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박용택의 슬픈 가을

2013.10.21

박용택은 가을이 좋았다. 2002년 신인으로서 맞이한 KIA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0타수 7안타, .350의 맹타를 몰아쳤다. 특히 최종 5차전에서는 홈런 2방을 때려내며 LG 트윈스(이하 LG)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박용택은 LG가 좋았다. 신인 때 느낀 가을 냄새를 11년간 못 맡을 줄은 몰랐지만, 세련되고 화려한 이 팀이 좋았다. 골든글러브, 타격왕, 서울메트로 홍보대사까지… 가을야구는 못 했지만 많은 추억을 쌓았다. 그는 11년간 팀을 떠나지 않고 지킨 단 두 명의 선수 중 하나였다.

박용택은 두산이 좋았다. 4할1푼3리, 만나면 안타가 쏟아졌다. 넓은 잠실벌에서 만원 관중의 환호를 받으면 부쩍 더 힘이 났다. 유희관은 더 좋았다. 14타수 6안타, .429의 타율로 확실하게 한 수 가르쳐줬다. 2위 자리를 놓고 겨룬 10월 5일 외나무승부에서도 박용택은 4타수 2안타로 타도 두산에 앞장섰다. 박용택은 다시 만난 가을이 너무 좋았다. 3타수 1안타, 4타수 4안타, 5타수 2안타… 방망이가 용암처럼 달아올랐다. 선발 유희관도 자신 있었고, 두산도 입맛에 맞았다. 1승 2패에서 뒤집고 한국시리즈에 가는 것은 신인 시절 이미 완료해낸 미션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의 가을을 낯설어하는 동료들에게 투지를 불어넣고 싶었다. 그라운드 밖에서는 뜨거운 멘트로, 그라운드 안에서는 더 뜨거운 활약으로 가을의 잠실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벼랑 끝에 몰린 플레이오프 4차전. 박용택은 7회초 극적인 동점 2루타를 때려냈다. 그리고 운명의 8회말. 오재일의 큰 타구가 펜스를 맞힌 후 하필 중견수 박용택의 발에 맞고 굴절됐다. 잡으려고, 잡으려고 했지만 공이 마치 신기루처럼 박용택의 손에서 자꾸만 빠져나갔다. 그렇게 박용택의 가을은 끝이 났다. 11년 만에 입어본 유광점퍼의 유통기한은 정확히 4경기였다. 처음으로 박용택은 가을이 미워졌다. 감동의 눈물로 맞이한 가을을 너무 쉽게 떠나보내야만 했다. 돌아서는 덕아웃에서 박용택은 문득 깨달았다. 미운 건 가을이 아니라 가을의 매력에 빠져버린 자신이라는 것을. 그날따라 하늘이 유난히 맑고 높았다. 2013년 10월, 11년 동안 꾼 꿈과 어색하게 조우했던 박용택의 슬픈 가을이었다.

이민호
MBC 스포츠 PD. 주요 연출작 <야구夜!>, <야구 읽어주는 남자>. “소시민은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는 노모 히데오의 말은 한계투구수를 잊게 하는 인생의 에너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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