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 가차 없는 자극성의 미덕

2013.08.08

<아귀>│작가: 디디│매주 화요일 미디어 다음 연재

<아귀>는 어느 날 하수구에 사는 입 큰 괴물에게 가족을 납치당한 주인공이 구출과 복수를 위해 전기톱과 몇 가지 연장을 들고 뛰어드는 이야기다. 어쩌다가 도시 괴담을 취재하는 방송팀도 함께 하수구에 휘말렸고, 수수께끼의 공작원도 있다. 스포일러랄 것도 없지만, 알고 보니 그 모든 것은 북한 출신 매드사이언티스트가 새로운 전투생명체를 만들기 위한 음모였다.

이 정도로만 요약해도, <아귀>에 공포물 B영화들이 애용해온 소재들이 얼마나 탄탄하게 집약되어 있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오늘날 ‘B급’라는 키워드는 대략 조악함을 과시하는 키치 취향 정도를 나타내는 유행어로 널리 알려졌지만, 원래는 미국 영화산업에서 B영화라고 통칭되던 저예산 대중영화들이 자주 담아내던 가차 없는 오락적 자극성을 지칭했다. 자극성을 굳이 예술로 포장하지 않다 보니 피칠갑의 노골성이 넘치는 공포, 개연성보다 순간의 박진감이 강조된 액션 같은 것에 최적화된 것은 당연지사다. 그리고 그 전통 위에 <아귀>가 있다. 도시의 지하 공간, 인간의 과오로 탄생한 괴물들, 저항하며 부딪히는 주인공들, 당연히 넘쳐나는 희생자들이 있다. 사회적 혼란상에 대한 고찰이나 전략과 협상 같은 곁가지로 빠지지 않고, 모든 이야기는 오로지 주인공들과 괴물들의 처절한 사투에 집중한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환경에서 장르적 오락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북한의 침투공작까지 배경에 깔려있다. 무의미한 신체노출의 성적 자극 정도만이 유일하게 빠졌다.



막노동꾼 출신인 주인공 광식은 이런 작품에서 가장 필요한 소질을 제대로 갖춘 캐릭터다. 무섭고 험악하게 생겨서가 아니고(이 작품은 특유의 그림체 덕분에 웬만하면 누구나 험악하게 생겼다), 단순히 덩치가 크고 생명력이 끈질겨서도 아니고, 괴물들을 잡기 위해 전기톱을 들고 가기 때문이다. 미지의 괴물들 앞에서 덜덜 떨기를 멈추고 가장 거친 종류의 무력을 거리낌 없이 행사하는 호쾌함이야말로 공포와 쾌감을 동시에 주는 미덕이다. 투박한 전기톱만큼 이런 접근을 뚜렷하게 체화하는 도구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어설픈 수준의 소품 동원이 아니라, 샘 레이미의 <이블데드> 주인공 애쉬 이래로 이렇게 찰지게 전기톱을 휘두르는 주인공이 있었나 싶다. 이렇게 중심을 깔끔하게 잡고 나니 냉철하고 강한 동업자, 적당히 나약하며 하나씩 희생되는 보조 인물들, 그렇게 거친 주인공마저도 힘겨워할 수밖에 없는 절대악스러운 적 등 다른 캐릭터들도 어설픈 전복의 시도 없이 각자 전형적인 자리를 찾는다. 이런 안정적 기반 위에서, 공포와 액션의 이야기가 한껏 내달린다. 미로와도 같은 어두운 하수구 속에서, 그로테스크하게 못생기고 사람에게 덤벼들어 잡아먹는 괴물들과 피비린내 진동하게 싸운다.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던 이들도 한순간에 죽어 없어진다.

<아귀>는 거친 선과 왜곡된 형상으로 이뤄진 흑백 그림, 사방팔방 튀는 피바다와 사지절단, 예상 가능한 큰 줄거리 안에서도 매 국면 스릴을 안겨주는 반전 등에서 보듯 모범적으로 잘 만들어진 공포 오락물이다. 여러 웹툰에서 구태의연한 배경음악 정도로 남용되곤 하는 청각 자극 역시, 적절한 공포연출로 활용한다. B영화가 애호하는 괴수물의 틀을 빌려서 사회와 인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봉준호의 <괴물>보다는, B영화에서 발달시킨 자극적 재미의 본질을 싸그리 긁어모아 멋진 오락물을 만들어내는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에 가깝다. 어설픈 사회성 훈계를 내밀고자 공포와 액션을 타협하는 작품들이 흔하고 흔한 대중문화판에서 이렇게 제대로 달려주는 작품은 무척 소중하다.

김낙호
만화를 계속 읽다가 어쩌다 보니, 제법 여러 가지를 진지하게 논했다.
별별 다양한 만화들이 지속되고, 다들 잘 골라 읽는 환경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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