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니다 천리마마트>, 개그만화 그 너머

2013.07.16

 
개그? 개그라니? 내 인생이 개그라니? <쌉니다 천리마마트>(이하 <천리마마트>) 92화에 등장한 무명 만화가 조성호가 천리마마트 사장 정복동의 인생역정을 담은 만화 <더 싸요 페가수스마트>로 개그만화대상을 받은 것에 대해 당사자 정복동은 이렇게 외쳤다. 물론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매회 천리마마트에서 벌어지는 코믹한 소동극을 담은 이 작품은 철저한 개그 만화고, 정복동은 그 만화의 주인공이니까. 마트의 계산대를 구멍가게 앞 평상처럼 꾸미고, 스스로 할인 광고 배너를 부착해 자신만 잡으면 제품을 할인해주겠노라며 뛰어다니는 그의 삶이 어떻게 개그가 아닐 수 있겠는가. 흥미로운 건, 이 모든 소동의 중심에 선 정복동이 내 인생이 왜 개그냐고 외치는 것, 다시 말해 정작 정복동 본인은 웃음을 위해 그 모든 일을 벌인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룹 회장에게 직언을 했다가 그룹 내 유배지나 다름없는 천리마마트 사장으로 좌천당한 정복동에게 마트의 수익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의 목표는 그룹 부사장인 김갑과 자신의 라이벌인 권영구 전무가 탈세와 횡령의 도구로 삼은 천리마마트를 이용해 본사에 역으로 피해를 주는 것이다. 하여 무명 뮤지션과 깡패, 원시부족을 점원으로 고용하고, 아르바이트생 200명을 시작으로 10만 알바 양병 계획을 짜며 앞서 말한 기상천외한 이벤트를 벌인다. 복수가 웃음을 낳는 역설. 이것은 개별 에피소드로서도 재밌지만, <천리마마트>의 웃음에 일관된 서사와 주제의식을 부여한다는 면에서 중요하다. 저비용 고효율의 기존 마트 경영이 입점 업체와 종업원을 쥐어짜는 방식이라면, 수익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정복동은 정반대의 경영을 한다. 복수가 목적이지만 코믹한 상황이 연출되는 역설적 상황처럼, 악의에서 출발한 그의 경영 지침은 자본주의적 효율성 너머의 착한 경영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 역설의 순환고리는 정복동의 바람과 달리 천리마마트의 매출 상승으로 이어진다.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게 고래부터 내려온 비극의 기본 플롯이라면, <천리마마트>는 딱 그 대척점에 선 희극일 것이다. 

 


<천리마마트>가 여전히 날카로운 세태 풍자를 하면서도 김규삼 작가의 전작 <입시명문사립 정글고등학교>(이하 <정글고>)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긍정적 에너지의 웃음을 주는 건 그래서다. 두 작품은 한국 입시 시스템과 자본주의의 한 부분을 클로즈업 했을 때 그 부조리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드러내는 방식으로 풍자적 웃음을 준다. 하지만 <정글고>의 불사조는 입시를 냉소하되 전국 석차 1위라는 특권적 지위를 내려놓진 못한다. 그의 반항은 시스템에 아무런 균열도 주지 못한다. 그와 달리 정복동이 천리마마트 안에서 시행하는 온갖 기행은 아주 작은 범위에서나마 시스템에 균열을 낸다. 봉황공단 근로자들은 점원과 입점업체를 쥐어짜지 않는 경영에 감동해 천리마마트 구매 운동을 벌이고, 대형마트의 떡볶이 사업으로 갈 곳을 잃은 동네 떡볶이 가게 사람들을 불러들였다가 국가의 상생기금 수백억 원을 지원받는다. 이것은 단순히 결과가 좋아서가 아니라 모든 경제 주체가 마음만 먹는다면 연대하고 상생하는 게 가능하다는 상상을 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부조리극에 가까웠던 <정글고>의 세계가 우리 함께 대안을 만들어보자고 말하는 <천리마마트>의 세계로 성장한 것처럼, 처음에는 대마그룹에 타격을 줄 생각에만 붙잡혀 있던 정복동 역시 자신이 불러일으킨 긍정적 변화에 눈을 돌리며 더 나은 기업인으로 성장한다. 멋대로 뽑았던 직원들이 직장에 자긍심을 가지는 것을 보며 자신이 과거 본사에서 정리해고 했던 천여 명의 직원에 대해 미안함과 책임감을 느끼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자신이 개척한 착한 소비문화를 바탕으로 착한 경영을 제대로 실현해보려 한다. 아쉽게도 <천리마마트> 2부 ‘일점당천’부터는 1부의 그것처럼 역설적 상황이 주는 재미가 많이 사라진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 대형마트의 협공에 대항하는 정복동의 계책은 신묘하고, 착한 경영이 착한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은 매주 확인해도 질리지 않는 판타지다. 하여 이 이야기의 종착역은 1부가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궁금하다. 과연 그 끝에서 정복동의 인생은 어떤 장르의 만화로 그려질 수 있을까. 물론 <천리마마트>는 변함없이 웃긴 개그 만화겠지만.





목록

SPECIAL

image SNS와 여성 연예인

최신댓글