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① 이 죽일 놈의 LG 트윈스

2013.08.20

LG는 사랑입니다
① 이 죽일 놈의 LG 트윈스
② 김성근 감독부터 ‘LG는 사랑입니다’까지, 이것이 LG다
③ [웹툰] LG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
④ 땀과 눈물로 부르는 승리의 노래

과연 올해 LG 트윈스(이하 LG)의 팬들은 유광 점퍼를 입고 응원할 수 있을까. 물론 어느 팀에게나 가을 야구 성사 여부는 가장 중요한 이슈다. 하지만 LG라면 좀 다르다. 2002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 가을 야구를 하지 못한 햇수 때문만은 아니다. FA부터 선수 트레이드까지, 성적을 높이기 위한 모든 시도는 무위로 돌아가는 걸 넘어 결과적 재앙으로 돌아오기 일쑤였고, 올해는 다르리라는 희망을 줬다가 도로 빼앗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 어느 해보다 가을 야구 성사의 가능성이 높은 이번 시즌, LG 팬들이 환희와 여전한 불안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양가적인 감정의 공존이라기보다는 행복해서 불안한 역설에 가깝다. 올해가 LG에게 영광과 설욕의 해가 되느냐 마느냐보다 지금 이 순간을 보내고 있는 LG 팬 자체에 대해 <아이즈>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래서다.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응원하는 이 독특한 팬덤 문화는 과연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어떤 가을을 보내던, 겨울을 넘어 봄이 왔을 때 여전히 LG를 응원할 그들에 대한 이야기.



솔직히 말해보자. 올해 3월, 프로야구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하일성 해설위원이 홀로 LG 트윈스(이하 LG)의 포스트 시즌 진출을 점쳤을 때 정말 감이 많이 떨어졌다고 비웃지 않았었는지. 당시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LG는 절대적 약체로 평가받던 NC 다이노스(이하 NC)와 한화 이글스(이하 한화)를 제외하면 4강 진출이 가장 희박한 팀으로 꼽혔다. 물론 시즌 예상이란 주가 예측처럼 수많은 변수에 노출된 것이어서 당시 모두들 우승 후보로 손꼽았던 기아 타이거즈는 우승은커녕 포스트 시즌 진출도 가물가물한 7위까지 떨어졌다. 요컨대 분석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생각만큼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올해의 LG는 다를 거’라는, 소위 ‘엘레발’이라는 희망가는 언젠가부터 논거나 팩트와는 별개로 팬덤 내부에선 자조 섞인 복음이, 타 팀 팬들에겐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시즌 전반기를 2위로 마감하고 현재 절대 강자 삼성의 자리를 넘보는 LG의 질주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엔 그래서 일종의 당혹감이 묻어나온다. 올해는 다를 거라고 외치면서도 과연 올해는 다를까 싶은 이중적 감정을 지닌 팬덤이 실제로 달라진 우리 팀을 만났을 때의 놀라움. 이것은 LG 팬들에게서 도드라지는 경향이지만, 또한 스포츠 팬덤의 음과 양을 극단적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감정이기도 하다.
 
성적이 안 좋은 우리 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원하는 건 LG 팬만의 딜레마는 아니다. LG는 최근 7년간 ‘8587667’이란 순위를 기록했지만, LG와 함께 가장 높은 관중 동원력을 자랑하는 롯데 자이언츠(이하 롯데)의 팬들 역시 ‘8888577’ 순위를 찍던 시절에도 롯데를 응원했다. 2009년부터 한 시즌을 제외하면 매년 꼴찌를 기록한 한화는 이번 시즌에도 3할을 오가는 승률로 신생팀 NC에게조차 뒤처지고 있다. 하지만 LG 팬이 감내해야 했던 건 단순히 마음에 안 드는 성적표가 아니라 팀 자체다. 류현진과 김태균, 박찬호가 있었던 한화는 그들이 있었음에도 8위를 한 게 아니라 그들만 있어서 8위를 했다. 롯데 팬들은 롯데 구단과 종종 대립각을 세웠지만 그건 자신이 사랑하는 팀을 구단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에 반해 LG 팬들은 잘해보려는 모든 시도가 LG라는 이름만 만나면 비극으로 끝나는 과정을 10년 동안 지켜봐야 했다. 한 시즌 30홈런을 기록하던 홍현우는 FA 자격으로 LG에 오자 2개 홈런에 그쳤고, 단기 전력 강화를 위해 데려온 김성현은 승부 조작 혐의로 선수 자격을 잃었으며, 내보낸 박병호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홈런왕이 됐다. 2002년 팀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끈 명장 김성근 감독을 자른 뒤 벌어진 이 일련의 사건은 ‘김성근의 저주’라고도 불리지만, 정말 LG 팬들은 초현실적일 정도로 안 풀리는 팀을 바라보며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모든 야구팬들에게 자기 팀이 종교라면, LG 팬들에게 있어 트윈스는 종교이자 원죄다.
 

언젠가 화제가 됐던 트위터 멘션에서 LG 팬이 신의로 똘똘 뭉친 사람이니 소개팅에서 꼭 잡으라고 했던 건, 그 10년의 기다림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확히 말해 그것은 의리보다는 근본적으로 ‘호구’일 수밖에 없는 팬의 굴레에 가깝다. 철저히 지역에 기반을 둔 자이언츠의 부산 팬들이라면 이번 시즌 성적이 잘 안 나와도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부산 갈매기’를 부르는 것으로 훌훌 털고서 다시 내일이 없을 것처럼 응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1994년 우승을 기점으로 신바람 야구에 매료되어 지금과 같은 규모로 커진 LG 팬덤은, 신바람이 불지 않던 지난 10년을 말 그대로 팬이라는 이유만으로 견뎌내야 했다. 역시 자기 팀의 ‘호구’라는 입장에서는 동일한 다른 야구팬들조차 유독 LG 팬들을 놀리고 무시했다. 이번 시즌 임찬규가 인터뷰 중인 정인영 아나운서에게 물을 뿌렸다가 팬과 대중에게 호된 질책을 당했을 때, KBS N 제작팀장은 SNS를 통해 ‘승리해야만 할 수 있는 인터뷰기에 더욱 볼 기회가 적었던 LG 팬들껜 죄송하지만, 그나마도 KBS N에서는 더 이상 경기 후 LG 선수 인터뷰를 볼 수 없을 것’이라며 굳이 LG 팬에게 불필요한 모욕을 안겨줬다. 잠실 경기장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관중 동원력을 자랑하지만 정작 해당 산업 종사자에게 무시당하는 팬덤. 적어도 지난 몇 년간 LG 팬으로 산다는 건 상당히 서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LG 팬들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채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SNS의 확산과 함께 발달한 자학적 팬덤 문화가 LG 팬을 중심으로 형성된 건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하루가 끝나고 누가 누가 더 속 터지는 경기를 했는지 겨루는 듯한 SNS 담론 속에서도 LG 팬은 독보적이다. 그날 경기의 실책부터 그동안 실패했던 구단 프론트의 모든 정책, 심지어 타 팀에 비해 잘생긴 선수들의 얼굴까지도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 모든 비난은 최종적으로 ‘그럼에도 팀을 갈아탈 수 없는’ 자신들에게 향하며 결국 우리는 안 될 거라는 자조로 끝난다. 그들은 올해는 다를 거란 기대를 품는 동시에 그 기대가 무너지는 시나리오 역시 가슴에 품고 응원한다. 잔인하지만, 상처를 적게 받으면서 사랑하는 법은 그뿐이다.

현재 LG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선전보다 그 선전이 LG 팬에게 어떤 방식의 보상이 될지 궁금한 건 그래서다. 그들이 포스트 시즌 진출이 거의 확정적인 성적표 앞에서도 여전히 연패 시나리오를 가슴에 품고 조심스레 환호하는 건 단순한 엄살이 아니다. 도저히 쿨해질 수 없는 팬의 입장에서 10년 동안 상처받으며 터득한 나름의 지혜다. 그 잃어버린 10년을 가을 야구로 보상받는다면 LG의 팬 문화도 변화할 것인가. 과연 그들은 상처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내년에는 우승을 향해 달리자고 외칠 수 있을까. 1년 만에 다시 포스트 시즌이 좌절돼도 10년까진 기다려줄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대상을 마음껏 좋아하는 자유야말로 모두가 누려야 하는 권리일 테니까. 그깟 공놀이에서조차 이 당연한 권리가 종종 잊히긴 하지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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