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퍼>, 갈 데까지 가보자

2013.08.15

<헬퍼>│작가: 삭│매주 수요일 네이버 연재

살아서는 영웅, 죽어서는 신화. 만화 <헬퍼>의 주인공 장광남의 삶을 정리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전국에서 가장 거친 도시 가나시에서 가장 거친 녀석들을 모아 자율 방범단 킬베로스를 만든 그는, 조직원들의 우상이자 킬베로스의 보호를 받는 일반인들에게도 사랑받는 인물이었다. 힘보다는 신뢰로서 조직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며 “살아 있을 때는 신앙이더니, 죽어서는 아주 신화가 되어버”린(킬베로스 후임 대장 득춘)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죽은 장광남은 저승에서 이제 갓 영혼이 된 “초령 찌끄레기”(저승사자 주사)일 뿐이다. 장광남이 저승에 가며 시작되는 <헬퍼>는 이러한 균열 위에서 이승과 저승, 양쪽에서 장광남을 중심으로 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사실 저승에서의 이야기만 본다면 <헬퍼>는 전형적인 소년 만화에 가깝다. 령에게 발급되는 티켓을 많이 모을수록 힘이 강해진다는 설정 안에서 장광남은 티켓 한 장인 상태에서 의지와 자신감만으로 저승사자 중에서도 최고 실력자 중 하나인 주사를 이긴다. 비록 천년명주를 마셔 그의 힘이 강해지고, 주사가 술 때문에 힘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어드밴티지를 주긴 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장광남의 실제 능력치가 아니다. 상상력의 힘을 강조하는 그는, 티켓의 힘 혹은 령의 계급에 따라 힘의 서열이 나뉘는 저승의 룰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다. 그래서 저승사자 중 실력자로 꼽히는 열풍의 파주주도 “매드 크레이지(장광남) 마음에는 ‘선’이라는 게 없”다는 말로 장광남의 예측할 수 없는 힘을 인정한다. 신념 하나로 부조리한 룰을 돌파하는 그에게서는 수많은 소년 만화 주인공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하지만 <헬퍼>가 이승으로 시선을 돌릴 때마다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장광남은 킬베로스라는 조직을 통해 자신이 믿던 가치를 관철했지만, 정작 그가 죽자 신념은 휘발되고 오직 장광남이라는 이름만 박제된 신화가 되어 영향력을 발휘한다. 새로이 대장이 된 득춘은 “장광남이라는 신을 업고 가는 사제”가 되어 조직을 ‘폭력을 누르는 더 큰 폭력’으로 이끌려 한다. 그의 이름 아래서 ‘장광남 워너비’인 킬베로스 간부들은 친구들과 싸우지 말라는 장광남의 강령을 어기고 부대장 자리를 건 엠블럼 배틀에 참여한다. 주인공이 아무 기반도 없는 곳에서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동안 정작 그를 숭배하는 이들은 그의 신념을 배신하는 이 기묘한 역전은 단순히 서로 다른 방향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장광남의 정체성이 사실은 지진으로 무너진 만화방 안에서 온갖 만화책을 읽으며 만들어진 것이라는 게 밝혀졌을 때, 그의 소년 만화 주인공 같은 태도는 정말로 만화가 된다. 즉 <헬퍼>는 이건 만화라고,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환상(illusion)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 불안감이야말로 다분히 순수하고 영웅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헬퍼>를 전형적인 영웅 서사와 분리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이승에서 “장광남이라는 거대한 만화책”이 완결되며 <헬퍼>라는 만화가 시작된 건, 그래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장광남이 죽은 순간부터 그 죽음에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고, 저승에서 그에게 힘을 보태주는 슈빌 워핸드와 어떤 연관이 있다고 작품 속에서 계속 암시를 주지만, 장광남은 수수께끼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앞을 향해 직진할 뿐이다. 여기서 미스터리는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언젠가 만날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에 대한 암시 역할을 할 뿐이다. 때문에 스피디한 액션 묘사로 <헬퍼>의 활극이 불을 뿜으면 뿜을수록 어두운 진실 역시 가까워진다. 만화 특유의 전형적인 장르적 쾌감 속에서도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비전형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그 끝에서 장광남의 낙관주의가, 또한 만화에 기대하는 우리의 낙관주의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끝까지 함께 달려보고 싶은 만화를 만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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