는 것이다. 예비군 입대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담임선생님은 예비군 1년을 채우면 다음 해 수능 가산점을 주니 안 하는 게 바보라고 말한다. 여기서 아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가산점으로 대학에 가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희망이 아니다. 다른 모두가 가산점을 챙길 때 나 혼자 뒤처지면 어떡하나 싶은 두려움 때문에 거의 모든 아이들은 예비군을 선택한다. 갑자기 들이닥쳐 ‘방과 후 전쟁활동’을 하게 만든 외계 생물이 현실 속 아이들이 감내해야 할 전쟁 같은 입시에 대한 알레고리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저기서(하늘에서) 평생 우리를 감시하는” 것 같은 대형 구체처럼, 입시를 비롯한 모든 훈육 시스템 역시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바라본다.


외계 생물의 촉수 공격으로 목과 팔이 잘려나가거나 온몸에 구멍이 뚫리는 장면들 때문에 하일권 작품 최초로 19금이 되었다는 외형적 배경을 차치하더라도, 이 작품에서 잔혹한 정서를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다. 군인이 된 아이들은 친구들이 죽거나 다치는 걸 목격하고, 정규군의 보호 없이 집결지까지 강행군을 한다. 일반적인 소년만화의 장애물이 주인공의 신념과 성장을 위해 극복하거나 꺾어야 할 존재라면, <방과 후 전쟁활동>에서 아이들이 겪는 모든 일들은 그저 불가해한 잔혹극일 뿐이다. 역시 영문도 모른 채 불가해한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신지가 그나마 눈앞의 사도를 쓰러뜨리는 명백한 승리로 잠시 세계의 멸망을 유예시켰다면, <방과 후 전쟁활동>의 아이들 역시 눈앞의 외계 생물과 싸우면서도 실제로 전선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안전하다던 약속은 공수표가 됐고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약속은 기약이 없다. 끝을 알 수 없는 싸움 속에서 희망은 말라붙는다.

하일권 작가의 전작에서 고등학교는 왕따(<삼단합체 김창남>)나 추녀(<삼봉이발소>), 가난한 집 아이(<안나라수마나라>)처럼 또래 집단에서 소외된 학생들이 편견과 싸워나가며 아직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방과 후 전쟁활동>에서 선택이란 시스템에 대한 자발적 복종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위기 상황 속에서 의외의 리더십을 드러내는 장수나 영신, 민폐만 끼치다가 친구 보라의 목숨을 구해내는 애설처럼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친구를 구하려다 팔이 잘려 죽은 수철처럼 그 성장의 끝이 행복한 미래로 이어지리라고 이 작품은 말해주지 않는다. 이토록 우울한 풍경이 가리키는 방향의 끝에는 어떤 전망이 기다리고 있을까. 알 수 없지만 쉽게 무책임한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 정직함이야말로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미덕이지 않을까. 조금만 견디면 이 전쟁은 끝날 거라고 끊임없이 행복을 유예하는 이 세상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방과 후에도, 졸업 후에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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