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탑>, 흔들리지 않는 소년의 눈동자

2013.08.01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영웅 같았죠.” <신의 탑>의 주인공 밤이 거대한 괴물에게 맞서 탑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탑의 관리자인 헤돈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그랬다. 홀로 외롭게만 살던 밤은 자신을 외로움으로부터 구원해준 친구 라헬이 탑의 정상에 오르겠다며 떠나자 그를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헤돈이 낸 시험에 도전해 성공했다. A급 길잡이인 에반조차 “엄청난 용기와 각오,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했던 단 하나의 방법을 주저 없이 실행했던 모습은 영웅적인 동시에 낭만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탑에 오르기 위해 밤을 떠났던 라헬은 앞서 인용한 헤돈의 말을 들으며 괴물에 맞서지 못했던 자신의 평범함에 절망하고 밤을 질투해야 했다. 이 아이러니는 비극일까.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영웅이 나오는 동화 속 이야기는 아니란 것이다.

사실 수많은 등장인물이 탑 꼭대기를 향하고, 그러기 위해 서로 경쟁해야 한다는 기본 얼개만으로도 <신의 탑>은 낭만적인 판타지와는 거리가 멀다. 원하는 모든 것이 있다는 그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자하드의 공주인 엔도르시는 2층 술래잡기 시험에서 팀원들을 배신하고, 20층에서 럭커는 자신의 지시를 따르던 니아를 살해한다. 약육강식의 규칙을 바꾸고 싶어 하는 자왕난조차 스스로에 대해 “탑을 올라가기 위해서 누군가를 속이고 죽이고 사실 나도 녀석(럭커)과 별다를 바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 탑을 올라가는 시스템의 현실이다. 밤의 재능에 질투심을 느끼던 라헬이 탑에 오르기 위해 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장면은 라헬의 악마성 뿐 아니라 <신의 탑>이 그리는 경쟁의 서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잔혹한 설정은 역설적으로 <신의 탑>이 정통 소년만화의 계보에 다가서는 배경이 된다. 주인공 밤은 탑 정상에 오르지 못한 인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정상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 그는 탑 꼭대기에서 얻게 될지도 모를 유예된 행복에 자신을 걸기보다는, 지금 이곳에서 나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인물이다. 라헬을 시작으로, 첫 동료가 된 쿤과 라크레이셔 등을 거쳐 20층에서 만난 자왕난 일행까지 밤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친구들을 지키려 한다. 요컨대 그는 뺏고 빼앗기는 탑의 법칙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하지만 시험감독관 퀸트의 독백대로 ‘신이 선택한 건 경쟁자가 아닌 친구를 잃었다고 슬퍼하고 있는’ 밤이다. 탑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인 신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의 재능은 종종 초천재, 괴물, 최고의 재능이라 불린다.

밤의 힘이 비선별인원이라는 위치에서 비롯됐다는 설정은 그래서 흥미롭다. <신의 탑> 최고의 힘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는 펜타미넘, 엔류, 우렉 마지노 등은 모두 탑 바깥에서 들어온 비선별인원이다. 종종 <헌터×헌터>와 비교될 정도로 신수를 사용하는 방법과 그것을 통해 구현되는 능력에 대해 복잡한 설정을 만들어놓은 <신의 탑>의 세계에서 탑의 규칙에서 벗어난 비선별인원은 설정을 파괴하는 존재다. 이것은 능력치 밸런스의 파괴일 수도 있지만 또한 세계 자체에 대한 파괴이기도 하다. 펜타미넘이 왕실의 상위 랭커를 모두 살해하고, 우렉 마지노가 탑 내 기득권인 10가문에 대항하는 월하익송을 만든 건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물론 밤은 그만큼 적극적이진 않다. 대신 자신을 속인 시아시아가 별다른 사연 없이 오직 돈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걸 알고선 “나쁜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 말하는 이 순수한 소년의 마음 앞에서 시아시아도, 밤의 대척점에 있는 냉정한 전략가 쿤도, 안하무인 공주 엔도르시와 10가문 출신 엘리트 연도 자신들에게 부여됐던 의무에서 벗어나 조금씩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찾기 시작한다. 이 작지만 유의미한 균열을 만들어낸 것이야말로 어쩌면 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특별한 재능일지 모른다. “탑을 오르기 위하여 다른 소중한 것들을 버려”야 하는(2층 총 시험감독관 유한성) 복마전의 서사 안에서, 밤이 지켜내려 하는 우정, 신뢰, 헌신 같은 소년만화의 오래된 가치는 더욱 선명하게 반복되며 또한 긍정된다. 성공을 쫓는 경쟁 서사가 신념을 쫓는 모험의 서사로 바뀌는 이 변곡점을 통해 비로소 탑이라는 거대한 세계관은 현실의 알레고리가 아닌 매혹적인 판타지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요컨대 <신의 탑>은 메시지와 플롯 사이에 단단한 연결고리가 맺어진 잘 만든 소년만화다. 물론 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할 수많은 고난은 여전히 동화 속 영웅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뭐 어떤가. 때론 그 어떤 영웅적 행동보다, 흔들리지 않는 소년의 눈동자가 더 믿음직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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