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게임>, 손가락으로 난도질하는 세상

2013.09.12

<악플게임>│작가: 미티│매주 일요일 네이버 연재

<악플게임>의 장르는 고어물이다. 대한민국 최악의 악플러를 뽑기 위한 2013 악플게임 프로리그(이하 악플게임)에 참가한 선수들은 각 미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끊임없이 누군가를 난도질한다. 예선전에서는 악플게임 참가 특혜 의혹을 받은 가수 민유린과 자살한 연예인 故 수늘품이, 32강전에서는 아이돌 그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가 극성팬에게 몰매를 맞은 10대 탤런트 남아연 등이 악플의 공격 대상이 된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냈다가 연예계에서 거의 추방당한 배우 소극장을 공격하며 주인공 한방만은 팀원들에게 말한다. “가서 뜯어먹어 봅시다.” 피가 튀기는 건 아니지만 유명인들이 변변한 반론도 펴지 못하고 인격과 마음을 난도질당하는 모습은 주인공들이 전기톱으로 사지절단을 당하는 고어 영화의 그것과 흡사하다.

작품 서두에 적힌 대로 ‘악성 댓글의 심각성’을 재현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악플게임>은 일차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악플게임 연출자의 말대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인터넷 전쟁의 모든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한 수준까지는 아니라 해도, ‘고인 모독’이나 ‘주홍글씨’ 같은 주제어를 정하고 그에 맞는 유명인을 ‘마녀’로 앉혀 한쪽에서는 악플로 공격을, 한쪽에선 방어를 하는 게임 규칙은 인터넷에서의 마녀사냥을 상당 부분 재현한다. 현실을 반영해 만든 게임이 고어적인 잔혹함을 만들어낼 때 <악플게임>은 픽션이기에 가능한 각성을 이끌어낸다. 단순히 악플은 나쁘다는 빤한 이야기가 아니다. 시청자 투표로 점수를 얻는 악플게임의 시스템 안에서 그럴싸한 떡밥과 궤변으로 무장해 점수를 얻는 악플은 여론몰이를 하며 ‘마녀’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중한다. 우승 후보인 나익명은 “진정한 악플러는 자신을 정의롭다고 생각”한다고까지 정의하지만, 이처럼 대의로 포장된 악플에 정의감으로 동조하거나 수군거리는 대중은 이 고어물의 가해자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각성은 결과적인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한방만이 故 수늘품에게 버림받은 여자친구를 사칭해 고인에 대한 악플을 쏟아내자 언론은 클릭 수를 위해 팩트 확인 없이 이것을 보도하고 수많은 네티즌들은 한방만에게 점수를 주는 것으로 동조한다. 게임의 형식을 빌려 거짓말과 가십에 취약한 인터넷 여론의 메커니즘을 간결하게 그려내는 건 이 작품의 성과이자 미덕이지만, 동시에 이 메커니즘을 움직이는 대중의 군중심리에 대한 강한 불신은 여론의 자정 작용에 대한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듯 보인다. 해와 바람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하는 우화에 대해 나익명은 결국 해와 바람 둘 다 나그네에게 장난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근거 없는 악플이건 그에 대한 반박이건 군중심리에 휩싸여 사분오열되어 들끓는 인터넷 여론은 결국 당사자를 피로하게 하는 결과적 악으로 보는 것이 <악플게임>의 관점이다. 이 작품이 이상으로 삼는 건 건강한 공론장보다는 침묵에 가깝다.


종종 작가의 말을 대신 해주는 듯한 나익명이 실종된 구낙준 기자와 동일 인물일 거라는 암시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故 수늘품이 살아 있을 때 그의 치부를 집요하게 보도하던 구낙준은 수늘품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커지자 “이건 사실이 아니”라고 혼잣말을 하고 괴로워한다. 나익명 역시 인턴 기자로서 악플게임에 참가한 신문희에게 사실만을 말하라고 충고한다. 다시 말해 <악플게임>의 세계에선 악플과 옳은 의견이 대립하는 게 아니라 사실과 의견이 대립한다. 사실이 언론을 통해 명확하게 밝혀지기 전까지 대중이 할 수 있는 건, 아니 해야 하는 건 침묵과 기다림밖에 없다. 분명 극단적인 처방이지만, 악플게임으로 유명해졌다는 이유로 도리어 악플러의 표적이 되어 자살한 중학생 조만휘를 통해 이 처방전은 당위성을 얻는다.

앞서 <악플게임>이 고어물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현실의 어떤 부분을 확대했을 때 실제로 잔혹극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악플에 사람이 죽고 사는 한국의 현실에서 <악플게임>의 과격한 논리에 대해 과격하다고 비판하는 건 안일하다. 중요한 건 현실의 어떤 병든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간 작품이 그 탐구와 재현의 끝에서 이런 극단적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동의할 수 없지만 또한 쉽게 무시할 수도 없다. 그래서 <악플게임>에 대한 평가는 최종적으로 해석이 아닌 실천의 차원으로 넘어간다. 과연 우리는 군중심리에 매몰되지 않고 합리적 논쟁을 통해 결과적 선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누구도 억울함을 호소하며 죽지 않을 수 있는 건강한 공론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실천이야말로 <악플게임>이라는 작품이 틀렸다고 주장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악플이 될 것이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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