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 그녀>, 아프니까 사랑이다

2013.10.17

<수업시간 그녀>│작가: 박수봉│매주 금요일 네이버 연재

그냥 거기서 시간이 멈췄다면 어땠을까. <수업시간 그녀> 3회에선 수업시간 옆자리에 앉는 여학생(이하 ‘그녀’)를 짝사랑하던 주인공(이하 ‘그’)이 조별 과제를 핑계로 번호를 따려는 모습을, 이제는 전설이 된 MBC <지붕 뚫고 하이킥>의 카페베네 정지 ‘짤방’으로 표현한다. 만약 거기서 시간이 멈췄다면, 번호를 교환하지 않았다면, 만나고 대화하고 데이트하지 않았다면, 고백 따위 시도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그 모든 일은 벌어졌으며, 그 모든 행동이 모여 만든 결말을 향해 <수업시간 그녀>의 이야기는 흘러가고 있다. 아주 해피엔딩은 아닐 것 같은 방향으로.

‘당신들에게도 있었던 가슴 속까지 설레는 이야기’라는 소개 문구처럼, <수업시간 그녀>는 영화 <건축학개론>을 연상케 하는 풋풋하고 서툰 첫사랑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품이다. 컬러도 없이 간결한 선만으로 표현하는 그림체처럼, 작품에서 그려지는 ‘그’의 연애담 역시 커다란 굴곡이 없다. 그 흔한 뽀뽀도 없이 ‘그’가 ‘그녀’와 치른 이벤트는 영화 보고 식사한 게 다다. 대신 그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고 실행하며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그’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심어 넣는다. 첫 회에서 ‘그녀’를 보고 설레는 감정과 고백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으로 고뇌하는 모습으로만 한 회를 채우는 게 <수업시간 그녀>의 방식이다. 눈을 그리지 않고 제스처나 얼굴의 다른 부위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박수봉 작가 특유의 연출 속에서 ‘그녀’의 외모는 제대로 그려진 적이 없다. 대신 ‘그’를 설레게 한 목선이나 단아한 제스처를 ‘그’의 1인칭 시점으로 그려내며 예쁘다는 객관적 판단이 아니라, 설렘이라는 철저히 주관적인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독자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상성의 디테일은 역으로 이 소소한 삶이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어떻게 지옥이 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카드 한도 초과로 밥값도 내지 못하고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엉망이 됐던 첫 데이트의 기억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운이 나빴을 뿐이다. <수업시간 그녀>가 귀엽고 풋풋한 정서 속에서도 어떤 비극미를 드러낸다면, 등장인물들이 잘해보려 한 모든 행동이 서로 어긋나며 슬픈 결말을 향해 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조별 과제를 계기로 친해진 ‘그’의 성실한 모습에 대해 솔직히 칭찬을 해줬을 뿐이고, 착하고 순진한 ‘그’는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면서 같은 과 여자 동기(이하 ‘여’)에게 조언을 구했을 뿐이며, 평소 ‘그’의 자상함 때문에 설레던 ‘여’는 ‘그’의 달라진 행동들에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이 아닌 ‘그녀’에게 고백을 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여’는 “넌 잘못한 거 없”다면서도 ‘그’의 배려가 자신을 얼마나 설레게 하고 결과적으로 얼마나 실망하게 했는지 고백하고, ‘그’의 마음을 모르는 ‘그녀’는 새 남자친구와 함께 ‘그’와의 약속 장소로 나온다. 누구도 상처 주려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아프다. 커다란 배신도, 불치병도, 하다못해 그럴듯한 이별도 없지만, 아픈 건 아픈 거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본다. 거기서 시간이 멈췄더라면, ‘그’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부질없는 가정이다. 작품 속에서 인용되는 오르페우스 신화처럼 사랑이 종종 비극의 주제가 되는 건, 감정의 강렬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 끝이 파국이 될 줄 알면서도 계속해서 그 방향을 향해 걸어가기 때문에 이 감정이 위험한 것이다. 작품 초중반까지 마냥 귀엽고 유쾌한 분위기로 그려진 <수업시간 그녀> 안에서도 괜히 ‘그’에게 시비를 걸고 미안해하는 ‘여’의 모습과,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그녀’의 태도, 결국 ‘그녀’의 남자친구가 된 잘생긴 아르바이트생의 등장 등, 아주 조금씩 독자를 불안하게 하는 복선들이 크게 티 나지 않게 배치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감정에 이입해 불안 요소를 애써 무시하며 잘되길 기대한 바로 그 경험이야말로, <수업시간 그녀>가 우리에게 환기시킨 상큼하면서도 씁쓸한 유일무이한 감정의 정체가 아닐까. 우리가 여전히 첫사랑이라 부르며 얼굴을 붉히고야 마는.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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