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인 조선>, 퓨전사극의 정석

2013.07.25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사극들이 최근 상당히 유행한 바 있다. 확실히 이 소재는 소위 ‘어항 밖 물고기’에 비유되곤 하는 주인공이 전혀 다른 세상에 뚝 떨어져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좌충우돌 상황을 만들어내기 편리하다. 동시에 그 세계에서는 떠올리지 못하는 의외의 요소로 문제를 돌파하는 쾌감을 심어 넣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반드시 그렇게 이야기를 짜야만 할 것 같은 고정관념이 창작진에게 생기는지, 비슷비슷한 응용형만 차고 넘쳐서 웬만큼 훌륭하게 만들지 않으면 지겹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윤창 작가의 <타임 인 조선>은 대단히 재미있다. 현대의 평범한(즉 과학소년도, 국사소년도 아닌) 고등학생 주인공 장준재와 미래에서 온 더 평범한 백수 김철수가 시간여행 사고로 춘춘주막에 떨어지고, 그곳에는 강고한 무력의 주모와 딸 춘대례가 있다. <타임 인 조선>에는 준재와 철수가 춘춘주막에서 일꾼으로 눌러살며 겪는 나날들이 펼쳐지다가, 이 시대로 떨어진 또 다른 시간여행자와 접촉하고, 어쩌다 보니 하나씩 음모가 드러나 정조와 사도세자를 둘러싼 큰 이야기로 발전한다. 이 작품의 완성도를 지탱하는 두 요소는 고르게 지속되는 특유의 개그감각, 그리고 역사적 개연성과 탄탄한 복선으로 전개되는 큰 드라마다. 특히 이 두 가지는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개그 중심의 에피소드에서도 큰 드라마의 복선들이 깔리고, 큰 드라마로 확대되고 나서도 소소한 개그를 잃지 않는다.


 

개그 면에서 <타임 인 조선>은 ‘조선시대도 초딩 말투는 현대의 초딩 말투와 다를 바 없더라’ 같은 현대 사회의 모습과 ‘만렙나무’같이 매니악한 인터넷 유머문화의 필수요소를 패러디하는 기법이 기본적으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이러한 일회성 웃음이 아니라 무표정(deadpan) 개그가 독자를 이야기의 분위기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무덤덤하게 과소 반응하는 캐릭터는 대비 효과를 통해 그들이 처한 상황 자체의 괴상함을 증폭시킨다. 여기에 패러디가 있다고 시끄럽게 강조하는 노골적인 방식이 아닌, 당연하듯 그 세계의 일부로서 이야기 속에 지나가는 식이다. 이런 무표정 개그는 패러디의 요소가 아닌 캐릭터의 상호작용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여지는데, 묘한 엇박자의 개그가 섬세한 감정표현에 꽤 효과적이다. 특히 무표정 개그의 경우 전달 타이밍을 놓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구현의 난이도가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임 인 조선>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성공해내고 있다.

이런 개그감을 유지하면서도 왕실 모반을 둘러싼 진지한 큰 드라마가 펼쳐진다. 출생의 비밀, 선대의 억울한 누명과 복수, 칼부림 등 사극의 핵심요소들이 탄탄하게 펼쳐지며, 그 위에 다시금 시간여행 이야기가 한 겹 덧씌워진다. 시간여행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여러 시점의 사건들이 만들어낸 인과관계를 각종 복선으로 미리 깔아놓고, 적절한 타이밍에 하나씩 회수하며 독자들의 관심을 빨아들인다. 이 모든 과정에서 주인공은 현대인의 지식으로 초월적 수를 쓰는 것이 아니라(시간여행으로도, 정해진 역사를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세계관이다), 여러 일을 겪어나가는 만큼씩 성장해 나간다. 왕도에 가까운 사극 전개를 깔고, 치밀하게 조율된 시간여행 패러독스를 이질적 요소로서 합쳐 넣는다. 무표정 개그는 이종결합이 삐걱거리지 않도록 일관된 스타일로 전체를 아우른다.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바로 완성도 높은 퓨전 사극의 정석이다. 드라마, 영화, 소설 등 여러 매체양식을 통틀어서도, <타임 인 조선>은 근래 작품들 가운데 가장 탄탄한 재미를 보장해주는 퓨전사극이다. 아니, 왜 퓨전사극이라는 장르가 재미있는지에 대한 모범답안과도 같다.

김낙호
만화를 계속 읽다가 어쩌다보니, 제법 여러 가지를 진지하게 논했다.
별별 다양한 만화들이 지속되고, 다들 잘 골라 읽는 환경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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